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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깊은 구렁텅이 속에서도(애3:55-66)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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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깊은 구렁텅이 속에서도(애3:55-66)

주하인 2009. 7. 8. 11:51

 제 3 장 ( Chapter 3, Lamentations )

 

 

 

어두움.

 

그 안에 깊이 들어 있을 때

무엇이 더 밝게 보이는가?

가로등인가?

달인가?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인가?

 


55.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심히

  깊은

  구덩이.
 

 어제 무사히 성결대에서 특송을 마치고

아내와 개운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TV를 켜니

모 방송사에서 '도망하여 나가는 아내'라는 제목하에

알콜 중독 남편에 의하여 가족이 완전히 피폐해져가는 상황으로

방송국의 도움으로 남편을 알콜 중독 치료 프램에 입원시키고

가족이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고 있었는데

모질게 가족을 대하던 남편의 일기장이 발견되어 읽어보니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허우적 거리며 가족에게 미안함을

일기에 절절히 써 놓았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심히 깊은 구덩이.

그 어두움.

그 절망

그 외로움

그 미안함.

그 죄책감

그 낙이 없음.

.........

도저히 발을 빼려 하나 뺄 수없는 칠흙 같은 상황.

수렁같은 곳.

주위에 어두움 뿐이고 절해고도 인 듯한 상황.

 이 어두움의 상황에서 TV의 방송처럼 도움을 받을 기회가 과연 얼마나 될까?

설령 그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도움을 받았어도 꾸준히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인간의 동정에 의한 도움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냄비처럼 팔팔 끓다가 금방 관심이 식고야 마는

현세대에서 그들의 도움이 얼마나 오래갈까?

 

주님 만이 도움이시다.

주님 만이 온전하시고

주님 만이 영속하신다.

 심히 깊은 어두움에 있을 때야 말로 주님을 부를 때이다.

 

 
56.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우지 마옵소서
  주님께 기도해보지 않은 기독교 인이 어디 있는가?

그럼에도 응답 받지 못한 듯 왜 변화가 없는가?

진짜 안 계신 것일까?

기도가 쓸모가 없는 헛된 이들의 말 장난인가?

우연히도 회복되고 발전해나가는 자들의 그럴 듯한 자기 포장 술인가?

그러면서 하나님께 멋지게 영광돌리는 것이 신앙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아니다. 

절대로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 분은 내 기도를 들으셨다.

들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지속됨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시간이다.

주님의 시간이 되어야 응답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아기는 밥달라고 울면 주지만

어른 들은 아무 때나 울면 혼나기만 한다. ^^;;

따라서 '기다림'이 우리에게 필요한 조건이다.

 

 당연하지만 '믿음'이다.

믿음은 위의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다'는 말씀에 정확히 들어 있다.

빛 에스더님의 방에서 '현재'의 믿음에 대하여 글을 읽으며

끄덕인 적이 있다.

정말 정확한 표현이다.

과거가 아니고 미래도 아니다.

그냥 현재 이루어 질 것이라는 믿음 , 그게 오늘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다.'와 일치한다.

이미 들으셨기에 지금 나의 기도는 이루어지고 있다.. 는게 믿음이다.

 양자의학에서 세상 모든 것이 '파동'과 '입자'로 되어 있고

그 것을 결정되게 하는 것은 '강력한 의지'라는 말을 표현했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대로 이루어진 다는 믿음과도 일치하는 의미다.

과학은 신앙을 표현하지 안했지만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진실인 하나님 뜻안에서 믿음 만이 진실로 간다는 것이다.

거짓된 '긍정의 힘'은 거짓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세상의 불신자들도 긍정 만으로 성공해간다.

비록 끝이 달라도...

 

 

57.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하셨나이다
 기독교인은 이게 다르다.

기도와 말씀.

기도와 성령의 주시는 확신.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주님이 허락하시는 방향대로 이루어져 가는 것.

그게 원리다.

 

 이미 고했으니 두려워 할 일이없다.

주님이 벌써 이루고계신다.

심히 깊은 구덩이라도 기도하고 기다리면

주님이 하신다.


 
58.  주여 주께서 내 심령의 원통을 펴셨고 내 생명을 속하셨나이다 
 주님이 내 이그러진 영혼을 펴시고

내게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으로 채우실 것이다.

그게 성경에 나온 말씀이다.

 '그의 신비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리니

 주님 예수님을 앎으로 말미암는다...'라고.

 

생명은 무엇인가?

어두움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답답하고 억울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중독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아침에 해가 떠오르듯

시원한 바람과 더불어 들려오는 새소리의 청명함

하늘을 올려다 보면 높이 보이는 푸른 창공빛.

거기에 육신을 타고 흐르는 뿌듯한 힘.

초록색 풀과 몽글몽글 맺혀진 이슬 방울들.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소리.......

생명으로 연상되는 장면들의 아주 일부분 아닌가?

 

 주님은 어둠 속에 우리가 갇혀있길 원치 않으신다.

문제는 우리의 이미 이루어졌음을 믿고

그냥 내려 놓고 기다리는 것이다.

 주님은 생명 안에서 영원히 주님의 나라에 거하길 기대하신다.

어둠 속에 있는 분들이여.

주님을 믿으라.

그 분 만이 영원한 의지처이다.

내가 부를 유일한 이름이다.

 

 

 

적용

1.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백번 외우겠다.

 주님은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가리울 분이 아니시다.

 이미 들으셨음을 믿는다.

 

2. 가만히 기다리겠다.

 난 구렁텅이는 아니다.

 밝음에 있다.

 하지만 그 즈음을 지나왔다.

 너무도 어려운....

 잊지 않는다.

 그 때 임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겠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님 앞에 잠잠히 기다리는

 이미 들으셨음을 믿는 자세로 있겠다.

 

3. 성경 일곱장 읽겠다.

 

 

 

 

 

기도

 

 

주님.

참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거쳐 왓었습니다.

환경적 어려움

내적인 어려움.

그 시절의 어려움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심히 깊은 구렁텅이 ' 가 맞습니다.

그 어두움에서 외치던 신음소리가 지금도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주님의 임재하심이 가장 강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의 나른한 평안함,

주님의 동행하심의 결과물인 줄 압니다.

앞으로의 삶이 어찌 전개될 지 모르겠지만

주님의 이 평안함이 없다면

그리 큰 부요와 재물이 별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벌써 그 시절에 내 기도는 이미 주님 앞에 상달되었었고

그 결과 지금의 내 영육혼의 평안의 틀이 있다 생각합니다.

주여.

앞으로 어떠한 연단이 나에게 놓여질 지 전 모르겠사오나

간절히 바라올 것은

'이미 주님이 들으셨을 것'이라는 확신을 잊지 않는

그런 신앙인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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