발칙한 QT

안식을 전해야 한다 (막 3:1~ 12) 본문

신약 QT

안식을 전해야 한다 (막 3:1~ 12)

주하인 2007. 1. 8. 09:38

2007-01-08 마가복음 (Mark) 3:1~3:12

 

 
2.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엿보는 것은 악을 남에게 끼치려 하는 행위일 가능성이 많다.

예수께서는 엿보는 걸 아시고 계실 것이다.

당연히...

 악을 끼치려는 자와

해를 당할 수 있음을 아는 분.

 

 두 유형의 대비가 심상치 않다.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 예수님을 받아 들이지 않으면 그 영혼의 공간에 사단이 붙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들이 악한의도를 가지고 엿보고 있음을 알고 계시기에 일부러 한가운데 일어서라고 하신 것이다.

요한1서 5:18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 가 생각난다.

 너무도 당연히 예수님이야 악한 사단이 어찌할 수가 없지만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당연한 이런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송사는 있다.

예수님을 믿어도 환란이라 생각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예수님 조차도 엿보임을 받았는데...

그럼에도 예수님을 믿는 자는 당연히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당당할 필요가 있다.

 

 

 


4.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이 말씀을 보면서

극선(極善)의 예수님과 안식일

대적자와 악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안식이라는 것은 쉼을 의미한다.

그 쉼은 육신의 편안함 보다는 그를 포함하여 더욱 영적인 평강을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듯 하다.

 

 그 이유로는 악에 대한 오늘 보여지는 모습에 비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악은 쉬지를 못한다.

마취가 되고 마비가 될 뿐이지...

오늘 보이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가면서도 '잠잠하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준행하고 깊이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 아닌 듯하다.

너무나 큰 분께서 말씀하시니 잠시 멍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고양이 앞의 쥐가 순간적으로 멍해져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그러나 쥐는 쥐일 뿐. 

 

주님의 복음이 그들 영혼에 전해져도 잠잠한 것은 악이다.

복음은 원죄가 있고

그로 인한 자 범죄가 들 끓는 주인 없던 우리 불신의 영혼에

예수님 성령님이 주인으로 자리 잡는 것을 말하며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선해지는 기틀이 된다.

 주님의 말씀이 태생적으로 악한 우리 영혼의 밭에 뿌려지고 그게 발아가 되고 우리 전 영혼이 주님의 말씀으로 무성히 꽃피고 열매를 맺어 온통 마음이 풍성해지고 결과적으로 선해지게 되는 것이며 그 선한 상태의 궁극적 갈 곳이 바로 천국이 됨이 그 원리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이 평강의 이룸이다.

이러한 주님으로 인한 진실한 평강이 바로 '안식'인 것이다.

 

 세상으로 인해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혹과 경쟁과 자신의 자아 만을 믿으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고 영혼이 세상이란 이름의 사단에 물들어 버리면

주님이 말씀이 들어갈 자리가 없게 된다.

복음이 전해져도 잠시 그 위용에 멍할 뿐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잠잠한 상태가 바로 예수님을 송사하는 유대인의 완악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 안에 안식이 있을 수 없다.

거기에는 반성이 없다.

오직 자신들의 행위와 그에 대한 일시적 만족 만이 있을 뿐이다.

 

 

 

 

 

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다시 말하지만 '완악'은 주님을 모름이다.

반성이 없음이다.

회개가 없음이다.

안식이 없음이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그들이 더 완악하기 전에

주님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적용

 

전도 1명하겠다.

주님께 감사한다.

성경 5장 읽겠다.

 

 

기도

주님

그렇습니다.

완악이란 주님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요

평강이 없는 상태가 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주님 일단 그렇게 될 가능성을 낮추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그렇지 못한 자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해주심도 감사드립니다.

늘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 명하신 대로 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완악할 자들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는 긍휼을 허락하시어

그들에게 복음을 단 한마디라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