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쪼개고 분석하고 돌이키고(애 3:40-54 ) 본문

구약 QT

쪼개고 분석하고 돌이키고(애 3:40-54 )

주하인 2009. 7. 7. 12:04

  제 3 장 ( Chapter 3, Lamentations )

 

 

 


40.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늦잠을 잤다.

 죄송하다.

아침의 묵상시간도 주님 말씀을 듣는 시간도 마구 줄어든다.

그럼에도 내 하루의 삶이 별 부담이 없이 지나간다.

이전에는 안절 부절 못하였는데..

이게 게으름일까? 

주님이 인정하시는 여유로움일까?

부담과 감사 사이에서 어떤 것이 맞는가?

어쨋든 선한 부담은 있어야 한다.

 

 출근하려는 데 끼어들기 하는 차가 있다.

순간 속이 뒤집히려 한다.

성령의 열매가 아님을 알아차리는데 시간이 자꾸만 덜걸린다.

그래서 그냥 브레이크를 밟아서 끼어 넣어 주었다.

몇대가 동시에 또 들어온다.

또 그랬다.

 싸움에서 이기면서 자랑스러워 하던 마음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안한다.

괜찮은 성장이다. ^^;;

 

 할머니 환우분이 얼굴을 찡그리고 들어오신다.

얼마 전 당뇨, 심장병, 신부전 위험에

산부인과 적으로 '고등도 자궁경부 이형성증- 암 바로 전단계' 환자에

보호자가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불쌍하고 안타까운 부으로

 '노인 복지센타' 간호사를 오시라고 하고 사회복지사 연결하여 입원조치 시켜서

당뇨... 교정 하고 산부인과적 시술을 시행하였다.

 이 분.

입원하고 나서 부터 계속 불평이시다.

수술방에서는 '기도'해주겠다는 말씀에 단호하게 '싫다'고 하신다.

 속이 상하다.

바보 같은 노xx라는 순간의 욕이 스치려 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퇴원하시고 며칠 째 외래로 내원하신다.

오실 때마다 굳은 얼굴이시다.

병원에서 무료로,

일부러 노인회관의 간호사를 오라하고

보호자 불러서 연계시키고..........수많은 혜택이 그분에겐 그저 굳은 얼굴의

분노 밖에 없어 보이신다.

 가만히 그 분을 본다.

 내 속에서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돌이켜 생각하며 버특하고 놀란다.

' 이렇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저렇게.........'라는 생각이 내 속에 있다.

 은혜를 베푸는 자로서 감사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멋지게 하나님 이름을 증거할 때 눈물지으면 '아멘'하고 영접기도 같이...를 바라는게

내 머리 속의 이쁜 그림이 아닌가?

그것은 얼마나 추악한 생각인가?

교만하고 잘난 체하고...............

진짜로 그 분의 영혼에 예수님을 영접시키길 원하면

그런 높아진 마음, 추악한 마음이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그런 강팍하신 불신자 분들까지 감동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실 듯하다.

 난, 스스로 돌아보건데 추악한 '기독교'인의 부류에 속할 생각에 머물렀었다.

  

  
 
41.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손을 하나님께 들자.

이해가 간다.

기도할 때 나도 모르게 들어지는 손.

그 손을 통하여 어떨 땐 전기가 찌릿 찌릿할 정도로 깊은 기도할 때도 있다.

 

 마음까지도 하나님께 들자.

뜻은 알지만 표현이 절묘하다.

실체적이다.

그렇다.

마음이 낮아져야 한다.

 

성결대에서 목사님들 1500여명 앞에서 특송을 하는 날이다.

아침 부터 약간씩 신경이 건드려 지는 일이 일어난다.

짜증 지대로....인..ㅎㅎ

아마도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들고 그 무대에 오르면

난 자아 충만한 찬양을 하다가

혹여 답답한 마음으로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마음과 손을 들어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주님을 만나뵐 찬양의 자리가 되어야 하고

주님이 내 목소리를 통하여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할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음을 들어 주님께 맞추자.

손을 들어 잠시 기도하자.

 

 

 

기도

주님 아시지요?

주님 아시지요?

감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 어제 컴의 에러로 뒤늦게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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