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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한 나의 곤고함에 대하여[시22:22-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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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한 나의 곤고함에 대하여[시22:22-31]

주하인 2020. 5. 25. 09:12

 

24.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곤고()'

형편이나 처지 따위가 딱하고 어렵다.

 

'곤고한 자의 곤고'

무슨 말씀일까?

형편이나 처지가 딱하고 어려운게 그냥 사실일 것인데..

말그대로 해석해보면

'형편이나 처지가 딱한 자의 딱한 형편이나 처지'........

의미가 이해가 가는가?

 

 어쩌면

그 안에는

딱한 형편이나 처지가 '사실'일 수도 있지만(돈, 사업.....이런 것처럼 객관적 현상)

어쩌면 사실보다는 '주관적'의미로

본인 만의 느끼는 것이거나

내면적 문제일 수 도 있음을 이야기 하심이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것은 해결하면 되고

당연히도 불쌍히 여김을 받아도 되어

주님 앞에 열심히 나가서 외쳐도 되는 것이 맞고

당연히도 주님께서 싫어하거나 거부하지 않으실 것이

누구에게도 믿어지지만

그 곤고한 우리의 곤고가

어쩌면 '부끄러운 일'이나

'과거의 상처'로 인한 문제에 엮여 현실에 부정적인 현상,

즉 주관적 곤고함일 경우

그 것........

온전히 주님 앞에 가져갈 수있을까?

 그 곤고의 '본질'

그 안에 숨어 있는 핵심에 대하여 마주하란 말씀처럼 들린다.

 

 당연히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며

우리의 그러함을 모두 체험하시고 가져가심으로

온전한 구원을 받을

당연한 개연성을 얻었으며

주님의 부활과

보혜사로 '성령'을 보내심을 통하여

온전한 해결을

우리는 이미 받았음을

다 앎에도 불구하고

실은

이 일상, 삶이란 문제 속에 들어와

관계에 얽히고 설키며

원치않는 '죄'와

주님의 새롭게 해주심에 합당하지 않은

어둔, 무거운, 답답함에 눌리게 되는,

그 어느새의 '곤고'함은

마치 또아리 뜬 것 처럼

깊숙이 속에 자리잡고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주께서는

'곤고한 자의 곤고함'을

'멸시하지도 싫어하시지도 않는다'.. 신다.

그게

눈이 가고

힘이 되었을까?

이 아침에........^^;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에

그 곤고한 자의 곤고함을 가진

내 '울부짖음을 들으실 ' 것이라 말씀하신다.

 마음이 풀린다.

 

 

25.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그 곤고한 나의 곤고함이

이제는 더 이상 갈등하거나 의심할 바 없이

주께서 받아 들여주실 테니

온전히 주 앞에 가져가 '울부짖듯' 기도하고 나면

슬픔은 기쁨이되고

어려움과 힘듦은 찬송이 될 것이라 심이시다.

 

 '큰 회중 가운데에서의 나의 찬송'

진짜.. 남들앞에서 부르라 심이신가?

어떤 상황이든

곤고는 물러가고

그 나른한 회복의 빈터에

주님의 성령이 차게 되면

내 영혼은 나른함 개운함으로

주님의 설명하기 힘든 기쁨으로

상황에 상관없는 '찬송'을 올려드릴 수 있게 하신다.

그 것을 말씀하심인가?

'큰회중' 앞에서라도 아무런 두려움, 자책,.. 없이

온전한 기쁨 (그리도 많은 체험을 해주신대로... 간증거리.. ) 으로

주님께 찬양을 올릴.. 그 마음을 ..........

 

감사하다.

 

 

주님.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생각은 나지 않지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주님 모를 때 너무도 힘들게 살아왔던

그 표현해내지 못하는 무게가

또 절 비슷한 논리로 제 꿈을 유린했던 탓인듯했습니다.

 

다행이도 말씀과 기도의 작은 습관이 오래 이루어져

비교적 쉬이

평정은 유지했지만

난... .'곤고'함으로

그 마음의 상태를 표현해낼 수 가 있습니다.

 

주여.

주님도 아시오매

제 곤고함,

그 너무도 오래되고 깊은 '곤고함'과

그 곤고함의 곤고한 정체에 대하여

주님이 아시고

또 이리 아침에 '곤고한 자의 곤고'함을

주님께서는 멸시하거나 뿌리치지 않으실 것이시며

기도하면 다 들어 주실 것이고

큰 회중 앞에서라도 온전한 '찬송'을 올려 드릴

놀라운 마음의 펼쳐짐에 대하여

기억나게 하시는 듯합니다.

 

주여.

제 곤고함은

비교와 경쟁 속에서

자꾸만 나이들어가는 자의 외로움과 비교도 있어

내 진료실이 아닌

옆진료실의 문이 여닫히는 소리에도

한번씩...........덜컹하게 합니다.

주님.

이 수없이 많은 시간동안

주님이 그토록 인도하시었고

그 증거로 이 나이에

이렇게

이 자리에서

살아오게 되었음을 .......너무도 잘알고 있어도

제 곤고함은

아... 저를 곤고하게 하는 곤고의 정체는

또 이렇게 ..

아니 이런 유사한 상황에서 매사 흔들리고 불안케 하려 합니다.

 

이런 제가

주님 앞에 나가도 될 자격이 있는지

고민하게 하려 ..........또 하고 있습니다.

곤고가 곤고를 만들고

그 곤고는 더 큰 곤고로 눌러 내리려 하고 있던 찰나

주님은

말씀으로 이렇듯 제게 끈을 풀어 버리게 하십니다.

 

주여.

허락되어진 모든 곤고를

주님의 뜻으로 받아 들일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해결의 기미를 보이게 하시고

이 옳은 방향의 기도와 찬송으로

이제

곧 오게될

주님이 기뻐하시는 자의 온전한 기쁨,

약한 것을 주님 뜻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고

곤고함으로 인하여 더 강해질 수 있는

그 진정한 원리에 거하게 되어

그 안의 자유에서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시간이

곧 제게 임하게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 주여.

 

나머지 인생의 문제........

다 드러내어 아뢸 수 없는 그러한 객관적인 곤고함도

주여...............

주의 뜻이시면 해결해 주소서.

 

코로나 이후,

제 얼마전 객관적 곤고한 일이후의 시간들 이후의 삶에

주여...........

어찌 나가야 할 지

큰 방향으로 인도하셔서

나머지

이 땅위에 허락된 시간동안은

좀더 주님앞에 충성된 자의 모습으로 살다가 가게 하소서

내주여.

 

온전하시고 자애로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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