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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의 마땅함 들에 대하여[신14:22-2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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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의 마땅함 들에 대하여[신14:22-27]

주하인 2024. 1. 29. 06:32

(펌)

십일조는

마땅히 드려져야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시는 곳이란

증표이기 때문이고요

당연히 그러하기에

그리되어야 함이 마땅하지요

 

십일조를 드리는 자들의

당연한 누림은

평강이고 감사고

그 결국은

이 땅에서의 심령천국이며

그들의 운명은

'하나님의 이름이 두어진 곳의 삶'이라십니다

 

그러한 우리의

남아 있는 권리이자 의무는

마땅한 마땅함을

마땅히 누리고

마땅히 베풀고 

마땅히 흘려 보내는 것...

 

사랑이라 말씀하십니다

 

주여.

그 모든 깨달음과 누림과 결심에도

주님의 은혜

성령의 함께하심으로 

붙들어주시고 도우소서

 

이 미련한 자.. 

오늘도 함께하시는

지혜의 주님께 의탁하고 

감사드립니다. 

 

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십일조'는 '마땅히' .. ...하셨다 .

 

 당연히 드려야 하는 것........

하지만. 습관처럼 하다보니(참으로 다행인게 십일조에 아깝다고 생각해본것이 기억에 꼽을 정도다 ..  그 시간도 일초도 되지 않을까? .. 그러한 마음을 내 예수님 영접 첫달부터 지속해왔으니.. 그게, 그러한 마음 주신게 은혜와 진정한 복이 아닌가?  오늘 말씀을 보면서 새삼 깨달아 진다.   예수님 영접, 그 첫사랑이 벌써 1997년 12월 28일이니  근 30년 되어간다. ㅎ..) 의미를 잊고 지내오다

갑자기 십일조의 의미를 말씀하시니 

그게 새롭다 .

 

 '십일조'는 우선

'마땅하다' 신다. 

마땅 한 것을 마땅히 드리는 것..

그게 당연함으로 자연스러운 호흡하는 것 같은 것이 됨.. 

그것을 신앙생활 처음부터 지금까지 누리게 하시는 것.. 

누림을 누림으로 느끼게 되는것,

자랑스러움,

아까움,

아쉬움, 

갈등이 없음은

 

 

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네 하나님 여호와 앞'..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고 택하신 곳'에 서기위한( 그 의미는 아래에 AI가 정리하여 놓은 것을 긁어다 놓았다 ^^*)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의 자격을 갖추었음이

오늘 '십일조'의 마땅한 이유에 대한

그 첫째이다 .

 

 당연하고도 너무 당연한 전제...

살아 있어 이 인생의 여정, 

이 광야 연단의 인생,

삶을 살아가게 하는 '목적'이

결국 '성화'되는 과정을

주님과 손잡아 동행하며 보여드리다가

마침내  온전한 영혼으로 주님 나라 올라가는 그거 아닌가?

 이 땅은 당연히도 '영적 전쟁'터 이고

잠시의 틈만으로도 넘어지기 쉬운 곳이 이 광야 인생의 매일이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한 곳'이 

내가 되어야 하고

내 안에 그러하신 '성전'이 마련되어야하고

날이갈수록 더욱 더 '그리되어야 '함........

그 당연함의 가장 기본 중 기본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영혼'.. 임을위하여

그 마땅함의 마땅한 우리의 행동이 '십일조'에서 시작함이 맞다는 말씀이다.

 

 2번째로 

십일조는 '드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먹고' '배우는'...

삶과 전혀 괴리되어 있으면 안되는 거란 이야기다.

 

 당연하다. 

정말 당연하고 마땅하다. 

 

 여기에 오늘 레마의 흔적이 들어 있음이다. 

어쩌면 연말정산 때를 제외하고는

'습관'처럼 그냥 스마트폰으로 보내고는

잊어먹고 지내던 십일조 의미에  대한 

다시한번 기억하심이시다. 

 

 십일조는 '축복'이기도 하다 .

삶의 자연스러운 누림이시다. 

돌아보면 정말 되뇌이기 싫은 죽기보다 힘든 인생여정들이 산재해 있지만

지금 현재.. 나.. 

주님 손잡고 살아가게된 

어쩔 수없는 이 '십일조의 인생'^^*이 

절대로의 '은혜'의 삶이었음을

이제는 확실히 고백할 수 있다. 

 

 내 분명한 인생관은 어두움 뿐이었다. 

절대로 재미와 흥미가 남아 있을 근거가 없었고

주위를 보아도 '말초적 재미' ..

'자신이 절대로 틀릴리 없다는

자기 신념이라는 의미없는 확신이외

그 어디에도

결국 늙어 사그러져가다가 영원한 망각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게

이 인생들이라 생각해왔었다. 

예수님 깊이 알기 전............까지 ..오래도록.. ㅠ.ㅠ

 따라서 그러한 내 관점대로라면

내 .. 지금 .. 이 늙어가는 시점의 나는 

그냥 ...하루하루 죽지못해 살아야 한다 .

아니면 흥미를 돋우려 마구 잡이로 살던가.. .ㅠ.ㅠ... 

 

 하지만.. 

아니다. 

정말.. 

하루하루가 그냥 괜~찮다. 

평온~하다. 

내 평생.. 내 젊을적 누려보지 못하던 고요함과 잔잔함과 

나름의 작지만 오래 유지되는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흥분'비슷한 느낌이 있다 .

이것을 '소망'이라 표현해도 될까?

어딘지 모르는 기대하는 자의 마음.. 말이다. 

 

그것...

어찌 표현할까?

단지 ..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 내 영혼에 거하시는 흔적을

내가 .. 부족한 내가 이제는 조금씩 더 느껴가는 

진실과 진리에 가까운 현상 때문이라고..........?  

 

그것.. 

오늘 주께서 표현하셔 주신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한 곳'.. 

그게 '내 영혼'이고

그러함을 '십일조'를 자연스레이 하는 자의 자연스러운 현상.. 이며

그러함을 이 버거운 '일상'에서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 은혜.. 라시는 것..

그러함으로 '부르실 그날까지' 

'그 풍부히 주신 것'이라 표현하신다. 

그 풍부히 주신 것을 

먹고 

항상 배우고 

누리게 되는 것.. 

그게 하나님 이름을 두시려 선택받은 자의 

마땅한 현상이고

그 마땅함으로 이글거리는 실제와 감사로 느끼며 사는 게 

바로 '심령천국'의 삶,

성화된 자의 영적 상태가 맞음이다. 

 

 십일조는 그 시작이다.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서
26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주나 독주 등 네 마음에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이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보라.

십일조는 '의무'이기도 하지만

십일조는 '자격'이기도 하다. 

십일조 하는 자의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서의 증표.. 말이다. 

그리고 

마땅히도 그러한 자들은

위의 고백처럼

'즐거워할 '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은 결국 

세상에 대하여도 '사랑'으로 흘러나오게 되어 있다. 

 

아.. 

예수님 안에서 회복된 내 심령의 표현중 

가장 좋은 거는

'흘려 보낸다'는 거다. 

 

 사랑으로 흘려보내게 되는 것.. 

그마져 '십일조'를 하는 자들의 현상으로 나오게 될 거란 이야기다. 

 

 나.. .

아직 부족한 부분.. 

진심으로 주변 모두를 '사랑'의 눈으로 보게 되는 것.. 

더 정확히는 '긍휼'한 시선을 갖는 것... 

십일조는 

하여야 하는 것이 맞지만

함으로 주어지는 '상급'을 위한 조건이 아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당연히

마땅히 드려지게 되는 '현상'이다. 

그 현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선택하시고 주어지는 '이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을 통해

영적 전쟁의 원치않는 상흔의 결과인

'아픔'들.. '상처'의 흔적으로 굳디 굳었던 

'자기' '자아'의 틀에서 벗어나

이웃을 사랑의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항상 누리고 

항상 배우고 

항상 더 발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게 되고

그를 넘어 주변까지 사랑하게 되면

그때쯤.. 주께서

부르시어

그 영원한 천국에서 누리게 하시지 않을까?
"수고했다.. 충성된 종아.. " 하시며.. ?

 

감사하다. 

 

주님.

당연한 '십일조'를 가지고

주님께서 

그러함 하나조차도 

주께서 선택하고 

주께서 허락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을 마음들이고 

십일조를 하게 됨으로 

허락되어지는 

놀라운 이 땅에서의 변화조차.. 

내 깊은 내면의 풀어짐 조차

그 일련의 과정들임을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그 마땅한 마땅함들을 

감사와 기대로서 받아들여 제 이 인생에 녹여내지 못하였었음을

다시금 오늘 묵상을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 

 

오늘 하루를 감사의 눈으로 보게 하시고

사랑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아도 될 당연함을 알게 하십니다 

주여.. 

아직도 제 안의 흔들림 조차 다 아시는 주님. 

오늘 말씀.. 

주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한 '저'... 

제 영혼의 그러한 마땅하고 당연함을 

제 영혼이 미리 알아 지금까지 

너무 자연스레이 십일조 하게 하신 것.. 

그것이 '은혜'의 결과 이었음을 깊이 깨닫게 하시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하시며

항상 배우고 

더 깨닫고 명심하여

주변을 향한 '긍휼지심'조차

점차로 더 높아지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금전적으로는 저도 모르게 하게 하시었지만

마음으로 

제 안의 알지모르는 순간의 저항들.. .

그것은 

주님.. 오늘 십일조의 축복을 말씀하신바

마져 터뜨려 주소서.

없이하여 주소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여 주소서

 

버거움.. 

아시지요.. 

주님?

 

주님의 이름두신 저.. 

주님 말씀대로 세상도 바라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

아멘 🙏 

 

 

-------------------------------------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의 좀 더 가까운 이해를 위하여...)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신12:5)

 

 Bard 의 답)

성경에서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라는 표현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물리적인 장소를 의미하는 경우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고, 그곳에서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과의 관계를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는 곳'으로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에게 자신의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순종하게 하십니다.

이 두 가지 의미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리적인 장소인 성전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강화하는 행위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살펴보겠습니다. 신명기 12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거하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거하실 곳"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하시며, 그곳에서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고, 그들에게 자신의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하시는 곳, 즉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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