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아직도 생각하다[겔23:1-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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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까
일어날까
어떤 생각에 나를 맡길까?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또,
주님의 말씀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이미 이루어진 말씀
말씀이신 하나님을 제가 이리 받고 묵상하려 합니다.
임하신 말씀 , 하나님으로 받게 하소서.
체험케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 인자야 두 여인이 있었으니 한 어머니의 딸이라
둘이 있다.
두 생각들이 있다.
한 어머니, 한 몸 한 영혼 속에서 '두 가지 ' 선택이 있다.
5. 오홀라가 내게 속하였을 때에 행음하여 그가 연애하는 자 곧 그의 이웃 앗수르 사람을 사모하였나니
6. 그들은 다 자색 옷을 입은 고관과 감독이요 준수한 청년이요 말 타는 자들이라
그 생각 중의 하나는 모두 '옳아 보이고 멋져보이는' 것을 바라본다.
자색옷을 입고 준수해 보인다.
그것을 바라보는 생각이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세상을 바라보려는 마음이다.
옛 생각이다.
21. 네가 젊었을 때에 행음하여 애굽 사람에게 네 가슴과 유방이 어루만져졌던 것을 아직도 생각하도다
아직도 생각한다.. 신다.
그 행음하던 것을 즐겨하던 생각들...
한가지만 생각하면 머리는 편하고 좋을 것 같다.
더욱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것만 따라 산다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때로는 힘이 있어 보인다.
준수하고 아름다운 것..
오늘 묘사가 마치 '에로비디오' 보듯이 너무 적나라하여 낯뜨거워 지려 한다.
성경은 때로 지나치게 폭력적인 면이 여과없이 묘사되고
이처럼 자극적인 성애가 묘사된다.
얼마나 적나라한지 조금 수위를 낮추어 올린 오늘의 마지막 구절에
유방이 어루만져졌던... 것.. 이라 나온다.
성경은 세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다.
그래서 살아 있다.
요새 세상이 그렇다.
하루에 업로드 되는 에로물이 수만건이라던가?
신문만 펼치면 '성과 폭력'과 ' 엽기' 천지다.
그것을 상품화해서 먹고 사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은 고민하지 않고 빨려 들어간다.
그들을 '양심'과 도덕이란 이름으로 갈등하게 만들던
온갖 제약이 무너지고
그들 , 쉽게 한 곳으로 물밀듯이 몰려가는 '죄악의 백성'들이
인터넷을 통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나누며
그들의 최소한의 제재 조치인 '양심'마져 마비시켜간다.
유한한 인간의 수명 년한에서도
끝이 보이는 짧은 누림 만을 위해서
그들은 '꿀에 빠져죽는 날파리 ' 처럼 몰려든다.
그것.............
두렵기 때문이다.
외로움이 두렵고 세상의 도태가 두렵고
죽음이 궁극적으로 두렵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그 뒤에 남아 있는 심판이 두려워 처절히도 매달린다.
마취다.
마비다.
그러나, 그렇게 한방향으로 몰려 나가면 그게 행복할까?
마비되어 있지만 썩어가는 신경이고
마취되어 있지만 고름 들어 차는 상처다.
반면 두 생각은 고통이다.
갈등이다.
힘들다.
때로는 견디기 힘들어 좌절된다.
두생각이 대비된다.
여기서는 '둘 다 죄악'에 빠져 들어가지만
하나는 덜한다.
두 생각이 나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하신다.
나.
예수님을 믿고 과거의 생각, 상처 받은 영혼이 많이 정화되어 간다.
어느때는 '만일 나에게 '성공'이라는 한생각' 만 있다면
나에게 허락되어진 달란트를 통하여
얼마나 큰 힘과 가속도로 질주할까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긴 하다.
솔직히 내 주위에서 보는
같은 기독교인 가운데서도 덜 고민하는 자들,
비젼이라는 이름 하에 큰 갈등 없이
'한 생각' , 그게 비록 하나님의 이름으로 착각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가장된 자신의 자아성취욕구로 무장된
믿는 '불신앙 ' 비슷한 자 ( 실은 많은 비전의 신앙 들, 긍정의 신앙인들이 이럴 수 있다.) 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약함을 경험하지 못하면 강함의 진짜 원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아픔을 겪지 않으면 회복과 성장의 감사함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고생 모르고 큰 부잣집 도령들이 망나니인 경우가 많고
황제로 큰 자녀들이 벌이는 큰 사고들을 얼마나 많이 겪고
그들로 인하여 수없이 많은 자들이 고생하는 것을
신문지상에서도 보지 않던가?
그러한 의미에서
나의 '두생각'은 고통 스럽고
때로는 나로 삶속에서의 추진력을 약하게 만드는 장애로 느껴졌기도 했고
내 갈등으로 인하여 지장을 받는 주위로 인해 미안한 마음도 많았지만
그게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어차피 허락되어 진 것이라면
선한 것이다.
- 나..... 세상적으로 보아 순하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려고 노력하는 자이기에
선하다. 그것...확신한다.
그렇다면 '어려움'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란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러한 두 생각의 충돌에
난 피해자가 아니고
둘 중의 하나를 매일 매일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로 주어진 것이고
하나님은 그 선택과정을 통하여 나와 함께 동행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이시다.
두 생각.
두 생각은 무엇인가?
당연히도 '불신자들이 선택하는 ' 사단의 것이고
과거의 것이고 '옛사람'의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면서 주시는 생각'이다.
인간은 원죄적 존재임이 당연하다.
그러기에 도덕이 뛰어난 성인군자들의 속에도 표현되지 않아 갈무리했을 뿐이지
썩어 들어가는 죄악들이 있다.
청렴과 순진함으로 인기를 몰아 대통령 출마한 A. 후보도
매일같이 들어나는 도덕적 티끌로 '역~시' 한다.
중세의 수도원에 버려진 사생아들 이야기들이 많았음은 누구나 다 안다.
오랜 면벽을 하시던 '고승' 님 들께서도 포카치고 .. 하신다.
목사님 들 중에서도 가스총 드신 분들도 있다.
...
인간은 한계가 있다.
누구도 사단의 힘을 이길 수 없다.
그 속에 뛰노는 '두생각'을 인식하고
매일같이 '한 생각'으로 잡아 감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소리, 생명의 소리 말이다.
나.
아직도 부정한 생각들이 많다.
매일 마음 가운데서 선한 말씀으로 내 생각을 대치시키는 작업을 할 뿐.
이제 돌아보면
이전에 '필패'였던 사단의 승전터에서
점차로' 반반'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이제 ' 70% 이상 ' 승률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승리해가고 잇을뿐이다.
아침에 나오다 보면 얼마나 많은 불끈이 내 속에서 튀어나오는가?
아직도 길거리에 다가오는 이쁜 여인을 보면
나도 모르는 환상이 잠깐 내 뇌리를 스치던가?
진료실에 앉아 힘들어 찾아오는 조금은 둔한 분들을 보고는
얼마나 많은 '정죄'로 그들을 판단하던가?
나보다 나은 자들에 대하여는 비굴하기도 하고............
자식들에 대하여는 '교육'이라는 명분하에
거친 소리가 제약없이 나온다.
모두 '주님을 경외하고' 두려워 하면 그럴 수 잇단 말인가?
오늘 ,
특별히 '아직도 생각한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죄악'의 달콤함.
그 자극적인 매력.
그것은 향수처럼 달콤히도 다가오려 한다.
더욱 자제 해야 한다.
더욱 인내해야 하고
더욱 깊이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이 '두 생각' 과 '아직도 생각한다'는 말씀을 레마로 주신다.
말씀을 붙들고 하루를 보내리라.
적용
1. 아직도 생각한다..
명절을 앞두고서 라 인가?
별로 환우가 없다.
그래서 여유롭다.
코끝에 옛 추석 근처의 그 나른한 '전붙히는 냄새'가 맡기는 듯 하다.
빌미로 '영화'나 한편 볼까 싶다.
인터넷으로 다운 받으면 불법 영화들 부지기수다.
그게 무슨 죄일까?
하지만, 유방을 짓누르는 짜릿함 뒤에는 '죄'와 '성병'이라는
도사림이 있고 영적 타락이라는 결과가 있듯이
주님은 죽도록 사모하길 바라시며 질투하시는 분이심을 명심하면
그것은 죄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나는 당연히도 끊어야 한다.
오늘 .....특별히 하루 절제 하리라.
2. 성경 세장 읽겠다.
3. 두 생각.
내 영혼은 전쟁터다.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선한 생각'을 선택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단의 생각을 적용시키리라.
날 두렵게 하는 것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대응시켜 보자.
외로울 것......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약함이시다.
불쾌한 기억들.. ..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사로잡아 가져갈 많은 생각들이다.
떨어지는 열등감.. . 예수 그리스도의 연고로 저들은 강하고 난 약함이다.
모두 ........감사할 일이다.
두 생각은 전혀 다르다.
같은 일에 전혀 다른 논리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영혼의 패턴을 바꿀 작업을 해야 한다.
4. 내 두려워 하는 일..
오늘은 말씀 앞에 가져다가 영상화 시켜보리라.
기도
하나님.
제가요.
틈 만 나면 이렇듯 옛 것이 좋사오니 하려합니다.
아직도 옛것을 생각하려 합니다.
틈만 나면 내 육신은 정욕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영적인 승리를 이루고 나서 주님이 허락하시는 평강 안에 거하려 하면
여지없이 슬그머니 재밌고 쉬운 것을 하고 픈 게으름의 욕구가 밀려옵니다.
가만히 누리면 아직도 생각하게 하는 여러 생각들이 날 유혹합니다.
그러다보면 또 처음으로 돌아가 제 영혼은 자꾸 미숙의 상태로 지연되어 갑니다.
나이는 들어가고
세상은 서서히 제 손에서 힘을 잃어갑니다.
주님 ..
주님의 나라에 더욱 열심을 보이길 원합니다.
주여.
그러기 위해서는 겪어나가야 할 생각의 투쟁들이 많이 있사오나
저....약함에서 머뭅니다.
도우소서.
깨달음을 의지로 바꾸어 가도록 도우소서ㅓ.
주님이 도우시는 의지가 되게 하소서.
용서하게 하시고
더욱 회개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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