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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QT

그러나 그렇게 되었다( 애 4:11-22 )

주하인 2009. 7. 10. 08:06

제 4 장 ( Chapter 4, Lamentations )

 

 

나 홀로라도

아무도 없는  곳이라도

주님의 빛만

내려 보내시면

그냥

한 떨기 꽃을 피워 내리리다.

 

 

 

 


 
12.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 열왕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사람은 참으로 상황에 잘 적응하는 존재 같다.

우리 자랄 때 만해도 이렇게 컴퓨터가 발달할 지 몰랐다.

로보트가 진짜 생길지도 몰랐고

입는 컴퓨터 , 안경컴퓨터도 만화의 이야기로 만 알았다.

난 어렸을 때만해도 아들이 둘이나 두게 될지 알지 생각하지도 못했다.

우리 세대에서는 이렇게 한국이 잘 살지도 몰랐다 .

십년 전 만해도 난 내가 지금의 병원에 근무하게 될지 꿈도 꾸지 않았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만 해도 난 내가 ..............몰랐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게 그런 것인 줄 알고 살고 있다.

거쳐올 때마다 약간의 위기는 있었지만 그냥 그렇게 적응되며 살아왔다.

 이러한 우리는 앞으로 또 어찌 될 지 믿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그 끝이 꼭 지금까지의 믿지 못하지만

그냥 하나님의 인내하심으로 살아오게 되었음 조차 생각지도 않고

또 믿지 않고 그냥 살것이다.

그러다가.............................................

그냥 그렇게 되지 않을 일이

조만간 닥치게 될 것이다.

그때는 그냥 그렇게 살지만은 못할 지도 모른다.

 


 

15.  사람이 저희에게 외쳐 이르기를 부정하다 가라 가라,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저희가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이 이르기를 저희가 다시는 여기 거하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왕따의 기분을 아는가?

사람마다 손가락질 하는 듯한 기분을 알겠는가?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하고

멀리 피해 도망가고

사람 속에 있으되 사람이 근접하지 않는 외톨이의 기분을 아는가?

 '부정하다,

 가라

 가라

 가라

 만지지 말라'

눈에 보이는 소리라도 들리면 숙명이려니하고

자신을 오히려 그 나락에 떨어뜨리고 될대로 되어라 하고 사는 것은

또 어쩌면 한편으로 노숙자로 전락할 위험성은 있어서지만

마음은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체가 없음에도 그러한 손가락질이 평생 따라다니는 것 처럼

머리 속에서 쉬지 않고 울린다면

그 어찌 살겠는가?

 

 우울증이 많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고

각종 신경병이 많이 발생하는 세상이다.

그들의 거의 대 부분은 귀에 들리지 않지만

그들의 의식을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카세트 틀어 놓은 듯 되풀이 되는

저런 자책의 소리들, 왕따의 소리들, 실패의 소리들로 인하여

견디지 못하고 도피하는 증상들이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오늘 날의 악플 들

그것들은 저런 '욕'이 의식속에서 만 머무르지 않고

실체화 된 것에 다름없다.

 전혀 성령의 열매와는 상관없는 마귀의 소리들.

이러한 소리들에 견딜 수 있는 자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러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영향력 있는 자들까지 입을 닫고 조심하는 세상이다.

세상은 어른이 없고 그런 소리들 만이 횡행하는 세상이 되었다.

 

 

 

17.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치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무슨 차이인가?

헛된 도움을 바라느냐 안바라느냐의 차이다.

'구원치 못할 자들을 '

'바라보고 바라본' 결과물이다.

 구원치 못할 자들이란 누구인가?

하나님 이외의 모든 존재들이다.

 여러번 고백했지만 아픈  성장기를 거쳤고 오랫동안 속상한 마음으로 지내왔다.

만일 일찌기 '주님'을 영접했더라면

나의 기대와 사랑의 대상이 '주님'이 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훨씬 더 빨리 평강 안에서 있게 되었을 것을..

 올바른 사랑을 주지 못하는 인간 아버지 어머니 만을 바라보고 바라보다가

그들 상처있는 분들을 오히려 원망하고

그들이 의미없이 뱉어 버렸던 정제되지 못한 언어들로 인하여

가슴 속에 되풀이 되는 '부정하다...가라..가라.. '라는 죽음의 언어들에 의하여

자신의 가슴에 평생을 상처내며 살아왔던 시절 .

 돌아보면 그것은 '어두움 '뿐 이었고 그것은 아픔 뿐이었다.

영혼은 상채기로 더덕더거 문드러져 갔던 시절이다.

 

 이제 눈을 들어 세상을 바라본다.

내 투사된 아픔을 아직도 세상에 투영시키지는 않는가?

괜히 두려워 하고 괜히 미워하려 하고

괜히 그들이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보라보라 부정하다..  '라고 잘못 인식하지 않는가?
그래서 두려워 아직 앉아 있는가?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본 후

내 내적 압력이 많이 줄어 들었다.

이제 세상을 향해서도 그러할 때다.

주님 만을 바라보자.

헛된 세상의 인정을 바라보지 말자.

로렌스 형제 께서 '하나님의 뜻'만을 바라보고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확신한 후

세상의 어떠한 것도 걸림이 되지 않는 그러한 상황 만을 간구하자.

세상에 살되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가는 나그네의 삶을 간구하자.

그들 세상이 아무리 유혹하고 누르고 흔들어도

주님 나라에 가는데 지장이 있는 원리들은 과감히 내려 놓자.

주님 만을 바라보면 된다.

주님 만을 바라보고 바라보면된다.

세상이 날 어찌 할 수 있는가?

그들이 아무리 소리내어 긁어도 어떻게 나를 흠집이나 낼 수가 있는가?

그냥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관심...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나에게

그들의 소리 , 그들의 놀림, 그들의 유혹이 어찌 의미를 발휘할 수 있겠는가?

 

이제 고개를 들자.

이전에 전혀 예측하지 않았던 일들이

그냥 전부터 그랬듯이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고

자연스레이 그 속에서 살고 있다.

 이처럼 전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반 확신 하며 살고 있는 '종말'의 실체가 불현듯 다가와도

또 그 속에서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그 그렇게 살기 위해서

난 이땅에서 지금 바라보고 관심을 기울이고

아직도 인정을 바라는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씩 내려 놓는 연습을 해야한다.

 

내 관심은 오직 주님이시다.

 

기도

주님.

참 어렵습니다.

묵상을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겠지만

너무도 뚜렷한 말씀이고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말씀이라서인지

더더욱 묵상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진행합니다.

주여 쓰는 동안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썼습니다.

그게 말이되는 지 안되는지 잘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던 것

그냥 드러내어 말려야 하겠기에 그리합니다.

주여.

내 고백을 받으시고

조금 더 단단한 영혼이 되게 하시고

이전의 어두움을 물리치게 하소서.

온전한  신앙을 향해 나가시던 '로렌스 수사'의 일상의 수도에 대하여

하나님의 임재 연습에 대하여 다시 한번 되뇌어 보았나이다.

오직 주님 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관심 만을 기다리며

주님께만 관심을 기울이다가

전혀 생각지도 안했지만

주님 앞에서 칭찬 받을 그날 만을 기대합니다.

세상이 흔들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은 혼탁해도 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 고백이 되게 하소서.

주님 만을 바라보는 당당한 믿음 허락하소서.

아니 든든한 믿음

아니, 당연한 믿음을 허락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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