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오늘 하루는 선한 말 하겠다 (슥1:7~1:21) 본문
2007-04-11 스가랴 (Zechariah) 1:7~1:21
8.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
( 화석류 나무는 myrtle trees 로 NIV에 표기가 되어 있고 이것은 '도금양'으로 사전에 나온다.
도금양 나무는 이렇게 생겼다. )
홍마를 탄 대장을 필두로 홍마, 백마, 자마 들이 늘어 서 있다.
현대어 성경에는 기마대로 표현되어 있고
아래 구절을 읽어보아도 말은 말은 탄 기마대들을 얘기함이 분명하다.
군대들이 말을 타고 임무를 마친 후 열병식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꽃 밭에서 군대 열병식을 하는 것이 이채롭다.
그것도 특별히 '도금양'나무들어찬 협곡에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다시피 도금양은 지중해 연안에서
'사랑의 속삭임'이란 꽃말을 가진 살균 소독제이다.
거기에 아름다움과 힘과 말들의 빠름과 규격,
많은 인원의 든든함이 복합적으로 표현된 듯 싶다.
또한 살균 소독을 하는 꽃 수풀 속은
세속의 더러운 것과는 다른 차원을 암시하는 것인 듯 싶기도 하다.
선택된 우리 만이 들어갈 수 있는 협곡.
9.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열병식에 한걸음 떨어져 천사 ( 아마도 천사장인 듯 )와 함께 스가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물음은 천사에게 물었지만
10.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
이니라
대답은 기마대장이 한다.
아주 가까운 거리거나
텔레파시에 의하여 그냥 이해가 되는 장면일 수도 있겠다.
11.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
기마대들이 하나하나 고한다.
온땅이 평온하다고..
그러나 진짜로 평온한가?
폭풍 전의 고요가 고요인가?
출애굽 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워 하던 애굽의 노예 생활이 진짜로 좋던가?
칠십년 유배 생활에 적응되어 조용한 것 아닌가?
예수께서 그날이 도적같이 이르리라 한 말씀이 갑자기 생각난다.
이 땅의 노예같은 생활에 그냥 만족하고 살지는 않는가?
혹여 주님을 믿는다면서도 감각적인 평온 만을 즐기면서 이 땅의 축복만을 바라는 , 그래서 결국은 위장된 평화 속에서 그냥 머물고 있지 않은가?
위엣 것을 더 열렬히 바라야 되지 않는가?
어떻게?
12.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이 vision중에 뵈지는 않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목소리는 등장하신다.
곧.
천사가 여호와께 여쭌다.
바로 윗 구절의 평온하다는 이야기 다음에 곧 천사께서 하나님께 '언제까지 ...노하신 지 칠십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도 결코 평온이 그냥 평온이 아니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그것은 어찌보면 지독한 고통에서 그냥 체념하고 포기하고 사는 것일 수도
오히려 깊은 좌절에 의해 적응되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고 불쌍한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무감각한 불신앙의 모습
자기 연민의 체념적인 모습을 하늘에 계신 주님은 그냥 보고 계시지만은 않으신다.
천군 천사로 보우하시고
성령의 안타까운 간구로 주님의 도우심을 얻어내신다.
롬8: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13.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보라.
보이시지는 않지만
그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지와 상관없이
우리의 천사에게
우리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선하게 대하시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계신다.
난 철저한 사랑의 주님의 품안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적용
1. 메마른 듯, 앞이 캄캄한 듯 해도 난 천군 천사의 관찰 속에서 보호 받고 있음을 기뻐한다.
2. 내가 알지 못하는 것 조차 날 위해 간구하시는 성령님을 감사한다.
3. 주님이 나에 그랬듯이
모든 사람에게 오늘 하루 만큼은 선한 말을 하겠다.
4. 위로하는 말로 대답하겠다.
기도
감사합니다.
주님
또 흔들리려는 어리석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시고 도우심을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사랑의 화석류 나무 안에서
당신의 고결한 품성을 깨닫고
좀 더 선한 말과
좀더 위로하는 말로써
오늘 하루 이웃에게
스스로에게
조심하고 기뻐하는 자가 되기를 생각케 해 주심 감사드립니다.
이 땅 위의 삶이 적응할 만해도
너무 어려워 아무 것도 생각지 못해도
주님은 나를 지켜보고 계심을 잊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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