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시린 가슴들을 위하여[막14:53-72] 본문
성령님을 만날 때에야
우린
오직
따사로운 평안 가운데
거할 수 있으리라
그러기 위해
마땅히
참아 건너야할
어른된 믿음의 과정
십자가 참예함
54.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67.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멀찍이 따라'라 나온다.
겁나는 아이가 그렇지만 따라가지 아니하면 안될 것 같은 모양새.
베드로 , 맘에 드는 상태는 아니지만
가슴이 아프려 한다.
왜인가?
난 안다. ㅠ.ㅠ;
........
그리고
'불을 쬔다'
그것도 예수님과 , 친구들과.. 자연스레이가 아닌
있을 자리가 아닌 자리에
아랫사람들과 앉아...ㅠ.ㅠ;;
가련히 느껴진다.
미웁고 바보처럼 보다는
상처입은 어린 아이 같아
쪼그리고 앉아
불합리한 자리에서
불을 쬐고 있음이
그 , 베드로 안에 몰아치고 있는
갈등의 흔적이 느껴져서 그렇다
그 가슴이
춥고 차가웁고 혼란 스러워
자신도 모르게
'불을 쬐고 '앉아 있음이다.
스승님이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저리 고난을 받고 있으신데
자신도 모르게
불을 쬐고 있음의
그 불합리는
그 마음의 진한 갈등,
마치, 어른이지만 '어른 아이' 같이
부들부들 떨고 있음이며
그 마음의 차가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는 불을 쬐고 있음이다.
그 마음이 새삼 ,
이 아침 , 가슴에 옴은 어찌된 일인가?
온통 '예수님' '십자가' '고난',
'참여' '같이 짐'
사순절.... 에 집중이 되어야 함에도
어찌... 난 사사로이..ㅠ.ㅠ;;....
베드로의 가슴시림에 대하여 눈이가나?
불경하게.. 죄송하게 .. .ㅠ.ㅠ;;
그렇다.
언제라도
누구라도
갑자기
때되어
불어 닥칠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 때,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은 일들이
어쩌면 베드로의 일시적 퇴행(退行)을 경험할 수 있다.
심하게 힘들때 이불속, 아기처럼 쭈그려 눕는 것처럼 말이다.
그게..
밉거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동참 못하는
그렇게나 성장해 있어야할
대 제자를 바라보며
속상하다기 보다는
가슴이 아련해옴은 어쩐 일인가?
그냥...
또
이전처럼 '공감'이나 하고
같이 슬퍼만 해줄까?
주님의 십자가 고난은 멀리 떠나 보내고.......?
아니면 또
그렇듯 그렇듯
힘들 때마다 아무일도 아닌 듯하고 갈무리하여
무의식 한켠에 접어 넣고
씩씩한 얼굴로 가장하고 일어날까?
........
무엇을 내게 바라심일까?
어쩌면
이런 생각하는 것 조차
이전까지는 자유롭지 못했었지만
우주적 사건 , 주님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 현장에서
겨우 자신의 내면의 문제에 대하여
눈치를 보지 않고
들여다 볼 수 있음은
자연스러움으로 바라보게 하신
주님의 뜻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든다.
아직........
베드로는
'성령'님이 임하시기 전이다.
'사도 행전'의 그 강력한 성령임재 이후에
이 '시린 가슴'
이 춥고 두려운 마음이
따스해 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불을 쬐'려는 옹그림이
그제야 온전히 해결될 것이다.
어쩌면
그의 그러함 같은
우리들 내면의 깊은 문제를 가지고
예수께서는
'지고 따라야할 십자가'로
제시하고 계심은 아니실까?
춥고 차가운 ,
깊은 내면의 문제들..
더 이상 도피하지 말고
드러내어
십자가 앞으로 가져오길..
다행이도..
우리에겐
쬐어야할 불,
성령님이 계시다.
그게.. 감사하다.
그러한 저를 불쌍히 여기시사.
춥습니다.
많이 그렇습니다.
가끔 그렇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것을 바라보아
아무리 주변을 휘둘러 보아도
이 가슴을 채울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뭇
떨려올 때가 있습니다.
주여.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곁에서 바라보며
그로 인하여 더욱 가슴이 떨려오는 듯하나이다.
주여.
힘을 주소서.
주여.
성령을 보내시사
이 갈급함 가라앉히소서.
오직 주님.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만
이 갈급함 해결할 수 있음을 압니다 .
간구하오니
주여
도우소서.
이 빈가슴 채우소서.
그리하여
허락하신 든든함으로
십자가 같이 질 수 있도록
저희를 바꾸소서.
주님.
베드로의 빈가슴,
그의 시린 가슴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그 추운 마음을 잠시 읽어 보았습니다.
주여.
이 땅,
도저히 홀로 걸어갈 수 없을
유혹과 죄악의 장소에서 살아가며
오직 유일한 길이신
예수 십자가의 길을
그 좁은 길을 같이 걷길
이제는 원하지만
아직도 깊이 뿌리박아
한번씩 후벼파는
죄악의 시림들이
차마 견디기 힘들게 하여
올바로 주님 바라보기 힘들게 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주여.
그러한 저를 불쌍히 여기시사.
오직 성령님.
오직 주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또 채우소서.
이 빈곳을 채우시고
이 어리석음을 녹이소서.
그리하여
온전하신 주님의 뜻
이제는 따를 수 있길 원합니다.
조금은 더 성장된 자로서
좁은 길 , 제대로 따라갈 수 있길 원합니다.
내 주여.
온전하시고 거룩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들어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몰약을 뺀 믿음[막15:16-32] (0) | 2020.04.10 |
---|---|
침묵을 위하여[막15:1-15] (0) | 2020.04.09 |
일상을 말씀대로 살아가기 [막14:43-52] (0) | 2020.04.07 |
오늘이 그때가 되길[막14:32-42] (0) | 2020.04.06 |
힘을 냅시다[막14:1-11] (0) | 2020.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