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실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신33:18-34:1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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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장
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 이라 신다.
가슴이 뜨거워지려 한다 .
괜히..
'주하인아 너는'..하시는 소리로 들리려 한다.
"주하인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말이다.
늘 '불안하고 불행한 일이 하시라도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위기 속에서 살았고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이라는 실제를
내 가슴이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내 딛고 사는 발바닥이 하시라도 꺼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두려움이 늘 잔존한 느낌 속에서 살았었다.
그러기에.....'행복'이란 단어는
나와는 거리가 먼 어떠한 수사인지 알았었다 .
그러나..
그러한 나에게
'성령님의 은혜'로 강력히 몰아치신
그 ' 예수 구원의 첫사랑' 기억이 서서히 잊혀져 가려할 즈음
주님은 또 '기도'할 때...
그리고 '말씀' 묵상이
자연스레이
내 삶속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그때부터
내 영혼 속에
'평강'.. '샬롬'이란 단어로 응축되어진
'안정된 요새 ,fortress'의 삶이 깨달아지기 시작하였다.
바야흐로... ^^*
그게 얼마나 기쁜일인지
그리고 그러한 안정감으로 사로잡히는 ^^* 마음이
내 잠시 잠시 휘돌아 올라오는 '불완전한 마음의 장난'과는
아무 상관없이
얼마나 지속적이고 잔잔하며 오래가는 지...
그러면서 점차 ,
예수님 영접한 지 수년이 지난 40몇살 이후까지도
그렇게나 오래 내 '좌측 반신'을 아프게 하고
등골이 시리고 아프게 하고
또 항상 눌리는 것 같던 어깨의 통증이
어느새 사라져 버리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거의.. 잊혀진지 오래다 .
그러고 보니.. 그렇다.
할렐루야다.
말씀을 묵상하며 그렇다.
혀도 자주 ...
두통도........
등골 시린것도......ㅠ.ㅠ
사뭇 스트레스 증후군은 그러고 보니
다 달고 살았었네...
그러고 보니..
그러한 상태를 '샬롬', 평강이라 표현했고
난.. 인사의 거의 대부분을 '샬롬'이라고 마쳤었다.
왜인지는 모르게 지금은 훨 덜하지만.. ㅎ
각설하고
그러한 '평강'의 상태
그러한 안정감을
주님의 임재하신 임재감이라 표현한다는 것을
세상의 모든 ,
주님을 깊이 체험하는 자들의 공통된 표현인
임재감을
나도 동일하게 인정하고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
그러함의 상태를 세상 사람들 공통적으로
'행복하다'라 표현한다는 것도 알게 되어 버렸다. ^^*
그리고 그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말씀 앞에
주님 안에 서 있을의 그것이
진실이고 유일한 진짜 행복이란 것도..
할렐루야
문제는
항상
더 깊고 강하고 오래가게
그 행복이 지속되고 안되고는
내 '영적 상태'를 비례한
하나님의 주권적 허락하심에 있지만... ^^*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 충만하였다 생각되어지더라도
잠시 세상에 발을 담그며
내 육적성향에 끌리거나
실수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즉각 스러져 가는 게
내 강한 육적 성향에 있는거지만...
그러나 이제 점차로 깨달아 간다.
로고스 하나님.
말씀이신 하나님을
말씀 묵상으로 내 안에 모시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말씀을 근거로 한 어떠한 논리적 추론을 넘어서
말씀 그자체,
오직 '로고스'만으로
내 행복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
도저히 , 이전의 행태나 경험으로는
가능치 않을 '마음의 고요함'...잔잔해짐이
말씀 , 레마 한마디로
순간적으로 '고요~ '해지고
그러한 잔잔한 고요함,
평강의 마음이
참으로 오랫동안 유지됨..
평강, 평안해짐은
이전의 내 '육신'의 고장난 증상들도 완화되어감을 의미한다.
당연히..
그거야 말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가 알아치리기 시작한 증거임을
깨달아 알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 경험들..
그 행복의 증거들이
점차 '오래'.. 점차 강하게 되어감에 따라
난 이제 '별로 흔들릴'일이
이전 만큼 많이 있지는 않게 되어간다 .
'초연'.
그렇다.
언젠가 부터 '모세님의 한발 뒤로 물러섬'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시면
그 수없이 많은 '의구심'에도 불구하고(왜... 왜.. 왜....도저히 주님의 뜻 .. 말고는 이해가 되지 않을 그 수없이 많은 생각들 ... 말이다.^^*)
단지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그 행위의 순종이
'곧 천국'일 것임을
의심하나 하지 않고 받아 들이며
그 마져도 '선'임을
내 영혼이 받아 들여 알아차려 지게 되는 현상.
그리함으로 마음이 고요하고 흔들림이 없는 든든함으로
세상을 고요히 바라볼 수 있는 상태.
초연을 묵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근본은 '행복'이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이 '모세님'..
진정 행복이 무엇인지
그 행복의 차원을 수없이 넘어선 경지의 차원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릴 듯한 경지'에 오른
모세님 스스로를 닮을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리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아
너희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그거.
본인의 깊고 진실된 체험으로 우러나오는
'고백'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행복한 사람이다. 너는... 그러기에 뭘 걱정이냐.. 네가..." 하시던
뜬금없던
그 옛날 주하인의 그것과 동일히
불안정하였던 젊은 시절 아 ㅂ지의 그 ..
지금도 '싫게 ㅠ.ㅠ... 쟁쟁히.. ' 내 뇌리를 긁어대던
그 말씀과 똑같은 소리이기도 하다 .
'행복한 사람이다. 너는... 네가 뭘 걱정하냐... 네가.. 네가... ' 한다고
진짜 행복하여지던가?
그게 '강요'로 이루어지고
논리로 자기기만 하며
그러한 수도없이 많은 세상적 근거를 들이대려
이것 저것 찾아대어 경험하려 한다고
과연 '행복'이 찾아오던가?
행복한 듯한 착각들이
모래가 손 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빠져나가는게
'행복'이 아니던가?
그런데... 주님 말씀은
당연히도 다르다.
살아서 역사하신다.
힘이 있으시고 권세와 권능이 나타나신다.
부인할 수 없는... ^^*
"주하인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그 말씀 자체로
난... 정말 행복한 사람으로서
잔잔한 기쁨이
지금까지
30여분 이상..
이 블로그에 말씀을 붙들고 쓰고 있는 내내
유지시키고 있는
이 현상을 통해
하나님은 진정
'말씀으로 만으로도
심령의 변화'까지 체험시키고 있으시니
이거야 말로 기적 아니던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
매일 일상의 기적 !
말씀이 로고스고
말씀이신 하나님... 말이다. ^^*
할렐루야.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된다 .
그 하나님이 '행복한 자'라 신다.
나..
그 당연한 사실이 '믿기어 지며'
마음의 변화까지 체험하는 데 까지는 왔다 .
'행복'하다.
그렇다면
주께서 어떠한 근거로 그러시는가?
당연히 믿어지는 그 현상을
더 뚜렷이.. 무어라 말씀하시는가?
'돕는 방패'
'영광의 칼' 을 말씀하신다 .
말씀이 있으시니
방패가 주어진거다 (성령의 방패, 칼..흉갑, 투구... 뭐.. 그런거 아닌가..당연히..?),
또 칼이 주어진거고...
그래서 그 칼과 방패를 가지고
'악한 사단의 궤계'를
복종시키고
밟게 하심으로
영적 승리를 허락하심이시다.
34장
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아직,
이땅에서의 끝을 다 안 끝내셨다.
주께서 '모세의 마지막' 을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보게'하심으로
마무리를 짓게 하신다.
주님과
모세님 만의 ceremony !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끝까지
인생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뜻 부분을
여지로 남겨 놓으신다.
주께서...
주하인이 ....
이 개미보다 못한 인간이...
어찌 비율적으로 보아도
사람보다 '어마어마어마.. 하게 크신' 분의 뜻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감사하게도
주님은 끝까지 그리 보여주신다 .
'천국' 이 당연히도 좋지만
이 땅에서의 조금 부족한 죄의 징죄로
'불러올리는 거다'.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마지막 '회포'를 풀어라.. 하시는 듯..
난.. 천국이 좋은데
지금도 부르시면 두손들고
하나의 회한도 남기지 않고 올라갈 수 있을
초연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거 같은데.. ^^;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사랑하시는 진정한 당신의 자녀들,
선택받은 소수들..
좁은 길을 가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할 지는
사람마다.. 인생의 여정 길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가장 부러운 죽음의 모습 아니겠던가?
아..
아직 '육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범생 주하인 말이다. ^^;
주님.
오늘은 '행복'에 대하여 묵상하게 하십니다
굳이 그러할 만한 이벤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내내 '평온'하고 '고요'했습니다.
내내 아랫배가 따뜻하고
가슴 한구석이 잔잔한 간지러움 같은 것이
절 사로 잡았습니다.
머리속 어디엔가
아직도 날 긁어 대려는
아주 오래오래되어진 '과거의 논리'들이 갉아대는 흔적은 느껴지지만
그러함보다는 훨씬 더 큰
행복의 감각들,
기쁨과 소망이란 표현에 합당할 감정들이
내내 절 붙듭니다.
'주하인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주님이 그리 선언하시니
그게 믿어지고
제 마음과 육신이
이리 반응합니다.
살아계신 내 주님이시여
그 근거가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내 영혼에 흐르시는 '성령'의 은혜를
이 부족한 제가
점점더 뚜렷이 알아듣는 현상이 아니고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주여.
주님 말씀을 근거로 한 성령 안에서의 거함.
그거야 말로
돕는 방패
영광의 칼이시요..
영적 전쟁에서 '사단의 궤계'를
복종시키고 밟아 누르는
승리의 증거들이라 확신되어집니다.
주여...
그래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감사가 나오고
그래서 기쁩니다.
이 고요한 감사의 기쁨이 점점더 확장되어지며
제 태도는 '초연'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입니다.
주여
살아계신 내 하나님이시여
오늘도 행복할 주하인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 감읍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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