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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보다 더욱 맞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욥 33:23-28 ) 본문

구약 QT

내 것보다 더욱 맞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욥 33:23-28 )

주하인 2008. 10. 22. 11:55

제 33 장 ( Chapter 33, Job )

 

 

 


23.  그럴 때에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일진대  
24.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이르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

      을    얻었다 하시리라 
25.  그런즉 그 살이 어린 아이보다 연하여져서 소년 때를 회복할 것이요  
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27.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전에 범죄하여 시비를 바꾸었으나 내게 무익하였었구나  
28.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이 포근한 색깔의

후덕한 크기의 꽃이 주는

그런 여유로움으로

사람들을 보고 만지고

공감해줄 수 있는 자가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여...

  엘리후는 조금 다른 듯하다.

최소한 이전의 친구들의 항변 보다는 훨씬 하나님의 임재를 많이 체험한 사람의 그것이다.

 우선 , 성령 체험 할 때의 그것 처럼 일천 천사 중 하나가 도움을 줄 때 하나님의 뜻대로 상처가 회복되어

어린 아이의 살처럼 연하게 회복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신약식으로 말하면, 성령의 은혜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기도'하면 은혜를 베푸시고 그것은 스스로 '자존감'을 회복 시켜 자기 얼굴이 즐거이 보이게 하고 사람들에게 의가 회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노래가 나오게 되고'.. 즉 찬양이 자신도 모르게 나오면서 이전의 모든 악했던 행동들이 자신도 모르게 - 이타적... ! -으로 회개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참 놀랍다.

 어떻게 보면   십자가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한 은혜에 의하여 값없이 구원을 얻고 그 구원의 평강으로 인하여 영혼이 노래가 나오고 찬양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회개가 터지게 된다는 원리와 비슷한 논리다.

  이 사람은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사모하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 

배울면이 많다.

 

 하지만, 그는 '욥'에 대하여 주장한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다.

그는 힘든 사람이다.

어렵기로 말하면 최고 어려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가르친다는 사실이 문제다.

그것은 '그'를 '죄가 있으니 '라는 전제가 있다는 점이다.

함부로 판단하고 자신이 아는 신학적 지식을 그에게 들이대는게 문제다.

 하나님의 뜻을 다 아는 것 같은 태도도 문제다.

그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임재하시었던 경험의 단면 만을 보고 '하나님의 속성'을 다 알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게 전부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난, 여기에서 걸린다.

어쩌면 엘리후가 주장하는 바가 공감이 되고, 남들에게 그런 칼 같은 내 경험의 잣대만 들이 대려는 게 어쩌면 그리도 비슷한가?

 주님은 '욥기'를 통하여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경험을 보이고 계신다.

그들 그들 마다 특성에 따라 신앙생활하고 하나님을 인식하는 단면 단면을 보이신다.

환경에 따라, 영적 성장에 따라 어찌 그리 다른가?

그러나, 모두 한결 같이 자신의 아는 바가 모두 다 임을 주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 아는 바를 주장하기 위해 고생하는 친구의 아픔과 상처는 뒷전이다.

 그것은 '교만'이고 더 나가서는 '어리석음'이며, 하나님을 앞서가며 그 분을 다 알아 그 분의 판단 자 역할을 하는 것이니 이 얼마나 큰 죄인가?

 각기 자신이 하나님을 조금 더 아는 게 무슨 그리 큰 차이가 있는가?

어리석은 인간 들 - 특별히 주모는 더하다. - 은 자신을 들어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을 내세우는 거짓된 의로운 분노은 모두 '자신의 의'를 들어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단, 이런 義憤(의분)이 義憤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사랑이 있어야 한다.

긍휼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긍휼함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타서 도저히 견디지 못할 때 하나님의 뜻 안에서 권고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엘리후는 똑똑하고 명석한 신앙심을 가졌지만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긍휼'이 없다.

 또한, 욥이 자신보다 훨씬 높은 성장을 하였을 영적인 선배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섣불리 그를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하나님 운행의 원리에 동의할 바는 충분하다.

 

 

적용

 1.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

 이 엉터리 교만 덩어리 주하인이 자주 그럽니다.

 아차, 아차 아차......이게 제가 하루 종일 내 뱉는 후회의 소리랍니다.

 

2. 사람들을 그의 입장에서 보겠다.

 역지사지.....오늘 하루 되새겨야 할 말이다.

 

3. 사랑과 긍휼이 넘치도록..

 분은 '의분'이든 아니든.. 사단의 영역이다.

 

4.  주님의 보여주시는 뜻은 '나'에 대한 것 만일 수 있다.

 남에게 강요하고 아는체 하지 말자.

 

5. 성경 여섯 장 읽겠다.

 

6. 주님 아시지요........

 더 인내하고 더 참을 수 있도록 해주세요.

 

 

 

 

 

 

기도

 주님.

좋은 내용이 많습니다.

주님 안에서 희고 부드러운 아기 살결이 회복되는 것이

맞습니다.

전 그래 왔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분들도 있음을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주님이 치리하시고 만지심을

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엘리후처럼 함부로 이것이 옳고 내것 만이 맞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습니다.

주님

오늘 엘리후의 명석한 분석처럼

설령 그것이 일부분 맞아도

더욱 맞는 것은

사랑이 넘치는 권고 임을 알았습니다.

부디, 부족한 이 인격으로 인하여

모자란 영적 성화에 의하여

아직은 제마음대로 그리하지는 못하고 있어도

주님.. 당신의 인도하심 바랍니다.

사랑이 넘치는 인내와

끝까지 기다림과 중보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가까운 우리 식구들과

자주 만나게 되는 환우들과 직원들에게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하고 싶사오니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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