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아 그랬습니다(시109:16-31 ) 본문
제 109 장 ( Chapter 109, Psalm )
때로는
홀로 있음에 묻혀
때로는
어두움 만 바라보다가
외로움으로
많이 힘들어 했었습니다
그러다 기도했습니다
그리곤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함께 하고
주님의 빛이
날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제
외로움은 갔습니다
충만한 성령이
날
고요히 채우고 있습니다
아
그랬습니다
주님께서
섭리하지 않으신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음은
바로
자유이었습니다
(시109:16-31 )
18.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 갔나이다
' 저주'
남을 원망함이 오래되면
물이 스며 들어 내부에 들어가듯
뼈에 기름이 스며들듯
저주로 온 영혼이 먹혀 들어가게 된다.
남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입의 무서운 형벌은 바로 그것이다.
원망하지말자.
나쁜 소리는 멀리하자.
22.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마음이 가난하고 궁핍하다.
중심이 상함.
너무도 잘 이해가 되는 표현.
어찌 이렇게 흔들릴 때 내 마음을 공감해주시는지..
토요일.
퇴근하는 길에 비가 많이 도 내린다.
생각이 많이 돌고 누군가에 털어내고 싶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그럴 누가 점점 없어지는 나이가 아니던가?
설령 있어도 그들에게 나누어 놈이 과연 얼마나 나의 영혼에 해갈이 되겠는가?
마음이 어수선하다.
가만히 가만히 내리는 비 속에서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아... 그토록 오래된 감상.
'외로움'이다.
새삼 은혜 가운데 잘 유지 해오던 것이
또 몇가지 일로 인하여 자극이 되어오는 것이다.
'난, 가난하고 마음이 궁핍하다.
내 중심이 상할 듯 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표현이 그대로다.
28. 저희는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저희는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더 깊이 생각해 본다.
이걸 주님이 모르실까?
주님이 안계시기에 외로울까?
내가 가난한 마음과 궁핍함을 정말 그 분이 모르실까?
아니다.
그 분은 모든 것을 다 아신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던가?
내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그 어떤 죄이던가
아니면 완전 회복되지 못한 원죄로 인하여 누구나 , 어떤 '인생이나 겪을 수 밖에 없는 결과 이던가?
즉, 나이가 들어가며 겪어지는 외로움.. 의 아픔.
이 저주 같은 '이 인생의 곤란' .
이 곤란 마져도 주님은 다 이신다.
그러면 이 곤란한 저주를 통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심은 무엇이던가?
주께 빎이지 않던가?
주님은 그것을 통하여
나에게 더욱 기도하길 바라심이다.
혼란할 때 손발 힘풀고 깊이 들어가기 보다는
그냥 이리 소리내어 기도하길 바라심이다.
'주여 내게 복을 주소서.'
' 그들이 저주해도 주는 내게 북을 주심을 믿습니다.'
' 주의 종, 주하인.. 결국 즐거워하리다
이리 고백해야 한다.
그로 인하여 날로 날로 내 영혼이 강건해진다.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점차로 더 의지하게 된다.
그렇다.
그것이 인생에 유일한 의미가 아니던가?
무엇때문에 이 짧은 삶에서 젊어져야 하고
무엇 때문에 이 유한한 삶에서 부유히 살아야 하고
무엇때문에 이 세상에서 성공해야 하고
무엇때문에 또 내 자식들에게 이 헛된 생각들을 물려 주어야 하는가?
그리고 나선 속절없이 수천년 이 땅에 거하던 그들,
이 인생들이 스러져감 같이 당황속에 또 되풀이 해야 하는가?
마치 다람쥐 쳇바퀴 아니던가?
이 땅에 남기고 가는 것 있게 하려고 몸부림 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다 해도
그게 그런다고 또 무엇이 달라지는 것인가?
유일한 의미가 있다.
사는 이유 .. 말이다.
' 하나님'이 전제가 되면 답이 된다.
이 인생은 주님의 영생을 살기 위하여 거쳐가는 '연단'의 장소.
이 '삶을 통하여 ' 주님과 영원히 조금 더 가까이 거할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고 행운이던가?
그러기에 삶은 살아야할 당위성을 지니게 되는것이다.
오직 유일하게.......
그러기에 '저주'가 몰려와
내 현재의 상태를 마구 누르고 가난하고 궁핍하게 만들어도
그것이 더욱 주님을 향한 내 믿음을 강하게 하고
더욱 뚜렷한 평강으로
인생의 혼란과는 상관없이 내 삶이 유지가 된다면
그거야 말로
옳은 ,살아게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30.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무리 중에서 찬송하리니
이제 하나 더 할게 있다.
오히려 입을 열어 '크게 ' 주님을 찬송하여야 한다.
어려움 가운데 더욱 '감사함으로 더욱 크게 ' 찬송하리라
군중이 있는 곳이라도 그러하리라.
적용
1. 외로움 vs 고독
원죄로 인하여, 상처로 인하여
약해지는 육신으로 인하여 영혼의 빈틈을 갉아드는 옳지 않은 감정들.
타인에게 그 허전함을 해소 받기 위하여 기대하는 현상.
하지만, 고독은 다르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그 빈 공간이 채워지는 현상.
비록 감정적으로 인식되는 느낌은 비슷해도
훨씬 긍정적인 현상.
타인이 다가오면 포용하되 떠나도 그리 흔들리지 않음.
영혼의 빈공간은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짐을 경험하고 알고 있기에
흔들리지 않는 현상.
홀로 있을 때는 오히려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이 늘고
긍정적 노력으로 인하여 영혼이 발전하는 현상.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꾸는 것이
모든 중년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하나님만이 '저주를 복으로 바꾸실 분'이다.
하나님 어서오시옵소서.
2. 모든 것을 주님이 다 아신다.
내 가난한 마음 , 내 궁핍한 마음 , 내 외로움 다 아신다.
3. 원망하지 말자.
저주나 원망은 내부에 스며들고 뼈에 스며든다.
영혼이 '죄'에 의하여 삼켜진다.
얼른 포기하자.
모두 사랑하고 이해하자.
어려움을 유발하는 자들을 다 이해한다.
다 내려놓는다.
안되는 것 주님이 풀어주시리라.
4. 받아들이자.
받아들이고 누리자.
시간 많아짐을 누리고
그 시간을 통하여 주님을 더욱 만나는 시간이 됨을 기뻐하자.
비웃음이 느껴지면 , 그런 나도 받아들이자.
그냥 80점 정도의 기준 만으로 나를 보자.
5. 성경 세장 읽자.
기도
하나님.
지난 주말.
마음이 혼란 스러웠습니다.
외로움이 제 영혼을 칼 같이 쑤시고 들어오려 했고
그러기에 제 마음은 가난하고 궁핍했었습니다.
내 중심을 노리고 들어오는
사단의 저주처럼 느껴져 조금은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도우심,
말씀의 깨달아 주심.,
기도 할 때 마다 주시는 은혜로 인하여
오히려 그 갑작스러운 외로움이
어쩌면 선한 기회가 될 수 있음도
제 영혼 , 아주 조금씩 인지 해가기 시작하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것.
모두 주님의 뜻안에 있는 것임을 명심하고 있기에 그랬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깨닫는 지혜를 주심이기에 그랬습니다.
외로움.
어느새 많이 나이든 자에게
오래 마음앓이 해온 자들에게
특별한 이유로 인하여
저 뿐 아니라 세상의 어떤 자들에게 올수 도 있는
이 깊은 영적인 아픔.,
사단의 저주로 부터
이제 확연히 한걸음 떨어져
그게 벗어날 수 없는 저주가 아닌
주님을 깊이 만나고 오히려 인생이 더욱 풍성히 될 수 있는
고독이 될 가능성에 대하여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주님.
그랬습니다.
그게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 마음이 가난하고 궁핍하여 제 중심이 상합니다'
어쩌면 그리도 절 잘아시는지요
제 어려움이 그랬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하여 허덕이는 듯 했지요.
그러나 그 중에도 눈을 들어 주께 기도하오니
오히려 복으로 변해감을 느끼게 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입을 크게 벌려
살아계신 주님을 찬송하길 원합니다.
많은 사람 중에 내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주여 홀로 찬송받기에 합당하신 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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