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실제 이렇다(렘31:23-40) 본문
제 31 장 ( Chapter 31, Jeremiah )
외로운 산 속
홀로 피어난 진달래
그럼에도
외롭지 만은 않음은
주님이 빛으로
어루 만지심이라
23.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says)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
2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declare)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내가 경성하여 그들을 뽑으며 훼파하며 전복하며 멸하며 곤란케 하던 것같이 경성하여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declare)
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declare)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declare)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declare)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declare)
35.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바다를 격동시켜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내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내가 말하노라 (says)
37.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says) 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아래로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declare)
3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declare)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을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모퉁이 문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할 것이라
몇번인가 셀수 없게 '말씀하신다'는 표현을 쓰신다.
가라사대,
말이니라.
말하노라...
그런데 영어 성경에는 두가지로 구분이 되어 나온다.
'Say'와 'declare'
한글로 번역하면
'say'는 이야기 하시다
'declare' 선언하고 선포하신다..는 의미다.
묵상구절에서도 살펴보면
say를 쓰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인하여 이스라엘 및 유다 백성이
감탄하고 감동할 일을 서술하시거나
하나님 스스로 어떠신 분이심을 나타내보이실 때다.
그것은 '감동'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당신이 그같은 일을 하고 싶으셨던지
이스라엘 백성과 유다 백성이 비록 너무나 큰 죄를 오랫동안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칠십년이나 유배시키셨지만
'징계'는 그들을 돌리시려는 이유지, 절대로 징계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시라는 이야기시다.
그러시기에 교육적인 차원에서 그리하시고
그 아픈 시간을스스로 견디신 후
그 시간 후에 '너무나 좋으신 당신의 마음'을 저리 표현 하시는 것인 것 처럼 보인다.
그리고는 약간은 들 뜨신 듯한 어조로
말을 자꾸 자꾸 되풀이 하신다.
'네가 돌아오기에 내가 단언하건데...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할 것이다.(declare)
내가 누구냐?
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아니더냐(say, 35절)'
이러시는 것 같다.
자식을 길러보니
다양한 생각이 든다.
그들을 데리고 돌아다니면
양 쪽에 듬직히 서 있는 아이들이 너무도 이쁘다.
그리고 세상 아이들과는 다르게
하나님 기뻐할 줄 아는
그러면서 덜 타락한 모습을 볼 때는 기쁘기 한량없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게 세상이치인지라
아이들이 내 바램과는 달리 컴에 매달리거나
학업에 흥미를 보이지 않고
사춘기의 방황을 하고
내가 그리도 내려 주기 싫었던 상처의 흔적을
그들 모습에서 볼 때,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유로
아이들에게 징벌을 하고 제재를 가할 때는
꼭 그래야 할 것 같은 안타까움으로 그러지만
(주님은 이 상처 많은 주하인의 징벌과는 전혀 다르시지만.. )
그러고 나서는 얼마나 가슴이 답답하고
아이들이 불쌍한 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교육적 차원에서라도
기도하며 그들의 고난을 지켜보고 있다가도
아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돌이키려하는 시도를 볼 때는
나도 모르게 흥분하여 말을 많이 한다.
떠벌 떠벌..
그리고는 아이들을 두드리며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라.. '라 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렇다.
자식들을 미워해서 혼내겠는가?
주님처럼 온전한 교육적 이유 만은 아니지만
어떤 부모라도 징계를 내리고 난 후에는 가슴이 미어지고 아픈 것은 사실일 것이다.
오늘.
묵상이 집중이 안되었었다.
내용도 어려웠지만
요사이 영감이 떨어져감을 느낀다.
그게 어떤 싸이클릭한 과정이라면 다행이지만
내 게으름의 원인으로 점차로 식어가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큰 변화는 없지만 메마른 듯한 마음이 든다.
진료실에 앉아 그동안 그리 기뻐 만들던 액자들을
올려다 보았다.
갑자기 '생경한 느낌'이 든다.
어..
유치한 느낌이 든다.
하나님 말씀에 감동으로
내 눈에 그리 귀하게 보이게 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히게 하시고
거기에 묵상 글의 감동이 덧입혀 졌던 글들이..
큐티 구절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당황스럽다.
계속 환우들은 들어오는 바람에 집중하지 못한다.
나름대로 4월 , 개학시기에 들어오고 구정 등 명절이 거쳐간 즈음이라
한가한 시기이라서 말씀을 묵상할 시간적 여유는 있는데도
집중이 안된다.
그래서인가..
아니면 수년전 부터 죽.. 전인치유 찬양,.. 말씀 나눔...등이 줄어들며
영적 헌신이 줄어서 인가?
잘 모르겠다.
그것을 다시 회복 시킨다고
주님이 일차원적으로 말씀을 더 풍성히 줄것 같지만은 않기도 하다.
잠시 틈을 이용하여
가만히 집중하여 묵상기도를 했다 .
주님의 감동이 느껴진다.
마치 주님께서 '들떠서 ' 말씀하시는 듯한
그 감동이 조금 밀려온다.
내 메마른 듯 한 심령.
내 느낌.
그것과는 상관없는
어제의 물댄 동산에 대한 '말씀'과
오늘 하나님의 들뜨신 듯한 축복의 말씀과 선언...
그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인가
어쩌면 날 둘러쌓으려하는 이러한 메마름의 느낌들,
그것은 영적 게으름에 대한 주님의 경고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주님의 말씀과 내 인식 사이의 괴리에 대한
무엇인가 깨달아 보라고 허락하신 주님의 배려가 아니신가 싶다.
주님은 '실제는 이렇다' 고 하시며
내 오랜 부정의 끈은 이제 직시해야 하지 않는가 하시는 듯 싶다.
그래서 감정이 그렇다고 주님이 살아계시지 않는 듯하다가
편안해져야 주님의 임하심이라고 착각하고 살던
내 어리석고 치졸한 '감상에 따라 판단하던 버릇'에 대하여
직시하라고 하시는 것 같다.
판단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말씀'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 말씀에서 주님이 이렇게 표현하신다.
' 말한다. 가라사대. 말하노니, 말이니라..'
축복한다.
단잠을 자고 일어나 기뻐할 것이다.
이 백성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라고..
그렇다면 나는 오늘 나는 어찌 해야 하는가?
내 마음의 흔들림이나 메마름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 분이 나로 하여금 진심으로 기뻐하고 달떠하시는 것을
묵상해야 한다.
난 내가 날 낮추어 생각하든 아니하든,
내 죄가 깊어서 징책을 받든 아니 받든
진실은 주님이 날 이뻐하시고 저리도 기뻐하시는 자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믿음은 내 의지가 아니고
그것마져 말씀에 나오고
그 말씀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저처럼 들떠서 기뻐하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
그처럼 죄 많았지만 저처럼 사랑하시지 않던가?
회개해야 한다.
주님 앞에 돌아서는 것.
회개.
늘 주님 앞에 서 있어야 한다.
오늘 날 사랑하셔서 저처럼 들떠하시는
주님의 그 사랑에 감사해서라도 회개해야 한다.
진료 마친 후
점심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여성병원 연장 근무하러 왔다.
변화없는 하루하루.
드는 나이.
외로움.
아직도 날 붙들고 있는 터부.
변화 가능성에 대한 동료의사의 이야기.
...
모두 날 흔드는 마음들이다.
나이가 들면 초조해지고
변화가 두려워 지려는 게 약점이 된다.
나.
변화를 많이 추구하고
적극적으로 날 변화시키려는 시도에 게으르지 않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는 변화의 조짐이
아직은 겂이 난다.
그게 마음이 흔들릴 때 그러면
비합리적인 두려움으로 올 때가 있다.
그게 오늘이다.
요즈음이다.
그러나, 주님이 날 저렇게 사랑하심을 알았다.
알았음을 영혼으로 받아들이길 원한다.
주님은 날 저렇게 이뻐하시고
날 저렇게나 기뻐서 들떠하신다.
자식이다.
난 그 분의 아들이다.
그 사랑을 묵상하고
아버지 학교 찬양에 뜨거움을 더하리라.
주님
주님 말씀의 법을
제 마음 속에
제 심령 속에 넣어 주소서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특별히 마음이 혼란 스러웠습니다.
괜한 메마름과 또 내 결핍된 마음이
눈치를 보려 했나봅니다.
사람의 눈치, 하나님 눈치.
그럼에도 주님은 그것을 아시고
나에게 저처럼 사랑하시는 마음을 열어 보여 주셧습니니다.
그러면서 내 잘못된 느낌보다는
말씀을 통해서 나오는 진리이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받아들이고 인식하고 깨닫기를 깨우쳐 주심을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날 사랑하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려 노력하는 한
제 자식들도
제 식구들도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마치 제가 아들을 걱정하는 유형의
그 친근한 감정으로 절 사랑하시는
주님을 읽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
그 사랑에 감동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진심으로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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