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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나는[신33:1-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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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나는[신33:1-17]

주하인 2024. 4. 25. 06:40

부제]나는 이래(뵈)도 축복받은 자다

       나는 말씀 앞에 서 있는 자다

       나는 분명코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 맞다

.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하나님  안에서는

죽다는 것이  축복 못할일은  

절대로 아니다

 

 

보라.

모세는 잘못으로 인하여 '가나안'땅을 밟지 못하는 명령을 받은 자지만

그의 '축복함'을 하게 하시는 '자격'에 대하여는

하나도 다름이 없다 .

죽기 바로 직전까지 '백성을 축복'하는 자리가

'징계성 차원'의 '죽음'을 받았다... 

 당연하지만 의미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이땅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 

 

 그 정수가

'죽기 전에' '축복'하는 '모세의 묘~한 자격'에

다 그대로 보여진다. 

 

 각설하고.. 

 

 그의 '축복함'을 마주 하면서도 

깨달아지는 바가 여럿있다. 

 

 그의 바로 직전까지의 말을 되집어 보면

무서운 저주의 말들이다. 

그리곤 곧 '축복'을 말씀하신다. 

 

 '축복'과 저주

무기력과 '축복'

묶임과 풀림.. 

어제 말씀에 '다 불쌍히 여기신다'는 그 말씀 한마디에 

이 양립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교차함에도 

결국 하나님 안에서는 

'견고한 반석'

'the Savior  구주' 로 이어짐이 이해가 되어지지 않은가?

 한단어로 

'사랑'이시다 .

 그 사랑에 겨우셔서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의 예표이신 '모세'를 보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 .을 

풍랑을 허락하심이시다. 

 

 

 이제는 주님의 이 말씀이 이해가 간다 .

 

 이 인생의 롤러 코스터,

며칠전 말씀의 '독수리의 그 롤러코스터'... 

그 모든게 '축복'이라고... 

 

 그렇다. 

'주님 안에서 만 서 있을 수 있다면'

'인생의 그 어떤 것도 축복이 아닌것이 없다'다.

 

 나.

비록 지금은 이래도

'축복 받은 자다' 

구원의 반석, 

구주의 허락하신 단단한 지축을 밟고 서 있는

진정한 축복의 자다. 

날이 갈수록,

인생의 모든 것들이 이제 부질없이 느껴지고

그 실체가 드러날 수록 

그러함이 확신으로 다가온다. 

 

3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 NIV ; Surely it is you who love the people; 사랑하시는 것은 분명 당신입니다]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보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백성, 

이 부족함 덩어리 ,결점덩어리 ........나, 우리를

'사랑하시나니'....하신다. 

 이 표현이 좀 묘한 뉘앙스로 다가왔다 .

 

 '사랑하였기 때문에......'라 해석하기에는 어딘지 허전하다 .

사랑하심이 당연한데...왜 굳이 '사랑하시나니'...라 나올까?

말씀의 맥락상 어딘지 표현이 좀.. 그렇다 .

마치 영혼없는 수사처럼.. . 

그래서 'NIV'를 들여다 보았다. 

 

"Surely it is you who love the people;사랑하시는 것은 분명 당신입니다' 라 나온다 .

 분명히 주님은 날 사랑하셔서 

이렇게 인도하셔 온다 신다. 

 위의 첫구절 말씀과 의미가 이어지는 거 맞지 않은가?
 분명코 주님의 인도하심은

'롤러코스터'같은 내 인생인 듯하다. 

내 딛고 서 있던 발 지축이 물렁물렁한 듯 어지러웠다. 

축복과 저주.. 

주님이 날 사랑하심을 확신할 즈음에 혼돈.. 

허락되어지는 수없이 많은 인생의 어려움과 강력히 임하시는 임재............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고백할 수 있는 이 즈음,

주님이 내 반석이시고

난 그 반석 위에 단단히 서서

그럼에도 몰려오는 '풍랑' 조차

주님의 허락이 아니시고는 있을 수 조차 없음이 확신 될 즈음,

그러기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축복과 저주'과 뒤 섞여 있는 듯해도 

그 마져도 '날 불쌍히 여기셔서' 허락되어지는

모든 '사랑'임을

주께서 확신하게 하신다. 

 

이제는 그렇다.

그러함을 '축복'의 정수라 하신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것은 

나'임을 확신하는 삶.

그 온전하고 확실한 삶,

주님 안에서 

허락되어진 온통의 풍랑을 

'초연한 눈'으로 바라보며

오직 주님 뜻과 영광 만을 생각할 수 있는 자 되는 것.......

그 끝.. 말이다. 

 

 그러한 자들을 

주님은 이렇게 정리 하여 표현하셨다.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 자'

 

 맞다. 

난... 

서서히 확신이 들어간다. 

 

 '주의 말씀을 받는 자'로 살아가는 자.

이제 점점 더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 살아갈 자(아직은 확신이 없다 . 더 그래야 한다.   하나님의 발아래 앉는 하루 하루.. 어떠한 의미인지는 안다.  적용을 자주 잊고 놓쳐서 그렇지.. ㅠ.ㅠ)로

'주님의 사랑을 받는 자로서  확신'

'주님께서 분명코 사랑하시는 자로서의 나'를 확신 되어져 가고 있음이 말이다. 

 

 나.

다행이.. 

말씀을 매일 묵상하고 있다. 

 

주님이 말씀으로 매일 다가오실 기회를 열어주셨고

난.. 매일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붙들고 있으며

그분께서 내 인생의 여러 상황에 맞는

정확한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나.. 

말씀이신 로고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는 자다 .

점차로 '주님을 내 인생의 반석'으로 느끼고 살아져간다. 

주님 반석위에 내가 서 있다. 

 

지금 이렇지만

이래도 난...

주님의 축복 안에 살고 있다 

말씀으로 인하여

난 

절대로 떠나지 못할 것이다 .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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