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어찌하여가 어찜일까 [하1:1-11] 본문
3.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어찌하여' 주여
이렇게도 오랫동안 '죄악'을 보게 하시고
어찌하여 주여
이 어이없음을 눈으로 보듯하게 하시며
주여...어찌 하여.......
이 되풀이 됨을 허락하십니까?
4.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나름
주의 말씀대로 살려 노력하여
주의 새롭게 하심을 믿고 나가려 하지만
되풀이 되는 이 어이없음은
그 강도가 더 커진 듯 받아 들이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ㅠ.ㅠ;;
마치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없는 듯........
의인을 악인이 둘러싸고
정의가 없어진듯
그리 느껴질 정도입니다.
예. .압니다.
주여.
나의 어리석었음은
나의 무지하고 패악했음은
이제는 알지만
주님을 알지도 못하고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던 그 때의 그러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여.
주의 새롭게 하심,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제게 허락되어진 오늘날임에도
아직도
여전히 남아 저를 괴롭게 하고 있는
오늘의 현상들은
마치 율법도 없어지고 정의도 없어진듯
더 ...........그러합니까?
..........
.........
마음 한구석에서는
저리 울부짖고 싶지만
이제는 깨달은 바가 있어서
그러함이
덜 가슴을 후빈다.
오늘 말씀에 '어찌하여'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
상황은 점차로 나빠져 가는 듯하고
주님의 답은 없으신듯하며
홀로 광야에 버려진 듯 힘들 때
오히려 주님께서
다른 무게로 다가와
아... 예수님을 몰랐더라면.. 하던 때가 있었다.
솔직히
지금도
힘들지 않고 모든게 다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 인생이 더 이상은
날 붙들거나 막아서지 못하는
물처럼 흐르는
성화의 존재가
아직
나는 아니다.
그러하기에
버거운 일상은 가끔이지만 날 힘들게 하고
지금도 옛 어려움들이
힘들게 할 때가 있다.
하지만.. ..
어찌하여.......라는 구절을 보며
불현듯 깨달아 알아지는 바가 있다 .
"'기도'를 받기 위하여 허락되어진 "
정확히는
'기도를 더 하도록 하게 하시기 위하여 허락하신' 상황이란 .......
즉, 모든 것에 앞서는 원리는
'기도'
즉 하나님과의 온전한 대화이고
이 일상의 삶,
그안의 이해되지 못할 그 어떠한 상황도
다 주님과의 교통을 온전히 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온전함을 이루시기 위한 상황일 것임을
이전에
수년전에 깊이 깨달은 적 있다....
비록 내 부족하여
지금도 일상에서 자주 잊고
자주 발걸려 넘어져
똑같은 되풀이의 어리석음으로 좌절할 뿐이고
그 해결되지 못한 속상함을
타인에게
내 자신에게 쏟아 부음이지.........
'기도를 하기 위하여' 허락되어진 일임을
어찌하여 .....라 몸부림침은
어찜일까?
어찌일까?
기도.
기도는 행사나 예절이 아니다 .
주님과 하나가 되는 가장 기본적 원리다.
그 분의 뜻과 하나가 되는.......
그 분이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그러함은 '말장난'이나 '수사'를 넘어서는
어떤 원리가 있다.
현상이 있다.
'걱정과 근심'은 멀어지고
'기쁨'과 '감사'로 채워지며
행복해진다.
그것으로 끝나는가?
그때에 임하는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인한
영적 충만함은
외적인 변화도 유발되어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풀어짐이다.
주님께서는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 '이라 시며
말씀으로 원리를 극명하게 보이셨을 뿐 아니라
내 인생의 간증거리로 무수하게도 보이셨고
'은혜'라는 표현으로
믿고 체험되어진 모든 신실한 형제 자매들에게
실제화하여 나타내 보이심 아니시던가?
그 은혜가
심사, 마음의 느껴짐 수준을 넘어
일상을 변화하게 하고
인격이 변화되어 나타나게 되며
결국 영혼이 '정화', '성화'.. 됨을 위하여서는
더 기도하고
더 사모하고
더 인내함이 필요함 뿐이다.
오늘...
하박국의 말씀에서
'어찌하여' 보이지 않고
어찌하여 이토록 열심히 주님을 사모하였음에도
세상은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반대로 행하고
주님은 우리의 상황을 모르시는 것 같이 보이시던
그 상황은
'어찌일까?'.. 어찜일까?
이제
많은 영적 체험을 누리고
주님 앞에 나가는 과정 중
조금은 더 성장하신 분들을 위한 말씀이 아니실까 싶다
상황은 이해가 가지않고
어이없음은 지속되는 그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의 '더 기도함'을 기대하시는 것.
십자가 성요한, 테레사수녀.......등 수없이 많은 영적 선배들이
메마름의 영성에 대하여 표현한 것 처럼
며칠전 시편의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시며
예수님 십자가 고난 중의 그 갈증을 대신 되뇌인 것 처럼
인생의 이 버거움 중에
잠시 보이지 않으시는
허락되어진
메마름의 시간,
이 갈증의 시간에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것은
오직 기도 뿐임을
다시 말씀하심 같다.
어렵다.
그러나, 감사하다.
주님.
어찌하여
어찌하여
... .
그 얼마나 자주 외치던 소리입니까?
지금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을 들여다 보지 않는 순간에는
여지없이 사로잡히는 하소연이며
순간 제 삶을 허탈함과 어두움과 외로움으로
물들게 하려하는 상황들이 이어집니다.
주여.
이정도면
여기까지이면...........
조금은 다른.. .
완전히 새로운.. 이란 기대가
처참히 무너지려 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이해가 되고 펼쳐지던 넓은 마음이
자주........아닐때가 있습니다.
힘듦니다
버겁습니다.
남아 있는 삶이 너무도 지루하고 힘겹게 느껴지려 합니다.
주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깨달음을 주십니다.
기도가 본질이고
기도함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그 모든 것이며
기도 만이 내게 남겨진
내가 해야할 유일한 것임을 위하여
허락되어진 것이란 말씀으로 깨달아집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제게는 쉬운 말씀이자
어려운 말씀임을 아나이다.
그러나, 그 원리, 그 이유를 알고
일상에서
그 원리를 적용하기에 크게 어렵지 않도록 하심을
진정
감사드립니다.
주여.
홀로 하나이신 내 하나님.
기본......본질...
이 땅을 살면서
부딛쳐오고 눈을 흐리게 하는 그 어떤 것도
본질이신 하나님과의 대화
기도를 통하여 바라보게 하심,
주님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는 과정...
누구라도 거쳐갈 수 밖에 없는 과정을
어찌하여.. 어찌하여.. 어찌하여.. 라며
몸부림치지 않게 되게 하소서.
내주여.
그 마져도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만 가능합니다.
변케 하소서.
저를 그리되게 하소서.
매사에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기 위하여 허락되어진
이땅의 모든 일들
모두 기도로 이겨내게 하소서.
기도하게 하시려는 싸인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내주여.
홀로 하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어찌하여 내 강포가 아직도 등등할까?
어찌하여 내 관계는 이럴까?
어찌하여 이리도 남은 불안이 있을까?
어찌하여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다 ........그럴까?
어찌하여 내 현실은 이럴까?
어찌하여 우리나라의 현실은 ?
어찌하여 .......
어찌하여............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어찜일까?
아무리 애써도 왜 똑같은 일이 일어남은 어찜일까?
...........
기도로 어찌하여를 더 외쳐 올려 보아야할 하루다.
내 기도 제목은 '어찌하여'....를 통해서 여쭈어 보고
그 여쭘을 여쭈는게 '어찜일까'의 답일 듯함이
불현듯 생각나
글을 더 쓴다.
그 모든 어려움......
기도를 받으시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날 사랑하셔서
내 머리 속으로 가슴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그러기에 더 매달리는
그럼에도 더 기도하는 날 보시기 위하여 허락되어진
인생의 도구일 뿐이다.
어찌하여
어찌하여라 하는가?
그러함에도
기도하지 않았음은
어찌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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