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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속살(슥3:1~1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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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속살(슥3:1~10)

주하인 2007. 4. 13. 10:37

2007-04-13 스가랴 (Zechariah) 3:1~3:10

 

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 우주 만물도 주님이 원하시는 그 날이 오면 함께 서 있어야 할 것이다. )

 

 

 

 난 제사장이요 선택받은 백성이요..

늘 주님 앞에 서 있는 자이다.

이 땅을 살면서 난 사단에 자유로울 수 없다.

늘 그것들은 날 유혹한다.

어느땐 심한 고통과 환난을 가져온다.

 주님께서 스가랴의 환상을 통해

이러한 삼자 대면의 원리를 보이시고 계신다.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단을 혼내신다.

그러시면서 현재의 내 상태에 대하여 뭐라 하신다.

 

 사단은 불이다.

난 나무다.

주님은 꺼내시는 손길이시다.

 

 불같은 시험을 가지고 사단은 날 지옥의 백성으로 삼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는다.

때로 그 불은 너무도 강렬하여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서 어느 때는 빨리 타버려서 더 이상의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죽으면 다 끝날 것 만 같은 이 고통.

뜨거움도 뜨거움이지만

어차피 주님 예수의 보혈로 타지 않을 운명에 있으니

그 불속에서 쉽사리 타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다니엘과 그 친구들처럼 믿음이 좋아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좋으련만

적당히 성령의 인도를 구한 기도 탓인지

적당히 헌신한 탓인지

아니면 적당히 전도한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적당히 착한 탓인지

이 나뭇가지가 완전히 마르지도 않고 촉촉한 지라

열기가 가해지니 뿌연 연기만 자욱이 난다.

죽겠다고 소리소리 치는 증거이다.

그렇다고 성인이 되어 성령의 물이 차고 넘치는 나무라서 불이 근접 못하지도 않는  그런 어중간한 상태다.

불에 타는 소리는 타닥 타닥 , 지지직 ,

연기는 왜 이리 나는가?

 

그속에 있는 난 얼마나 힘들었나?

그래도 주님 예수님의 구원으로 죽지는 않는다.

이제 기력이 다해 마지막 외마디 소리 지르고 넘어지려 할 때 쯤

  시38:21-22)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웬 큰 도우는 손이 불 속으로 쑥~하고 들어와서 구조해나가신다.

그 분이 하나님의 손이다.

 

도움을 받아 벗어나기는 했지만 몰골이 말이 아니다.

부분적으로 타다만 속살이 들어난다.

끄슬린 부분은 왜 이리 많은가?

환란 중에 부르짖은 소리로 온통 오물 투성이, 재투성이다.

 

 아직 정신이 하나도 없다 .

구원은 받고 도움은 받았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가 구원 받은 백성이 이 정도의 환란에서 이리도 추하게 있어도 되는가 의구스럽다.

도저히가 주님 앞에 설 자신이 없다 .

스스로 추악한 느낌이 많이 들어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울고 싶은 생각도

그렇다고 소리쳐 웃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냥 죄스럽다.

그냥 우울하다.

그냥 힘이 없다.

 

하지만 개운하다.

 

 

 
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

그래,

난 지금 어쩌면 불에 그을리고 구멍난 더러운 자 일수도 있다.

그것은 주님도 말씀하신다.

'주하인 너 더러운 옷을 입었다 ~!'

그래

난 인정이 필요하다.

부끄러워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누구나 불에타는 것은 정해진 것이다.

문제는 주님의 말씀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인정하고 나니 그 분의 말씀이 눈에 들어온다.

'더러운 옷을 입었다 !'

내 자체가 더럽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

잘못은 했다.

인정은 한다.

그리고 주님의 판정과 도움을 기다리면 된다.

오늘 불 속에서 건져주시는 주님 하나님의 뜻이 하나 보이는 듯하다.

 

( 그을린 나무에도 아름다운 새는 깃든다.)

 

 

 순백.

누구나 원하지만
세상살면서 어쩔 수 없이 불에 그슬리고 옷이 타서 속살이 노출되고
스스로는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어도
주님 예수님이 손내밀어 보혈로 씻겨주시고
성령의 운행으로 왕관을 씌우시면
모든 게 하찮은 마귀의 불장난에 지나지 않는....
난 날 더럽게 생각해도
주님은 날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자로 생각합니다.
벗기면 될.
보혈로 씻으면 또 깨끗해질...
그분은 늘 날 순백의 사람으로 보고 계십니다.
그 타고만 자리의 구멍을 통하여
울고 있는 순백의 내 속살이 비치지 않습니까?

 순백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묻어나와
혹시 그슬린 나무라서 속까지 탄 것으로 생각되고 그것을 마구 아니라고 부인하려는 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은 스스로는 힘들어도 주님은 귀하게 여기실 것으로 보입니다.

 

더러운 것에 대하여 주님은 옷 만이라 말씀하십니다.
다행이도..

우리는 순백의 속살을 가지신 자들입니다.

 

 

 


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그 분은 내 자화상에 상관없이

날 이쁘고 좋은 옷으로 입히시라신다.

그리고 내 죄과를 제하여 버리셨다 다시 한번 말씀하신다.

 

 


5.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

   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곁에 서 있던 스가랴께서 말씀하신다.

'주님 머리에 관도 씌워 주셔야 되지 않겠어요?'

그러자 '정한'관을 씌우시고 옷도 입히신다.

완전하게..

 스가랴의 중보를 들으셔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신가?

 

 


6.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
7.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주님의 철저한 은혜와

환란과 힘겨운 환경 속에서 주님 때문에 고통을 인내하면

넘어지기 직전에 우리 주님 손내밀어 구원하실 것이고

인내의 상급으로

그 분의 집을 다스리신다고 하신다.

무슨 뜻인가?

그러나 느껴지는 것은 평강과

종잡을 수 없는 격정의 기쁨이다.

 내 뜰을 지키신다고 하신다.

뜰은 평화와 안온과 안전의 상징이다.

가족의 행복의 장소이다.

그 분의 뜰을 지킨다신다.

 

왕래케 하신다.

그 분의 가족으로 인정 받아 영원을 살 것이다.

 

 
8.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주님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시다.

위에 말씀하신 모든 구절이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

참으로 구약은 신약의 예표라는 말이 실감이 간다.

몽학선생이라는 단어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가시면서 이해시키는 듯 해 귀하다.

예수님

감사하여이다.


 

적용

 

1. 고통을 감사한다.

 

2. 지금의 환경이 곧 있으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뀔 것이 분명하다.

   기뻐하자

   힘들게 하는 자를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한다.

   가끔 의지적으로 하면 더욱 기쁘다.

 

3. 성경 5장 읽겠다.

 

4.   그을린 나무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주님이 계심을 기뻐한다.

 

5.  주님의 집

    주님의 뜰

    주님과의 왕래

    예수님

    성령 을 묵상한다.

 

6. 난 거룩하지도

   난 잘나지도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받아들이겠다.

   고백하겠다.

   주님 앞에서만..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매일이 어떨 때는 타는 고통일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덜하지만

그때는 많은 연기를 내뿜고

지작지작

후드득 후드득

소리를 내며 안절 부절 못했습니다.

내 껍질이 벗겨지는 고통을 견디지 못했었고

그 고통 보다 실은 껍질이 벗겨져 내 속살이 들어남을 두려워서 더 무서워 했고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몇 차례 불가운데 건져지는 체험을 하며

그게 그리 견디기 힘들지만은 않구나..라는 것을 느꼈지만

그래도 내 전신에 끄을음으로 가득했었음을 아직도 받아 들이기 힘드나이다.  

주여

낮은 나를 기뻐하게 하소서.

더러운 나를 기뻐하게 하소서.

그 더러운 게 내 속살이 아니고

내 육신에 걸치고 있던 허명이고 욕심이 그랬었음을 인지하게 하소서.

그리고 그렇게나 어리석었던 나를 인정하고 주님 앞에 고백하게 하소서.

이제는

불이 와도

더 이상 그리 소리지르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그냥 주님의 꺼내주실 시간을 인정하고 기다릴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이와 같은 믿음에서

이제는 조금은 성숙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허다가 재가 되어도

주님의 뜻이면

달가이 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그리 될 때까지

제가 너무 아프지 않게 하소서.

주여 그리 되기 전에

저를 강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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