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언약의 시작은 쓴뿌리를 드러냄부터[신29:14-29] 본문
부제) 내가 그랬다 & 난 그럴거다
.
14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making this covenant'
'언약'은
계약된 약속이시다.
'세우시는 거'다.
우리의 '선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축복의 약속이시다.
지속적으로 '저주'와 '축복'을 대비시키면서
주님의 말씀은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시는 듯한 말씀을 하신다.
거기엔 '우리의 선택'을 통하여
간절히 내 안에서 '주님'이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친히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어'
우리와 교류하는 삶의 역사를 보시길 원하심이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혼이 완전 성화되어
주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길
정말 간절히 바라시는
철저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언약'의 본질이시다.
18 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
NIV; Make sure there is no man or woman, clan or tribe among you today whose heart turns away from the LORD our God to go and worship the gods of those nations; make sure there is no root among you that produces such bitter poison(18 오늘 너희 가운데서 마음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외면하고 그 열국의 신들을 섬기는 사람이 없도록 하여라. 너희 가운데서 그런 쓰디쓴 독을 낳는 뿌리가 없도록 하여라.)
오늘 '독초'와 쓴뿌리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개역한글에서 나오는 '염려'는
NIV에서 나오듯
'쓴 독을 낳는 뿌리'가 없도록 '확신하라' .. 없도록 하라.. 심이
옳다 .
동일한 뉘앙스이긴 하지만
이럴 때 'NIV'해석이 훨씬 더 명확한 경우가 종종있다
염려는 부정적 뉘앙스 아니던가?
각설하고
무슨 말씀이신지
너무도 명확하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그게 그렇게 그렇게 흘러와
내 '성품'의 일부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내 특성처럼
내 안에서 교묘히 자리잡고
되풀이 되풀이 되는 '하나님의 원리가 아닌' ..
그 독초의 뿌리 때문에
'언약'이 ,
온전한 축복이 내 삶에 임하지 못하는
아니다..
주님이 그토록 이 땅에서도 주시고 싶어하시는
온전한 축복의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음이다. ㅠ.ㅠ
언약을 못하게 막는
아니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쓴뿌리'가 무엇인지
다시한번 내 일상에서 돌이켜 보아야 하지 않던가?
나...
어제도
그제도
얼마전에도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어렵게 하는 그 쓴뿌리가 있고
그것을 이겨내려
말씀을 근거로 그리하는게 옳은 듯 해서
이겨 내려 애쓰지만 번번히 넘어진다.
조금은 옅어지고
조금은 더 주님 앞에서 돌이키려 하는 결심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본질 적으로 깊은 '뿌리'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그러한 것...
깊은 뿌리를 이제 마주 하라 심이시다.
주님의 언약이
이제
완전히 내 삶에서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쓴뿌리를 뽑아야 한다.. 신다.
그거.
어떻게 인가?
우선 인식이 중요하지 않은가?
싸움에서 진것만 몸부림치지 말고
그 뿌리의 존재를 인식함이 중요하다 .
그리고 그 뿌리를 뽑아야 하는 당위성에 대하여
조금더 실제로 느껴야 한다 .
당연히 말씀으로 그러시니 그렇다 .
그 쓴뿌리는
내 영혼의 성전에 당연히 들어 앉으셔야 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내 친 하나님이 되시기 위하여는
아직도 번연히 뿌리 깊이 자리 잡아
내 영혼의 일부분인 것 처럼 행세하고 있는
'사단'..의 그러함을
드러내야 한다 .
'염려'라는 표현 되어 있지만
확신하라고 하고 있으시다 .
그렇다.
그러함도
깨닫는 마음도
보는 눈도
듣는 귀도
주님이 때가 되어야 허락하신다 신다 .
당연하지만 우스운 것처럼
아니지만 그런 것처럼 가장하며
내 일생을 좌지 우지
하나님 처럼
때론 내 자신처럼
내 안에서 종횡무진하는
독초의 뿌리를
이제는 내 놓고 말려 야한다 .
주님이 그러라 시니 그래야 한다.
계속 떠오르는 것이 있다.
'풍랑' 마져도 허락하신 '예수님'이시다.
그 풍랑의 바다에서 진정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풍랑'을 멈추어 달라고 몸부림치고
풍랑을 멈추신 예수님을 기뻐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능력이 대단하신게 그런 하나님을 내 구주로 모신
우리가 정말 다행임을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 올림도 정말 중요하고 귀하지만
실은 이제
주님께서 내게 바라심은
'그 풍랑마져 허락하시고 만드신 주님'이심..
그 주님을 가슴 깊이 인정하고 믿어 버리는 것..
그러기에 풍랑의 멈추고 안멈추고는
더 이상의 문제와 관심이 되지 못해버리게 되어
내 안에 '예수님'..
이 풍랑 밤바다에 내가 주님안에서
주님의 등뒤에서 '풍랑'을 바라보는 자의 태도가 되어
그 풍랑의 유무
없어지고 존재하고의 차이는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니며
어떤 일에도
내가 주 안에 있고
주님이 내 안에 계심으로
흔들림이 없는 평온함으로 지속될 수 있는 것..
그게 주께서 내게, 이제 조금은 성장한 우리에게 바라시는
진정하신 '뜻'이 아니실까.. 하는 부분이다 .
그렇다 .
오늘 '독초의 뿌리'에 대하여 말씀하심이 그런 거 같다 .
살다보면 '풍랑'은 불가피 한거다
내 풍랑은
내 안의 쓴뿌리가 되풀이 잡초처럼 되풀이 되며
좌절을 되게 하고
나로 하여금 '언약'이 무슨 의미인가..
나같은 자에게 가당하기나 한... *&^%$... 하며
하나님과의 거리를 멀게 만드는..
지금까지 내게 나름대로 성공하며
진득이도 붙어 있는
이 독초의 뿌리,
사단의 마지막 궤계가 아닌가 싶다.
오늘.
주님께서 언약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금 명심하게 하신다.
그리고 그러함을 막아서는 쓴뿌리의 독초를
언약의 차원에서 마주 하고 명심하라 신다.
그렇다.
난.. 내 안에 자리잡은 뿌리를 드러내야 한다.
되풀이 되는.. .오래된.. 그거 말이다 .
그 안의 사단 말이다 .
주님.
알 듯하나이다.
하나님을 막아서는
모든 악한 생각들..
속절없이 막아서 언약을 생각지도 못하게 하는
이 좌절의 덩어리의 원류..
주님.
그 독초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언약'에 대하여 말씀하셨으니
이겨내 기분 좋은 하루 , 쾌청한 바다 물결을 기대하기 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언약,
친히 내 하나님이 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더 명심하길 원합니다.
주님의 등,
밤풍랑 바다에도 존재하시는 '예수님의 등'을 묵상하고 살아
더 이상 '그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에
속절없이 감정이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절 붙들어주고 도우소서 .
어제 말씀처럼
알아듣는 귀
보는 눈
깨닫는 마음 조차
주님이 허락하셔서
바야흐로 그때부터 언약의 축복이 시작됨을 말씀하셨사오니
제게도 그리하소서.
잊지 않는 결심과 결단을 주소서.
오직 성령께서
그 어떤 풍랑도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이루어지지 않음을
제 영혼이 명심하도로 붙들어 주소서.
그래서 '더 이상 죄'의 쓴뿌리에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자책의 좌절에 휘몰리지 않도록 붙드소서.
간절히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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