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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의 믿음[행11:19-3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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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의 믿음[행11:19-30]

주하인 2018. 1. 29. 10:15



19.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환란과 고난이 유익임은



20.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그를 통하여

"예수가 주이심이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

여기까지는

예수님 믿는 ..

예배를 드리는 거 빼놓지만 않는다면

잘 아는 일이다.


 환난과 고난이 유익임.

그로 인하여 "예수님이 전파됨'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구원을 받은 일.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일.


그러나... 그러한 귀중한 일임에도

이 일상에 치이고 쓰러지며

자식들의 일로, 경제적인 문제로, 관계의 문제로 , 오랜 아픔으로 ....

치이고 넘어져

매일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버거운

우리 .. 나.. .같은 자들에게

이 '고상한 ㅜㅜ.ㅜ;; 말씀' 이 언제까지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내 삶의 그러함을

어떻게 '기쁘게.. 실제로' 이 삶속에서

"이 일은 예수님 전도하기 위하여 쓰임 받으니.. '라고 깨달아 알며

기쁘게...

실제로 감사하게 받아 들이며 살것인가.. 말이다.

이런 고민..

이것이 없이

교회의 확장이나... 목사님 대우.. 나... 하나님의 얘기니 무조건 들어라 시는

지금의 교회들의 대부분의 설교들이

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더이상의 한계를 보이는 것이 맞다 .


그렇다면..

예수님을 전하는 것..

결과적으로 예수님 전파가

왜 내 인생에 의미가 있고

어떻게 해야 '선교'나 교회의 행사성 전도에 참가를 열렬히 하지 않더라도

'예수님의 전파'에 참여 하게 되는...

아니 최소한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이 왜 의미가 있게 되는 가.. 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이 인생의 온갖 '풍상'들이

더 이상 고통으로 만이 아니고

'의미'로 다가오게 되고

그래야만 '예수님' 진정 살아계셔서 나를 끌어가게 하시는

살아 역동하는 하나님으로서

확연히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


그것.

내게

오늘도

다시 .. 흐려져 가며 '고민과 우울'한 감정으로 파고들어가려는

연민을 흐트러 버리고

힘있는 하루가 되는

레마의 하루가 되는 것이다.



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그렇다면

어찌 '말씀' 자체가 의미가 되겠는가?

 

우리의 노력.

열심...

지적인 능력.. 신앙연수...???

 그래.. 모든게 다 변수가 되긴 하겠지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알면

아니.. 우리 하나님 믿는 기독교의 원리의 기본은 '타력종교'다.

내 힘으로가 아닌.. 오직 주의 능력, 주의 도우심으로.. 다.


그를 위해

예수님 ..'십자가 ' 를 베푸셨고

부활하신 그 예수님의 성령님이 매일 보혜사로 도우심이시다.

그게.. 기본이다.

그게 여호와 하나님

온 우주의 궁극에 계시고 모두를 말씀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뜻이시다.


그렇다면..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셧다 함이

드디어 '의미'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내 고난, 내 환란조차도

'예수님을 전파'하는 기회로 쓰임을 받음은

' '주의 손이 함께 계시기'에 가능하고

그리하심이 됨은

비록 내 현재, 인지의 한계를 넘어서

도무지 내 상황에서 이해가 안되는 상황일지라도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 분의 손의 도우실 것을 말씀하시니

그리 '주의 손이 함께 하실 것임'을 믿으면

내 삶이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고난이 유익이고

약함이 강함이며

눈물이 기쁨으로 변하게 되는..  



23.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그게..

'하나님의 은혜'다.


'은혜'...

난.. 이 단어가 너무도 좋다 .

누구도 그러하시겠지만... 나.. 특히 더 하다.


특별히 나이가 들어가며

더 나이가 들으신 우리 아버지 어머니..작은 아버지.. ..세대의

옛날 보다훨씬 나은 환경에서 조차도

결국은 '사망'의 근저에서

우울로 갈 수 밖에 없는

그 유한한 한계의 인간의 모습...

비교와 더 복잡해진 관계의 덫 속에서

허덕이다가 말라가는

이 인간의 숙명을 더욱 가까이 보게 되면서

그들

믿지 않는 불신자,

예수님 영접하여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분들.. 에게는

고난은 고난으로 ..

아.. 나이들수록 몸부림쳐도 빠져나갈 길 없는 '죽음의 숙명' 같이

점차 낙심 덩어리로 오지만.

우리.. 은혜를 경험한 자들에게는

주의 손의 도우심의 표현처럼

슬프되 슬프지 않고

힘들어도 덜 힘들고

아파도 회복되는 나른함의 그러함처럼

소망과 깨달음으로

달라진다.




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오늘 말씀 구절에 믿음에 대하여 몇번 되풀이 된다.  


 '믿음' ..

다시 처음 도입 부분에 써 놓았던 부분의 내용으로 돌아가야 할 듯하다.

'믿음'이 중요함은 누구보다 잘안다 .

누구도 다 그렇다 .

예수님을 믿음.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믿음.

그러함을 전도해야함의 중요성을 앎..


그러함

'믿음'이라는 이 절대의 명제가

오늘

내 삶에서의 '의미'에 대한 것..이다.

힘든 삶, 널널한 오늘..현재 지금에서 '믿음'의 방향...

삶 속에서의 영성.. 말이다.

그 믿음의 방향이

그 시절, 그 성령의 절절한 시대에

'믿음'의 방향을 어떻게 유지햇던가.. 를 바라보면..

내 연약하고 지루한 삶속에서 흐려져 가는 이 '믿음'이라는 단어가

확실해지고

성령이 이글거리고

주의 손이 함께 하시는

그러한 매일이 될 것이라는게

결국

오늘 내게 허락하시는 '레마'이란 거고

그것을 통해 내 믿음이 한층 더 성숙해지게 될 것이란 말씀인 듯하다..


 그들...'믿음'의 방향..

'눈'으로 직접 보시고

성령의 뜨거운 그러함을 절절하게 체험한 자들이

'이 땅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비되었다는 것과

그러함을 통해 우리의 마지막 시간 후 '소천' 이후에

주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땅에서

어떠한 모양이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다행이도 우리에겐 매일 레마로 다가오신다.)을 순종하기만하면

어떤 상황에도 소망으로 바라볼 수 있고

그러함으로 우리의 삶이 풍성한 의미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감사하다.



주님.

주신 말씀을 되뇌어 봅니다.

제게 .. 믿음의 방향, . 고난 중에 감사할 의미..

그리고 그러함의 근저에 '예수님이 어떤 이유로든 나로 인하여 전파됨' 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뻐할 당위성에 대하여 알게 하시고

그게 '앎'으로만 끝나지 않고

실제로

주의 손이

이 알게 되는 자의 심령과 삶속에 직접 역사하셔서

이글거리시는 성령 하나님이 이끄시는

'믿음'의 삶이 되게 하실것이라는

그 방향에 대하여

다시한번 뚜렷이 하고 계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그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것을 앎,

그러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알게하심

그리고 알게 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 마져 주장하셔

내 영혼의 깊은 곳에 '소망'으로 든든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완전한 배려를 하시는

그 온전하고 무흠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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