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아버지는 아들의 모든 것을 듣는다( 욥35:9-15 ) 본문
제 35 장 ( Chapter 35, Job )
아버지..
아파서요.
아버지..
힘들어서요
아버지...
그래서 공부 안하고 그냥 잤어요.....
그래도 난 그냥 들어주었다.
그리고 껴안아 주었다.
그가 내 자식이므로..ㅎ
어제는 목요일 여성병원 당직서느라 잠을 제대로 못잔 터라, 금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나선 얼른 집으로 가서 잠을 잤다.
피곤해서 더 자고 싶은 몸을,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금요 예배들이러 '기도원'으로 올라갔다.
가까우니 참 좋다.
날씨는 어느새 초겨울의 냄새를 낸다.
몸이 피곤하고 허리도 안좋은데 비온 다음의 습기 머금은 초겨울 바람은 '썰렁하기가 그지없다.
어려운 시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찬바람으로 가슴이 허할 것인가?
그 중에 많은 분들은 자신의 욕심에 의하여 재산을 잃은 분들도, 사고로 그리 된 분들도, 유전되어 오는 특질과 환경으로 인하여 어려움에 처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무거운 몸과 차거운 바람은 내 영혼 마져 무겁게 하려 한다.
잠시 걸어가며 중보를 했다,. .
기도원 목사님이 설교를 하신다.
성경을 이리 저리 찾아가시며 '강해설교'를 하시는 그 분 목사님 스타일이 원론적으로 찬성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많이 드시는 분이시라서 ^^;; 졸음이 쏟아지려 한다.
그래도 참았다.
예전 같으면 졸다가 나가서 커피라도 마시고 휘엉청한 달과 바람을 쐬다가 어슬렁 거리며 다시 들어가 겨우겨우 시간을 때울 것을 , 그래도 철이 들었는지.ㅎㅎ.. 예배의 통쾌함을 자주 맛보게 된 은혜로 , 그냥 아픈 허리 부여 잡고 졸린 눈을 뜨고 무거운 머리를 쳐들었다.
성경은 '사무엘 하 5장'을 기준으로 사무엘 하 전 반부를 헤집고 다니신다. ㅎㅎ
가만히 들으니 목사님의 강해 설교가 재미있다.
가능하면 인생의 삶에 맞추어서 요령껏 하셨으면 하는 기대를 누르시고 , 그 분은 철저히 성경 위주로 진행하시는 데 그게 올바른 설교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용은 이러했다.
'다윗은 유다 지파 만의 추대로 헤브론 - 우리 나라의 수원 정도..-에 ,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열한 지파의 추대로 꼭뚝각시 왕으로 있는 대치 상황이었지만 대세는 다윗에게 기울어 공격 만 하면 얼마든지 통일 왕국의 왕이 될 수 있었지만 기름 부음 받은 후 십구년 쫓겨다닌 사람, 더구나 사울을 몇번이나 죽일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던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로서 , 몇년 더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런 어려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시면서 ' 끝까지 인내하는 게, 기독교인의 최후의 영성이다. '
' 성경에서 가장 위안이 되는 구절은 " 내 너를 잊지 않으리라"'라는 것이다.'
' 우리의 잘못에 하나님은 돌아 앉으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가 고백만 하고 주님을 힘없이 조그맣게라도 부르기라도 한다면 그 분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으로 안아주
시는 분이시다' ...... 등의 힘이 있는 말씀을 하신다.
졸림은 어느새 사라지고 난, 말씀 속으로 침잠해 들어 갔다.
그랬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삶에 힘이 있는 것이다.
고난은 고난으로 끄치지 않고 그것은 결국 '선'을 위한 연단일 뿐이고,
왜곡된 인간 사이의 사랑이란 이름의 도덕 주의, 빠르고 좋은 것만 찾는 조급함 등에서 한걸음 떨어져
놀라운 평안과 평강으로 회복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늘..
예배는 참으로 통쾌한 느낌이 들었다.
자주 자주.....
요새 '다이돌핀'에 대하여 나온다.
엔돌핀 보다 수천배는 더 강력한 작용을 하며 암을 파괴시키기도 하고 행복감을 주는 내인성 마약의 일종.
'감동'을 받을 때 나오는 데, 그 감동은 기독교인들의 '은혜' 때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시다.
그러기에 기독교인들이 암에서 회복이 되는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다.
목사님이 말씀하신다.
끄덕여진다.
'그럴 수도 있다. 특히 내 경험을 보면 저건 맞는 소리다.
내 나이 또래보다 덜 늙었다는 소리를 듣긴 한다. ㅎㅎ
또, 예배후 통쾌한 경험.. 이것은 이치로 잘 이해안가는 의학적 현상이지만 다이돌핀으로 이해하면 그래서
그렇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다이돌핀... 언젠가 약리학 책에서 구석에 한줄, 학술로 나온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의학이란 학문을 하는 사람인지라 , 일반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기는 그래서 얼른 인터넷의 학술지를 찾아보았지만 쉽지는 않다.
그냥, 일반인들의 지식인, 카페, 블로그에만 무성할 뿐이다.
역시 한줄의 학술이 맞기는 맞나보다. ㅎ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정론화 되지는 않았어도 고려할 가치는 충분하다.
13. 헛된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아니하시며 전능자가 돌아보지 아니 하심이라
엘리후는 하나님은 좋은 부르짖음만 들으신다한다.
쉽게 말하면 착한 자식만 돌아본다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얼마나 외로웠던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착한 자 되기 위해 '도덕행위'에 열중하다가 주님 앞에 거짓 모습으로 나가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가까이 될 수 없음을 자책하며 지쳐 버리던가?
14. 하물며 말하기를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시비는 그 앞에 있으니 나는 그를 기다릴 뿐이라 하는 너랴
욥은 그랬다.
하지만 엘리후의 뉘앙스는 약간 비튼 듯하게 말한다.
내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다가 , 성자의 잣대에 합당하지 못한 내 결점은 난 어찌 할 수 없으니 그냥 힘빼고 주님 앞에 맡길 뿐이다.
주님이 주시는 위로 있으면 받고 기뻐하면서 다시 힘내어 주님 뜻대로 살아가다가 또 부족하면 또 기다리고 주님의 사랑으로 녹여내지면 또 힘내서 나가고............그러다가 주님 뵈올 날에는 정결해져 있겠지...
이게 욥의 뜻이었을 것 같다.
15.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횡포를 심히 살피지 아니하셨으므로
16. 이제 너 욥이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하나님은 혼내시는 분으로만,욥은 헛된 말 하는 자로 엘리후가 인식하고 있구나.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이 이해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감싸주고 행복이란 것을 느끼고 받아 보지 못하는 역기능 가정의 출신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시간이 있을 때 그 주님의 사랑에 대하여 더 깊은 관상과 묵상으로 체험하지 못하고 , 눈을 게임에 돌리고 인터넷에 빠지고 인간과의 관계에만 돌리는 자들은 이해할 수 가 없는 현상이다.
사랑이란, 긍휼이란..
욥의 인내가 마지막을 향해 치달린다.
이전까지의 고난도 엄청났고 친구들의 공격도 괴로웠지만, 그래도 그들은 격이 낮은 자들이니 그냥 이해하고 감싸는 영혼의 흐름만 있으면 가능하였다.
하지만, 엘리후의 그것은 온 기력이 다 빠지기 시작한 상태에서 , 나름대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영성이 제법 있는 자의 변론이기에 더욱 힘이 들것이다.
그러면서도 전의 친구들의 변론과 별 차이가 없는 논리는 참 인내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제 얼마 안남았다.
주님을 뵐 시간이 ..
기도원 목사님의 말씀처럼 '인내'는 마지막에 완성될 영성이다.
최고의 절제의 덕목 중 하나이다.
그 인내의 바탕은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내 잘못을 고치시긴 바라시지만 그러하심에도 그 분은 날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잊지 않으시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영혼 깊숙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로서의 나.
자식은 자식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난 그들이 더 이쁘고 사랑스럽다.
그 사랑스러움은 그냥 내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 자식이 내 사랑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나를 아버지로서 그냥 받아 들이면 더욱 좋겠다.
그게 수만배 수억배 확대된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무슨 조건이.. 엘리후?
적용
1 . 사랑하리라.
2. 성경 여섯 장 읽겟다.
3. 인내하고 기다리며 자식을 보리라.
4. 주님은 내 잘잘못에 상관없이 날 당신의 아들로 여기심을 믿는다.
든든하다.
나도 그러하리라.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수 있길 원합니다.
인내를 배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사랑의 폭을 넓혀주소서.
주님의 사랑을 옳게 받아 들이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을 넓게 베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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