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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 ( 욥 9:28-34 ) 본문

구약 QT

수치심 ( 욥 9:28-34 )

주하인 2008. 9. 17. 12:50

 제 9 장 ( Chapter 9, Job )

 

이 꽃은 참 못생겼다.

그러나, 꽃이다.  

특별히

주위의 녹색에 어우러지니

정감이 서린다.

만일

자신을 못생긴 꽃이라

수치스러워 하고

시들거리면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주님이 만들어 주신 대로가

아름답다.

그것을 즐기자.

 

 

 

27.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원통함을 잊고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28.  오히려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무죄히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29.  내가 정죄하심을 입을진대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  
30.  내가 눈 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할지라도  
31.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34.  주께서 그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 하시기를 원하노라
 

 욥의 언사가 심히도 부정적이다.

'얼굴 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해도 주께서 무죄하다 하지 않으실 것이니

 헛된 짓 하지 않겠다'고 까지 한다.

깊은 부정감이다.

노력할 한톨의 이유가 남아 있지 않은 듯

깊은 '우울'에 빠져 들고 있다 .

손을 씻어도

몸을 씻어도

'내옷이라도 나를 싫어할 것이다'라는 표현에서는 

그 부정적인 소리가

극치를 이룬다.

얼마나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왜곡이 되어 있는지

옷이라도 도망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 부정적인 느낌 속에는

깊은 좌절이 느껴진다.

좌절의 더 깊은 속에는

'수치심'이 느껴진다.

얼마나 자기 자신이 수치스러우면

옷까지 싫다고 도망칠까?

그리고는

주님에 대하여

대놓고는 하지 못하지만

'원망'의 마음이 읽혀진다.

그럼에도

그 원망의 대상이 '사람'이나

다른 가까운 대상이 아니고

줄곧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의미 심장하다.

 그는 분명코

위험한 라인까지 도달하고 있다.

그 동방의 의인이라던 '욥'이

의로운 부분을 잃어가고 있다.

그 의로움의 가장 기본인

'하나님에 대한 절대 경외'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 흔들림 속에서도

하찮은 존재들에게 '화풀이'하고 '투사'하고 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하여만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의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오직

하나님임을 알 수가 있다.

그는 하나님을

실제로 느끼고 있고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기에

그 분에게 이러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호랑이가

아프다고 '강아지'하고 싸우지 않고

강아지를 염두에 두지 않음과 같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그 엄청난 하나님께 반항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이고 있다.

 그 고통이

육체적이고

일차원 적인 상태였을

처음의 얼마동안은

잘 인내하였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자

원죄를 소유한

연약한 인간의 부정적 본성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마치

전체적 '톤'이

'비아냥'대고 있는 듯하고

'자포자기'하여 될대로 되라 하는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러한 그의 변화의

가장 '기저'의 원인은

심리적 고통이다.

주님 안에서 잘 다져졌던

그의 영혼의 품격이

지속되는 고통으로 인해

심리적 영적 부위까지

약해 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그의 영혼을 가장 괴롭히는 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수치심'이다.

 나름대로 건전하고 성숙된 인격이었지만

육신의 만성적인 고통과

친구들의 예기치 않은 공격은

그의 잘 단련되었던 신앙인격에

흔들림을 초래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원죄를 가진 인간의 원초적 죄악성을 드러내게 되었고

그 죄악성을 드러낸

가장 쉬운 것은

'수치심'이었다.

 

 수치심.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늘 남들의 품어줌 만을

아귀가 먹을 것을 찾듯이 바랄 수 밖에 없는 감상(感傷).

 항상 옷을 벗고 선듯,

남에게 놀림 받는 것이

죽기보다 더 두려운 감상.

 

의외로 수많은 사람들이

수치심에 의하여 고통을 받는다.

오늘날

수없는 역기능 가정의 산물로

성장 과정 중

부정적 언사로 영혼에 상처를 받았던 결과

자신을 부끄럽게 느낄 수 밖에 없어

그 수치심을 탈피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쳇바퀴 돌듯

그의 인생을 허물어 간다.

수치심을 피하기 위하여

술 , 도박, 노름... 등의 중독성 성향에 빠지기도 하고

성공이나

온전한 이룸을 통하여

자신감을 회복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완전 주의를 길러

워크홀릭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다툼과 분노

그리고 죄책감과 우울증을 만들어 내는

기본이다.

 

 해결의 방안은 무엇인가?

깊은 사랑을 받아야 한다.

오늘 욥은

그 비결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그는 상대적으로 하나님께 투정을  더 벌이고 있게 되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수치심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여 생기는 병.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회복이 된다.

그 사랑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히 녹아나야 해결된다.

 욥은

특별한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무엇인가

우리

어리석은 '주모' 등에게 보이기 위한

시험에 들어있지만

다시금

주 안에서 온전히 회복을 이루어가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주님 도우소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을 받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에 만연하는

이 어리석은 '수치심'의 반작용으로 인한

마귀의 행태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천국같은 삶을

천국같은 하나님,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이루게 하시어

이 땅이

심령천국이 되게 하시고

누구나

다 누리는 천국의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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