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생명, 결코의 선을 넘는[행11:1-18] 본문
8.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결코' 라는 단어를 보면서
내 안의 어떤 것이 들킨 듯하다.
'절대','단언컨대' '무슨일이 있더라도' '결코'...
내 좋아하는 단어들.
단정적인 언어.
때로는 간결하고 자기 확신을 가지게 하지만
자주 나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들.
내 '자아'의 산물일 수 있는 '가치'관의 단적인 표현.
9.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
난. .이 구절이 정말 좋다.
내 스스로 묶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내 '상처' , 내 '가치관' , '내 철학' , 내 인생관, 내 편견............들의 소리,
('결코'.. )
그로 표출되는 '묶임'.
멍에.
편견
두려움...으로 부터 나를 자유롭게 하심.
오직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심'이다.
주님이 그렇게 하심으로
내 생각의 지평들이 아주 넓혀졌고
지금도 넓혀져 가고 있다.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하던,
이 나이에는 불가할 생물학적 나이에도
계속 변화되고 발전되고 넗어질 수 있음은
오직
하나님의 깨끗게 하심 덕이다 .
예수 십자가 보혈과 부활로 인함이다.
그를 통해 오시는 성령의 은혜로 인함이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기인하는 예수 십자가 자격으로 인한 성령의 검.. 말이다.
성령의 불칼.
18.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그리고
그리함이 되게 하심은
그러하실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내 '죄'를 들고 나가
내 '아픔'을 들고 나가
아뢰고 '회개'할 결심의 선택으로 시작됨이다.
그렇다.
회개는 언제든지 '생명'을 얻게 한다 .
생명의 시작은 회개다.
그리함으로 성령 나님께서
내 생각을 터치하고 어루 만지심이다.
그런 자격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로 얻어짐덕이다.
가끔 '드라마'를 본다.
주말마다 올라와서
기능성 소파 (^^*, 뒤로 눕혀지고 발판이 올려지는 ..) 에 앉아
아내가 타준 'MY씨 커피 (아내가 수영장언니에게 배운 맛있는, 약간 변용된 일회용커피 ㅎ)'를 한잔 받아
찔끔 찔끔 마시며 보는 맛이
나름 '허락되어진 행복'으로 누리고 있다 ^^*
M방송사의 D꽃이라는 드라마가 '극'을 향해 치달리고 있다 .
거기에서 'LSJ' 배우님께서 연기하시는 대 재벌의 명예회장과
'LMS' 여배우께서 연기하시는 사망한 장남 며느리
그리고 그 안에서 희생자로 복수의 칼을 20년간 갈며
마침내 그 안에서 '전문 경영인' 회장 자리를 차지하게 되며 복수를 끝내가는 "JH" 배우..가 엮어내는
소름끼치는 '비정'한 드라마인데 세세한 심리 묘사가 볼만하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 속에는 ' 실적'과 회사의 유지를 위해서 모든 '관계' 마져 (아들, 손주.. )까지 비정하게 희생시키는
명예회장과
그 속에서 경영에 관심없고 사랑없는 장남 남편을 대신하여
자신의 아들(ㅠ.ㅠ;;)을 회장으로 앉히고 싶어서
모든 것을 희생 ( 살인도 불사 )하며
나름의 감정에 충실한 "며느리' ..와 얽히는 인간관계의 종극이 소름이 끼치는데...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두 세가지 '가치'가 확연히 드러난다.
당연히도 '돈 ', 배금 사상이 유일한 가치인 가운데
명예회장의 '자신만의 가치관' ..
즉, 그룹에 해악이 되는 것은 어떤 것도 용서할 수 없다 ...와
성골 (pure.. 한 핏줄이라는 대사)에 의하여서만 회사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결코'의 가치관에
며느리의 '결코' 자신과 자신의 아들 이외는 누구도 용납 못한다는
또 다른 '결코'에
희생자이자 천재적 복수자인 주인공의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그것이고...
그 결코의 가치관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파괴해가고
혼자(나.. 만.. 이다... 그 감정에 너무 충실하게.. .금수저 ..들의 그것인 듯 과장되어 드라마화 됨)만
쟁취하려는
이 현대, 물질 주의, 배금주의의 가치관, 포스트 모더니즘 (내 기분이 善 이다..) 이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그 소름 끼침이 말도 못하게 엮여져서
매회 욕지거리가 나오면서도 보고 있다. ㅠ.ㅠ;;
그러면서
그러한 기본 가치관이
이 시대에 만연되어 있음을 다시한번 개탄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하다 .
나를 돌아 보았다.
나에게는 '결코'의 가치관이 없던가?
아니다.
많다.
'터부'로 표현되기도 , 상처로 인식되기도 해서
절대로 넘어서면 안되는
내 가치관의 오류들...
이것들.. 비단 나뿐이 아니라
누구도 있겠지만
이 결코를 넘어서야 할 부분들이 너무도 많음을 느끼고
시간이 갈수록
그 '결코'의 터부들,
그 어둠의 선들,.. 라인들이 .. 멍에들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것들은
때로는 아프기 때문에 나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 안이 편하기 때문에
내 이익을 위하여
절대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게된다.
그래서 그 선을 넘어서는 자들, 환경들... 을 때로는 격렬하게 밀어내기도한다.
그것.
영적 성장을 얼마나 방해 하는지...
얼마나 타인을 원망하고 밀어대는라 에너지를 소진하고
역으로 그게 '죄'임을 다행히도 아는 내게는
스스로를 질타하는 '양심'을 가장하며
에너지를 깎여 먹이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의미를 가지게 되면 가지게 될 수록
점 점더 힘들어 지게 되어 왔었다 .
그동안....
물론 예수님 십자가 보혈과 부활로
성령의 검으로
하나님의 배려하신 그 놀랍고 완전한 '삼위일체' 은혜로
그 어리석음이 끊어짐을 알고는 있지만
절대로 '나 혼자' 되지 않아 오던...
내 인생의 .. (모든 원죄적 인간의 숙명이다.. 솔직히) 결박과 멍에들이 맞았다 .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말이다.
하지만...
그토록 어려웟던 그러한 '죄'들이
이제는 서서히 옅어지고 가늘어짐을 느낀다 .
말씀 앞에서 서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 삶 속에서 여러 간증의 증거들이 체험되어지고
말씀이 살아 움직여
빛으로 내 속을 조명하여 가면서
분명코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깨끗게 하신 것' 을
내 자아의 '결코'가 과연 어찌 막을 수 있다는 것인가 말이다.. ㅎㅎ. 할렐루야다.
난... 너무나 부정적인 불신의 시절을 지내왔다 .
그 엄청난 시간의 결코의 끈들이
그래서 '절대로 나는 안될 거라'는 부정의 관념들이
몇차례나 꺾어지고 끊어지는 체험들을 해왔다 .
' 첫사랑' 후 미친 사람 처럼 두손들고 찬양하고
눈물 콧물 흘려가며 기도하고.............
그외에도 내 상상에서 조차 있을 수 없던 수많은 일들이
내 속에서
내 삶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들이 증거다.
내 안에서 '평강'과 '자유'와 '행복'과 '감사'를 외치고
그러한 감성들이 거의 하루의 많은 시간들을 차지하는 게 그 증거다.
그러나, 아직도 ..
아니다. .. 이 글을 쓰기 위해
잠시 묵상을 하는 동안에도
너무도 익숙한 그 '결코'의 상념들이 날 사로잡으며
결코 용서할 수 없던 ㅠ.ㅠ;; 기억들이 날 붙잡으려 했다 .
하지만..
난.. 그럴 때 머리를 털고
잠시 회개를 한다.
이겨내려 노력을 하지 않는다 .
그냥 그 생각들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가져와 기도한다고
예수 님 앞에 몇마디 아뢰고
그러하심을 기대하고는 내려 놓는다.
그러면 '결코' 용서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내 그러한 어리석은 죄들이 물러가는 듯하고
내 마음을 가벼워지며
이 미운 자에게 '결코 ' 말씀의 레마를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스르르 다가와
미움으로 그득해
결코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내 마음에 따사로움과 든든함이 넘치며
내 콧날이 시큰 거리는 느낌과 더불어
내 손가락은 자판위에서 마구 달린다.
그렇다.
그게.. '하나님이 깨끗게 하심'의 현상들이라 생각되어지고
나는 이제 '결코'의 묶임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넓혀지게 됨을 깨닫는다.
참... 감사하다 .
부디 빌기는
세상의 모든 '돈꽃' 불신자들과
그들을 흉내내고 싶어하는 '거짓 신자'들이
하나님의 깨끗게 하심으로 풀어지는
진실한 행복을 같이 누리다가
천국의 영생으로 들어 갔으면 한다 .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갈 곳 주님 앞 뿐이더라[행12:1-17] (0) | 2018.01.30 |
---|---|
실제의 믿음[행11:19-30] (0) | 2018.01.29 |
온전한 나를 위하여[행10:34-48] (0) | 2018.01.27 |
매 순간, 하나님앞에 서다[행10:17-33] (0) | 2018.01.26 |
황홀한 믿음[행10:1-16] (0) | 2018.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