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이러한 그리움[겔23:22-35] 본문
(펌)
주여
저도
안으
소서
..
!!
27. 이와 같이 내가 네 음란과 애굽 땅에서부터 행음하던 것을 그치게 하여 너로 그들을 향하여 눈을
들지도 못하게 하며 다시는 애굽을 기억하지도 못하게 하리라
환란.
고통.
폭풍같은 고난.
정신없는 힘듦.
.........
어떤 것은 나의 잘못과 상관 없는 것으로( 성장 과정의 어려움.... )
어떤 것은 나의 잘못과 상곤 있는 것으로 인하여 생기기도 한다.
두 상황의 차이는
먼저 것은 나름 '이유 있는 ' 견딤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타인에 대한 분노를 지팡이 삼아
혹은,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의 뜻'으로...
하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은
대처가 쉽지 않다.
' 자책' 이 크면 도망가거나 회피하거나 혹은 괜한 '투사'로 타인에게 전가 해버리거나
아예 마비 시켜 버리기도 한다.
그것...인간의 본능이다.
방어기제다.
먼저 것은 '견디기에 힘이 있고 견디고 나면 이라는 희망'도 있다.
하지만 후자는 '견딜 힘도 없고 견디고 나도 별 차이가 없는 진득하고 괴로운 고난'이다.
하지만, 주님의 뜻이 이세상에 없는 것이 어디 있으랴?
내 잘못으로 인한 '자책'성 고난이라 생각되어도
그래서 하나님 마져 날 .. 이라는 무게가 팔다리의 힘마져 빼앗을 때에도
하나님의 뜻은 '그 고난'도 '괜한 고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오늘 그러신다.
" 네가 네 잘못으로 그렇게 심하게 고난을 받게 된 것도
내 뜻이다.
그렇게 되면 '징그러워서라도 (^^;; 내 과장이다 )' 애굽을 기억하지 않을 것 아니겠는가? "라신다.
내 잘못으로 인한 고난도
선한 하나님의 뜻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하나님이 모르실 일이 있던가?
그게 ..........감사하다.
죄로 덕지 덕지 오염되어 닦아내고 닦아내어도
오물덩어리 같은 더러움이 묻은 죄인 인 것 같아도
주님 앞에 다시 설 이유가 되는 것이다.
고난과 징계...
심한 비난과 자책
영적이고 심적인 어려움조차도
주님은 다 '선함'을 위해 쓰신다.
나.
예수님 믿고 이것이 가장 좋다.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이 있다.
어떤 매도 '사랑' 탓이다.
단, 주님을 '전제'로 했을 때만.....이다.
세상은 그 어디에도 '이러한 구원'이 없다.
있을 수 없다.
35.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지니라 하시니라
그러면서 또 다른 귀한 것을 '되새기게 '하신다.
잊을 것을 기억나게 하신다.
그 자책성 곤란...의 시작은 '나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내 잘못 중 가장 기본은
내가 '하나님'을 잊었다는 것이다.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 즉.. '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물론 '즉답' 이 아니심을 안다.
우리의 죄를 참고 또 참으시고 또 참으신 후
공의의 매를 드심이다.
내 엮여 풀리지 않는 '터부'들.
그것 '내'가 먼저 풀어야 한다.
하나님을 등뒤에 버리는 죄.
하나님을 잊는 죄가
내 일상, 오늘의 일상에서 어디에서 있을까?
주님은 질투할 만큼 나의 옳은 순서를 기뻐하신다 .
나.. 안다.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위의 사진'을 발견했다.
가슴이 아프다.
고아원 아이의 머리가 더풀더풀한 것도 가슴 아프고
시멘트 바닥도 가슴아프다.
아이가 그린 그림의 커다람도 가슴이 아프고
아이가 구부린 자세도 가슴이 아프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면 저런 자세가 나올까?
자궁 속 태아의 웅크림.
얼마나 '엄마'가 그리우면 저렇게 할까?
나.
정말 저런 간절함이 있던가?
나 .
정말 하나님을 저처럼 그리워 하던가?
내 인생의 '시멘트' 바닥을 살아가면서도
내 본향, 내 아버지집을 저리도 사모하던가?
만일 그랬다면
난 어떠한 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애썼을 것이다.
하나님을 등 뒤에 두게되는 어리석음은 범치 않게 될 것이란 이야기다.
그래서 지금까지 겪어 오며 아직도 그리 원할치 않은
내 고난을 더 이상은 미련하게 짐지지 않을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나의 행태 중.. 하나님을 저처럼 갈망하게 하는
-갈망하는 마음은 있고 원리도 안다.
단지, 더 갈망하지 못할 뿐이지.. - 그 마음을 막아서는
내 삶의 행태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 순서를 바로잡고 원리 안에서 자유로와야 한다.
추석 전의 한가한 시간들.
묵상을 진행하려는 데 '문'을 열고 반가운 분이 들어오신다.
'P' 사모님.
큰 교회 사모님으로 수년 전 폐경 우울증 생기실 뻔 하면서
나와의 대화로 이겨내신 후
깊은 풍성함을 가지신 분.....
예전의 강팍한 '힘'이 빠진 대신
'긍휼함'이 늘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하다고 하시며
한참 대화 후 '기도'까지 해 주고 가신다.
너무 감사하다.
'순서'를 빨리도 바꾸신 분이시다.
아주아주 건강한 교회의 사모님으로 영적으로 귀한 재목으로 다가와
사모님을 뵐 때마다 마음이 한없이 기뻐짐을 금할 길이 없다.
그렇다.
하나님이 왜 하필 ,
다른 때와 동일하게
말씀과 정확히 일치하는 모델을 보내실까? ^^*
어려움은 '풍성'함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 어려움이 나와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이면
하나님 안에서 단지 인내하고 기다리면 되지만
내 잘못에 의한 것이면
'순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순서는 어떤 형태이든 ' 하나님'을 앞서는 내 자아의 잘못이 있거나
'과거의 상처'를 빌미로 용서하지 않고 급하게 행하는
그래서 하나님이 간섭할 틈도 주지 않는
내 '순서 바뀜'의 죄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등뒤에 두지 않았는지
돌아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결심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기대해야 한다.
이전처럼,또다시 '어려운 곤란'이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쓰이게 되고
결과물로서 현상적 축복도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여야 한다.
모든 것 감사한다.
감사할 수 밖에 없다.
주님 안에 있으면 모든게 이해가 됨이 그렇다.
귀하신 내 주님.
오늘... 뒤바뀐 순서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주님.
더욱 깊이 주님을 사모하고 감사하고
저 아이처럼 사모할 수만 있다면
순서가 바뀔 이유가 없고
그렇게만 된다면 나의 고난은 멀리 물러가고
고난 대신 내 영혼을 채우는 것은
평강의 감사 뿐일 것을요.
깨달음 감사하고
오늘의 삶속에서 중심잡히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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