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성령이여 흐르시고 판단하소서( 욥34:10-16 ) 본문

구약 QT

성령이여 흐르시고 판단하소서( 욥34:10-16 )

주하인 2008. 10. 23. 10:07

제 34 장 ( Chapter 34, Job ) 

 


10.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단정코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단정코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단정코.. ?

총명한 자들아?

 

 일부분 말이 맞을 수는 있다 .

조금 건방진 느낌이 드는 것(^^;;)과  큰 진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한다면...

 

 

11.  사람의 일을 따라 보응하사 각각 그 행위대로 얻게 하시나니
 그럴 수도 있다.

 

 행위대로 반드시 이땅에서 보응을 받는 다고 할수 도 없고

그 행위대로의 기준이 모호해서이지..

 아마도 엘리후는 자신이 '행위의 판단자'는 아닐지..

그렇다면 건방진 일이지.... 
 
12.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치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 하시느니라
 그것은 맞다.

 

엘리후가 염두에 두고 있는 '악'과 '공의'의 기준이 무엇인지가 궁금하지..


 
13.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느냐 누가 온 세계를 정하였느냐
  맞다.

그가 말하는 게 선지자 같다.

하지만, 그멋이 '성령'에 취해서 하는 소리 같지 않다는게 그의 말에서 번져 나오는 느낌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판단을 자기 것으로 대치하는 엉터리 아닌가?


 
14.  그가 만일 자기만 생각하시고 그 기운을 거두실진대
  가장 끔찍한 것이 성령의 운행이 멈추는 현상이다.

창세기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를 운행하고'라 나온 것처럼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만드신 온 우주의 운행 원리이시자 예수님을 영접한 자의 영혼이 흐르는 '기운'이시자 원리가 되신다.

 그러니, 불신의 시절에 그리도 웃기게 보았던 눈감고 손들고 음악적으로 촌스러운 음율의 찬양에 맞추어 빠져드는 기독교인들의 찬양을 , 지금은 내가 인도까지 하게 바뀌어 버린게 아닌가?

이게 선택 받은 자들이 변할 수 밖에 없는 중생의 원리에서 나오는 '증상'이다.

 

 ' 성령 '

그 분은 운행의 기운이시다.

세상을 움직이시는 원리다.

불신자들은 성령 하나님의 운행 원리에서 어긋나 있는 고장난 상태다.

정상 세포에서 운행원리가 다른 것은 '암세포'다.

회복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고 늘, 주님의 성령으로 아담의 상처를 고쳐가야 한다.

그 분이 거두시면, 그것이야 말로 큰일이다.

 

 
15.  모든 혈기 있는 자가 일체로 망하고 사람도 진토로 돌아 가리라  
16.  만일 총명이 있거든 이것을 들으며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이 엘리후가 위험한 사람이다.

자신이 가장 총명한 자로 알고 자신 만이 성령의 기운에 충만한 자인 줄 착각한다.

그러니 '총명이 있거든'이라 하고  '내' 말소리에 귀기울이라 한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다.

그는 친구 중 누구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자이다.

성령의 운행 원리를 깨달은 자이다.

하지만 '섣무른' 자이다.

 

 

 

삭막한 아파트와

허전한 나무도

하늘을 바라보고 조화시키면

참 아름답다.

모든게

주님의 뜻 아래서

판단되고 감상되고 인식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이 세상 모두가......

 

 

 오늘 묵상의 주제는 이런 것 같다.

권선징악.

그것도 맞다.

틀리지는 않지만, 선과 악의 판단 주체 대한 것이다.

 다른 친구들과 다름없이 조금은 영성깊은 '엘리후'조차 악하다 선하다 판단하는 것을 자신의 입장에서 하겠다는 주장은 하나도 변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그것은 하나님 앞을 가로 막게 되는 것이다.

 

 눈을 돌려 내 주위를 본다.

세상이 정말 어지럽다.

동성애가 당연시 되고 폭력이 난무하고 위 아래 구분이 없고 사회의 지도층이 하는 일이 내 주위의 꼬마들이 하는 것과 달라 보이지 않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정의라고는 찾아 볼 길이 없으며 사회 계층간에는 정서가 완전히 단절이 되어 있으며 자신들의 감정에 어긋나면 나라의 운명까지도 불사하고 거리로 뛰쳐 나와 촛불이나 커다란 막대나 쇠파이프를 들고 외친다.

엉망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소리내는 사람이 없다.

아니 , 솔직히 소리 낼 수가 없게 되었다.

 

 그것이 왜인가?

왜 이런 엉터리 같은 현상이 온 세상에 만연하여 세상이 말세를 향해 마구 치달리는 '종말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게 '선과 악의 기준'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옳고 그름이 없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 .

자신은 이해를 받아야 하고 남은 틀리기에 선을 긋고 막아 버린다.

혼란이 생겨도 판단할 근거가 점점 모호해진다.

그러다가 판단에 불만이면 길거리로, 보이는 대로 무조건 튀쳐나온다.

 

사랑이 없는 판단자는 두렵다.

더욱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운 사랑없는 어리숙한 판단자'다.

엘리후는 어리숙한 하나님 체험자자 판단자 역할을 충실히 한다.

그는 무섭다.

 

나는 안그런가?

오늘 돌아보고 돌아보자.

 

 

적용

1. 판단을 보류하자.

 판단은 나쁘다.

 주님은 판단을 보류하라신다.

 

2.  전도는 하자.

 믿는 자들에게 내 신앙의 방식을 강요하지는 말자.

 권고는 하되 강요는 금물이다.

 

3. 사랑이 우선이다.

 

4. 성경 여섯 장 읽겠다.

 

5. 성령의 운행을 느끼는 하루가 되자 .

 주님은 모든 운행의 원리다.

세상을 움직이고 우주를 돌게하시며 내 영혼이 선하게 움직이게 하시는 원리시다.

그 분께 맡기는 삶이 되기를 원한다.

그 분은 '보혜사'다.

걱정과 근심, 염려.......다 버린다.

그것은 운행을 막는 콜레스테롤 덩어리 일뿐이다.

 

6. 겸손하자.

 고개를 수그리고 아는 것 같은 일에 입다물자.

 가만히 있겠다.

 2번 참겠다.

 

 

 

 

기도

 

감사하신 주님

성령하나님

하나님 만이 내 주인이심을 다시한번 깨닫습니다.

어리숙한 내 머리속의 장애물인 동맥경화 소스 같은

오래된 내 자아의 찌거기를 물리시고

주님이시여..

성령하나님이 내 흐름의 운행을 조절하시길 원합니다.

판단.....주님이 하시오소서.

어리숙해보여도 가르치려 하지 않게 하시고

나빠 보여도 판단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판단하시고 눈물로서 권고할 긍휼함을 주소서.

자르고 제어하고 눈물없는 공의를 주장하는

냉정한 기독교 인일듯하게 하지 마소서.

남을 두렵게 하면서 가슴에 송곳을 끼워넣는 부담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무게를 얹어주는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보게 하시고

잘못된 것은 권고로 온유하게 하게 하소서.

저는 안되니 주님 성령님 운행 하소서.

주님의 기운으로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