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신28:58-68] 본문
부제) 감당하기에는 너무 두렵고 감당하지 않기엔 너무 영화로우신 분
두려워하기 보다 경외해야 한다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 하던가
당연히도 하나님은 그러신 분이시다
너무 크고 너무 아름다우면
놀랍기도 하지만
가슴 한구석 어디인가 부터
알게 모르게 감당할 수 없을 듯한
두려움 비슷한 감정이 올라온다 ^^;
때로
우주를 보여주는 동영상을 볼때
나도 모르게
그 감당하기 힘든 단위들에
가슴이 턱막힐 때가
자주 있었다
처음
'캐나다 록키산 ' 안에 들어갔을때
그 장엄함의 아름다움이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아름다움이었지만
곧이어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슬슬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으려함을 느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과연 저러한 잠시의 그러함들로
형용할 수 없는
하지만 비슷한 유형의 느낌으로
가슴이 벅차올라
혹여,
기절하게 되지는 않을까
불현듯
이 작은 가슴 속으로
깨달아져 온다
그렇다
영화롭고
두려운 경외.
그 실체를
이제는 말씀으로도
은혜로도
살아오면서 함께하신
그 경험의 축적으로도
조금은 더 뚜렷히
내 삶에
적용할 수 있을 듯 싶다 .
58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NIV revere this glorious and awesome name—the LORD your God—)
하나님은 그러신 분이시다.
당연히도..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온 우주, 그 우주의 우주를 넘어서
홀로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러신 분이시다.
'네 여호와 하나님' ..
내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 홀로 하나이신 분이
내 하나님이시다.
아.. 정말 가슴이 벅차 오르려 한다
가지고 있던 온갖 내 속의 알 수 없는
두려움 (경외와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공포로.. 두려움으로 오인되고 착각되게 하는 그 .. 두려움 ㅠ.ㅠ;)과는 전혀 다른
revere, 존경하고 숭배할
'경외'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시다.
그 분은 영화롭다.
그런데 그 분은 두려운 분이시다.
그래서 그 분은 '숭배'해야한다 .
'경외' 말이다.
그분은
그 이름 만으로도
'경외 받아야할 '
당연한 분이시고 분이시다.
아..
이.. 영화롭다.. 는 표현이 가슴에 온다.
그 말씀이 '저주' .. '죄'.. 두려움.. 공포.. 라는 단어와 더불어 나온다 .
'복'과 '저주'가 같은 장에서 되풀이 나오듯..
그것..
영화로우신 분이
경외롭다는 표현과 같이 나옴이다 .
그 분은 '영화'로우신 분이다 .
두려운 분이시다.
경외로우신 분이시다.
그 두가지 양립하기 어려운 감정이
하나로 존재해
'숭배', 경외... 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단지, 저주
단지 '두려움'
단지 '공포'는 '사단'이다.
흉내를 내는..
이제는 다르다 .
두렵지만 영화로운 분이시다 .
무섭지만 아름다운 분이시다.
힘들지만 '순종'하면 무엇보다 '유혹적'이신 분이시다.
어찌 표현해도 감당할 수 없는
너무도 큰 '에너지' 다.
감당하기에는 너무 두려운,
그러나 감당하지 않기에는 너무 영화롭고 아름다와
'경외로운 분'
존재 자체,
말씀 자체의 경외.. 그러한 분이
여호와 하나님.,
홀로계신 온우주의 독보적 존재이시다. ^^*
십몇년 전(2008년),
지금은 소천하신 P원장님의 주재하 병원 직원들 대상으로 하신
'비전트립'의 일환으로
처음 마주한 '록키 산'은
그 웅장함으로 인하여
너무 가슴이 벅차더니
얼마 지나니 '무서웠다' ..
그게 '경외'의 아주 작은 유사 감정이었을까? ^^;
오늘 말씀은 여전히 '저주'의 말씀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말씀 중에 '경외'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너무 두렵지만 너무 아름다운... '
일단 우선 떠오르는 것이 '록키산' 속에서
감당할 수 없는
처음 겪어본 마음이 저랬을까?
먼저 다녀오신 '동료의사'의 표현에
'너무 광활해서 무섭다'는 표현이 맞다는 ..
그러나, 그보다 더 아름다움이 커서
그리고 감당할수 있을 정도여서
그 산을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어둠이 밀려오니 그 공허감까지 겹쳐지며 힘들었었다.
그러함..
하나님 앞에서면
아니.. 굳이 하나님까지 아니어도
이 우주의 단위들..
그 안의 시간의 단위들.. 수억, 수조 광년........
그리고 그것을 말씀으로 만드시는 '하나님'.. 앞에서면
기절하거나
아예.. 그 에너지의 측량할 수 없는 무게에 '폭팔'이라도 할 것 같은
그러함이 '경외'의 본질일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름답다.
영화롭다.
.. 그게 하나님이시다.
아침부터 아무리 검색해도
심지어 chat GPT에게 '이미지 생성'을 해달라해도
그래.. 겨우 그 수준.. 이었다.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한계.
그래서 내 블로그를 뒤져
'록키산의 기억' (<- 궁금하시면 click ^^*) 을 잠시 떠 올려 보았다.
경외의 일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소환 ^^*
각설하고
주님을 믿고
또 하루를 살아간다 .
나..
주님 말씀을 듣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오늘도..
다행히 그러함을
내 인격의 그리 옳아 보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에도 ^^;;
그런 '나를 귀히 여기시는'
나를 보고 그러신다 .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경외'하는 자구나"
너..
주하인 "
할렐루야 입니다.
경외하는 자,
주님을 경외하는 삶의 시작을
또 주님 말씀 앞에 하고 있습니다 .
여지없이
눈뜨자마자 주님 말씀에 눈돌리려는 저를
수십년 익숙히 사로잡아 끌고 가려는
사단의 교묘한 생각들이
절 붙들려 하고 있었습니다 .
당연히도
'경외'.. '아름다움'.. '영화로움'.. 보다는
'고난'.. 고통, .. 추악.. 실망.. 미움의 흔적들로
나를 자책하고 실망하여
주님의 말씀을 통해 .. 나같은 자가 무엇을.. 하게 하려 하며
'저주'의 말씀만 눈에 들어와
그 저주를 뚫고
회개와 돌이킴의 선택으로
주님을 '섬기는 자'의 어떠함을
멀리 느끼게 하려 했습니다 .
'참으로 다행히도'
주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 .
경외가 어떠한 느낌이고 상태인지
말씀을 듣는 순간 느끼게 하셨습니다.
영화롭고 아름다운 주님...
그러나 두려우신 주님.
그 주님의 같이 계심을 통해
두렵기는 하지만
무섭기만 하지는 않음을
깨달아 알게 하셔서
'저주'의 말씀이시어
하루가 불쾌하게 시작하기 보다
그 깊은 뜻을 깨달아
아름답게
경외하는 주님의 뜻을
사랑으로 받아 들이게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경외하는 자..
영광 앞에 서 있는 자 되게 하셔서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도
승리하게 하시니
진정 감사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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