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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적이 되자(행17:1-15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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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적이 되자(행17:1-15 )

주하인 2007. 10. 19. 12:04

제 17 장 ( Chapter 17, Acts )

 

 
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 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주님께 마음이 고정되어 있는 자들은

어디에서도

주님의 이름으로  부흥과 발전이 있기 마련이다.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그러나,

그에 따르는 사단의 음모가 있다.

 

 시기가 그 원인이다.

시기는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고

자신이 낮추어 짐이 아파서

남을 낮추어 덜 아파지려는 마음이다.

 이것은

주님 앞 십자가에 내려 놓고

겸허하고 겸손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자칫

사람으로 하여금 해를 입힌다.

타인에게는 아픔을

자신에게도 영적인 깊은 상처를 입히게 된다.

 

 어제 '전병욱 목사님'의 '자신감'이라는 책을 읽어가면서

부분 ,

고개를 끄덕인 구절이

사람이

악해지는 징표가

'떼'를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들과 뜻이 맞는 사람들 끼리 만 뭉치는 것.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화평'으로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과도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가장 높은 분들도

'코드' , 쉽게 말하면 '떼거지 '로 뜻 맞고

시기심 나지 않을 편한 분들만 모이고

사회 경제 전반에

자신의 뜻과 다르면

무조건 비슷한 자들끼리 모인다.

떼거지로..

그리고 나서는 실력행사에 들어간다.

 

오늘 보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틀림없이 옳지 않다.

사회현상 속에

뭉치는 자들은

자신들이 시기와 사리사욕의 욕정 속에 뭉쳐 있어서 들어가면서도

그걸 떼거지 속에 희석 시켜 버린다.

그리고는 죄 의식이나 양심조차 없어져 버리고 만다.

아주 무서운 '힘'이 되기도 한다.

가끔은

사도 바울 일행을 찾아 죽이려고 하듯이

그런 무서운 일도 불사하는 일이

사회경제 전반에서

상시로 일어나고 있는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 기저 원인이 '시기'고

'비 신사적'인 행동이다.

 

 

 

 

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 사람들 보다

'더' ' 신사적'이라고 나온다.

 

신사적이라고 안 나오고

더 신사적이라고 나온다.

비교해서 좋다는 얘기다.

어차피 사람으로 온전할 수 없고

온전한 신사는

주님 이외에는 없을 테니까.. .

 

그렇다면

오늘 굵은 글씨로 반갑게 치미어 들어오는

주님의 말씀,

'신사적'이라는 것은

어떠한 상태를 말하는가?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의 그 소동과 떼거지의 횡포가 일단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 안에 휘몰아 치는

'시기'라는 사단의 특성이 덜한 상태를 얘기하는 것이다.

 

 신사적이란

외적 단아함과 고상함을 퍼뜩 떠올린다.

주님은

아무런 합리적이고 대단한 이유를 대어도

떼거리로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 하는 행태를

그리 귀하게 보시지 않는 듯하다.

신사적으로

주님께 집중하길 원하시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는

신사의 첫번 째 조건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라고 하신다.

 

 아침에 나오려니

또 습관적으로 밀려오는 허무함이 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쁘기만 하면 좋으련만

어제의 차분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 주님 안에서 , 주님 뜻대로, 하루를 살려 몸부림 친 것..-

슬그머니

외로움이 밀려오려 한다.

허전함이라고도 할까?

무기력한 마음이라고도 할까...

 

 늘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모하고

시간이 지나도

절실하고 열렬한

그 분 임재에 대한 사모가

내 마음을 떠나지만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분의 임재로 인한

영혼의 평화의 이룸과

그 영적 여유로

하루와 이웃에게 쉼이 되어 갈 수 있는

그런 내 삶이 되면 또 얼마나 좋을까?

 

그걸 주님은 '신사적'인 마음이 되라고

넌지시 권하시는 듯

느껴진다.

 

또한

신사적이 되는 또 다른 조건이 성경을 상고함에 있다.

성경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냥 그대로 받기보다는

한번 상고를 한다.

묵상을 하여

진리이신 그 분,

인격적인 주님의 말씀이

개인적으로 가슴 속에 들어오도록 '묵상'을 한다는 이야기다.

 

묵상

그중에서도 매일 묵상

즉, 성경의 말씀을 상고하는 행위는

천국을 보장받은 성도로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주님의 구원받은 백성의 자격과는 다른 이야기다.  

아들도

신사적인 아들이 있고

개차반 같은 아들이 있기는 하다.

 

 오늘 주님은

나에게

신사적이 되기를 권하신다.

그러기 위해

말씀 상고를 늦추지 말기를 원하신다.

 

또한

늘 마음을 강하게 하여

간절한 마음을 놓치지 않도록 권고 하신다.

 특별히 마음이 흔들리려 하는 이때에

살아계신 우리 주님은 또 다시 정확한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위안하시고

살아계심을 나에게 다시 한번 확인시키시어

'강하고 담대하라'라고 말씀하시는 듯

힘이난다.

 

 

 

적용

 

1. 성경 다섯장 읽겠다.

 

2. 주님 안에서 '외로움'과 '허전함'조차 사랑한다.

 주님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다.

 곤란과 힘없음 조차 주님을 위하여 기뻐하겠다.

 

3. 간절히 주님을 집중한다.

 주님 말씀을 세상에 접목하려 애를 쓰는 하루가 되겠다.

 주님을 집중하기 위하여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겠다

 불쌍한 분을 위하여 불쌍히 보려 노력하겠다.

  화를 내는 분을 대하여 예수님의 시험하심으로 보도록 노력하겠다.

 가슴아픔을 기뻐하겠다.

 

4. 신사적이 되라는 말씀을 오늘 하루 절대로 지키겠다.

 깨끗한 외형을 유지하겠다.

 소리를 낮추겠다.

 느리게 말하겠다.

 화를 내지 않겠다.

 나에 대한 불편함을 그냥 가만히 이해하겠다.

 

 

기도

 

주님

살아계신 주님

오늘도 살아계셔서 말씀으로 주시고

오늘도 힘이 되시는 우리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귀한 주님

나의 흔들림을

간절함으로 바꾸소서.

간절하게 우리 주님을 쳐다보게 해 주소서.

주님 때문에

그냥 기뻐하고

주님 때문에

그냥 말씀에 써 있는 하루의 미션을 준행하게 하시고

주님 때문에

모든 걸 영광으로 돌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

혼자 안되는 것 아시지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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