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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족하지 아니함[요16:1-1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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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족하지 아니함[요16:1-15]

주하인 2013. 3. 18. 11:20

 

마음이 차가워지려 할 때

어디든

훌쩍

날아갔다가 돌아오고 싶었었다

 

그래서

그랬다

 

그러나

그러니

마음이 더 싱숭생숭하다

괜한 외로움이 커진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령안에서

누리는 평안 안에서만

실족하지 않을 수 있다

 

진리의 성령이 주시는

그 온전한

평강의 기쁨 만이

그의 유일한 소망이 된다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실족.

길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는 ..

 

예수님 믿는 길은 그리 쉬운 길 만은 아니다. 

선데이 크리스찬이 진정히 믿는 자일까?

오죽 했으면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을까?

 믿는 길은 좌로는 '방종' ,우로는 ' 율법'의 지옥의 낭떠러지 사이에 걸쳐진

외줄 타기와 비슷하다고 누가 그랬다.

실족은 어쩌면 너무도 쉬운 일일 수 있다.

 예수님 믿고 한번 빛을 쬐고는 타락하는 자가 많다고 성경에 나온다.

빛을 쬔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 만큼 깊이 예수님을 믿고 알아도 '실족'할 위험성은 다분하다.

우리나라의 역사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신앙의 귀한 선배들이 실족해서 타락해 갔던가?

 그러니 나 같이 믿음이 일천한 자들이야말로

실족은 그야 말로 식은 죽 먹기가 아니던가?

 

 

13.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어찌 해야 하는 가?

'성령'이 답이시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실족은 눈깜짝할 사이다.

성령이라 하심은

우리가 '기쁨', 그것도 상황에 상관없는 평강의 기쁨 가운데 거하게 됨으로

성령이 임하심을 스스로 알 수 있다 .

그러나, 어떻게 늘 .. 기쁠 수 있단 말인가?

상황에 상관없는 기쁨은 그게 가능하다.

성장하고 성화된다는 것은 '생명의 성령이 법칙이 폭포수처럼 영혼을 내주'하게 되면 가능하다.

우리는 그래서 늘 뜨겁고 차갑고를 반복하면서 연단의 제련을 거칠 수 밖에 없고

그러면서 단단해지는 것이다.

차가운데 거할 때, 절대로 조심해야 한다.

얼른 회복하려 애써야 한다.

성령의 늘 내 안에 임하시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진리다.

그 진리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실 때

'장래'일 마져 우리에게 알리시는 것이다.

소망이다.

그러나, 사단 역시 영적 존재다.

어찌 우리의 의지만 가지고 차가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잇단 말인가?

겸손도 자기의 의로 하면 가장 큰 교만이라지 않던가?

차거움 , 그것 너무 의지로 참아내다가 '율법'의 지옥에 빠질 위험성이 또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성령이 늘 임하심은 어찌 잊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단 말이던가?

당연히도 '말씀' 묵상이다.

기도다.

주님과의 독대할 빈시간을 내어 드림이다.

삶의 적용이다.

그것도 매일..

그것이 진정한 '삶속의 영성'이다.

영성이란 진리의 영이 삶속에서 임하셔서 이끌어가심을

절절히 느끼면서 주위에 벌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살아가는 ,

그리함으로 삶을 살되 나이 듦에 따라 성화 역시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그 삶에서 '실족'...

있을 수는 있겠다.

그 사람의 영의 상태, 상처 여부 , 성장여부, 특성에 따라

하나님 허락하신 ' 연단의 뜨거움과 차가움' ...

인생의 그 광막한 광야 같은,

때로는 불뱀, 때로는 전갈 같은 데 쏘이는 것같은 아픔과 차거움과 뜨거움이 있다가도

반석의 생수 같은 , 만나 같은 은혜로 되풀이 되며

결국 인격의 '겸손'해짐을 외적으로 보이는

성화가 이루어져 갈 때

마침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을 내리시는 것이다.

 

 '실족'이 오늘 주제다.

아니다.

실은 '진리의 성령'으로 인한 '실족하지 아니함'이 레마시다.

 

 

 

 

올레길 16번 中 애월 해안길

 

 

 16일 '휴가'를 내고 제주도에서 있는 '세미나'에 다녀왔다.

아주 아주 저렴한 경비라서 그냥 유혹에 혹.. 하고 말았다.

갑작스레이. .결정하고 아내에게 말하니 안간다해서

그냥 혼자 다녀오기로 했다.

늘 여행을 다니기 전 오랫동안 책을 보고 경로 결정하고

아내의 피로도를 고려하고

주일 예배를 드릴 곳을 먼저 생각하고 코스를 정하곤 했는데

홀로 가는 곳이고 , 더구나 국내이기에

하나도 준비 안했다.

금요성령 집회를 마치고 11시 되어서야

카메라가방에 양말 한켤레하고 치솔만 넣었는데

아내가 아무래도 안된다고 해서

적은 배낭에 억지로 바람막이와 속옷 - 정말 잘했다.   ~~- 넣고 널럴하게 갔다.

청바지를 꾸겨입고 T에 가벼운 잠퍼를 걸쳤다.

신발은 가벼운 운동화.

 

 생전처음 혼자 여행갔다.

실은 제사보다는 떡밥에 맘이 있다고

세미나는 뒷전 여행의 홀가분함을 즐기려 했다.

'공항'에 나가면 느껴지는 그 자유로움.

거기에 제주 올레길은 걸어다니며 찍는 사진의 즐거움을 아는 나에겐 유혹이었다.

 

 공항에 나가니 날이 정말 화창하다.

올레길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이럴 때 난 세상이 나를 위해 준비된것 만 같다.

어쩌면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서도 '컴퓨터'를 할 수 가 있단 말이던가?

아무 정보 없이 그냥 비행기 기다리면서 여행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단 말이던가?

누구에게 무엇을 부탁하거나

내 부족한 것을 드러내면서 가르쳐달라고 하기 힘든

나 같이 낯가림 심한 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신세계.

스마트 폰은 확실히 잘쓰면 문명의 이기임이 분명하다. ^^*

 10시 5분  김포 공항 출발 .

일곱시에 일어나서 나가니 시간이 왜이리 많이 남는지.. ..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외롭다.

다들 짝들 지어 오고 식구끼리 오가는데

나 혼자만 이러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 외로움을 해결코자 친구에게 전화하기는

모두 근무하는 데 그렇다.

 '외로움'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가 많다.

어차피 홀로 가는 세상에 나이 들어 홀로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그 본질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을 듯도 싶다.

선한 생각이 떠오른다.

하나님을 깊이 만날시간.

나를 돌아볼 시간.

다른 달란트를 많이 받은 대신 한 쪽으로 빈 의미로서의 나의 외로움...

하나님은 공평하시지...

다양한 생각 가운데서 난 그 외로움을 'Solitude'로 받기로 했다.

하지만, Loneliness의 칼같은 아픔이 아직은 나의 영혼을 긁어 상채기를 내려 함을 느낀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

 

 어쨋든 주일 아침이 되니 비가 쏟아 지기 시작했다.

급히 준비한 우비와 우산을 쓰고

시간 쫓겨 헐레 벌떡 서귀포가서 6번과 7번의 일부 구간을

헤집듯 걷고서 돌아왔다.

그래서인가 피곤하다.

감기 기운으로 목도 컬컬하고..

 

 저녁에 현실로 돌아와

마주하는 문제들..

가슴이 무겁다.

 

아침에 출근하려하니 몸이 천근 만근이다.

아마.. 잘 관리하지 않고 술을 많이 마시는

우리 나이 또래의 대다수 중년들이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런 느낌은 아닐 것인가 생각이 되며 실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마음은 생각이 많이 돈다.

마치 '실족'할 것 같은........혼란이 밀려오면서

말씀을 묵상하기 조차 싫어진다.

 

그래도 억지로 들여다 보았다.

'실족'이란 단어가 첫 구절 부터 나온다.

그렇다.

내 마음을 읽어 주신다.

성령.. 진리의 성령...

오후도 4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묵상을 잡아서 정리하지만

'성령'의 충만함은 그리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나름 은혜 가운데 있을 때는

말씀 한구절에 마음이 순식간에 밝게 바뀌곤 했는데...

'실족' 할 것 같은 마음의 혼란이 있었나부다.

 

말씀을 믿는다.

말씀을 선택한다.

진리의 성령께서

나에게 말씀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려 본다.

감사하다.

기대하리라.

 

 

주님.

귀하신 주님.

아시지요?

제 혼란을요?

잘 쉬었다 나왔지만 느낌에 사로 잡혀 있는 듯 흔들림을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말씀이 제 심령조차도 다시 기쁨으로 바꾸시고

이 영적 감수성 부족한 영혼에

장차 일을 말슴하시는 성령의 흔드실 음성을 듣게 될 줄요.

감사합니다.

기다립니다.

주여.

함께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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