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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넘어서야 할 한계선[요20:1-18]

주하인 2013. 3. 31. 10:38

 


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돌이 무덤에서 옮겨졌다'

그럴 순 없는 데 그렇게 되었다.

무덤.  죽음

돌. 죽음과 삶 사이를 갈라 놓는 상징.

그게 열림.

부활의 미세한 증거.

 

그럼에도 누구도 '부활하심'을 눈치 채지 못한다.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 라는 표현.

굉장히 불손한 표현.

누가 있어 주님의 육신을 마음대로..........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도 하나님 당신의 뜻이었고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도 당신의 뜻이신데

누가 있어 함부로...

비록 예수님의 육신뿐이라 생각하고 그런 표현을 쓰지만,

그 함부로를 '당연히 ' 쓰고 있으면서도

그의 엉터리 같은 생각임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어이없음.

 

 도처에서 '세미하신 하나님'의 흔적을 이렇게 놓치고 있다.

이 어이없는 인간의 '감각'의 한계.

우리 인식의 한계.

인간의 한계.

믿음 부족한 자들의 한계.

 

 

 

5.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체가 썩는 냄새가 싫었을 것이고

죽음의 단어가 주는 음산함이 그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6.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용기를 내어 그런 터부들을 깨야한다.

베드로는 드디어 심한 영적 심적 고통 후에

한 단계를 넘어 섰다.

그는 '과감히 ' 무덤으로 들어섰다.

그는 시체를 보러 들어감이 아니었다.

 부활하신 하나님의 느낌을 인식하고 들어선 것이다.

 

그의 믿음이 한 단계 성장 했다.

 

 

8.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보라.

그 인간의 생각 ,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던

그 한계선을 넘어서니

그제야 그들도

'믿게 되었다. '

할렐루야 ..

 

 

11.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마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구부려 무덤을 들여다 보면서

어쩌면 '코'를 닫고 있었을 지 모른다.

가슴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지 모른다.

오직 그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덤을 들여다 보게 만든 것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 이고

여자로서 허락된 영적 감수성의 뛰어남 탓일지 모른다.

그녀 역시 믿음이라는 면에서는 도약할 '한계'였다.

거기까지가...

 

 

14.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그러나, 예수님은 그 믿음을 그녀에게만 온전히 맡기지 않으셨다.

거기, 그 한계선까지 다가온 그녀에게 다가오셔서

살아계심,

부활하셔서 온전히 살아나신 당신의 실제를 보이셨다.

 

 

 

 믿음과 인간의 한계에 대한 묵상의 주제인 것 같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하고 뛰어나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도우심, 성령의 임재하심임을

당연하지만 보여 주신다.

그 한계까지는 우리의 선택과 노력,

그 마져도 '말씀'을 통하여

베드로 같은 깊은 연단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만

그 한계를 상징하는 '무덤을 막은 돌' 같은 장벽이 있어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넘어 설 수 없음을 보여 주신다.

 아무리 인간의 감성으로 사랑하고

그의 의지와

성격적 장점

환경의 몰아감 등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는 다 해도

진정한 성령 체험,

깊은 예수님의 사랑을 일대일로  체험하기 전에는

온전한 믿음에 다가갈 수 없다는 이야기다.

십자가 예수,

그 놀라운 보혈의 죄씻음으로 구원의 자격을 허락 받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상징되는

온전한 구원에 이르기 위하여서는

우리의 하나님 사랑에 감동하는 체험과

무덤앞까지 달려가 고개를 디밀고 들어서는 결단과 더불어

예수님의 전격적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어야

그 분의 부활이 믿어지고

그래야 온전한 믿음

온전한 구원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

부활절.

주일.

 

늘 그렇듯, 일찍 깨우셔

나만의 기도 장소에서 날 만나주신 하나님이

오늘 묵상에서

부활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한번 깨우쳐 주신다.

나.

무덤의 돌을 깨달은 자.

감사하다.

 

우리 주 예수님.

부활을 감사하며 영광 주님께 올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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