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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과 마음의 치유(행28:17-3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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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과 마음의 치유(행28:17-31)

주하인 2005. 8. 17. 11:40

20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27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1. 내용

 

  처음 부터 끝까지 바울님은 예수님에 사로 잡힌 자였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지 추스릴 틈도 없이 3일 만에 로마의 유대 지도자들을 초

청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Cesar에 호소하고 로마로 잡혀 온바에 대해 설명하였다.

 자신이 쇠사슬에 매인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복음 열정 때문이라는 (20) 고백을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에 대해 들은 바 없으나 기독교인들의 나쁜 소문에 대하

여 들은 바 있다고 하며 그래도 한번 들어 보겠다고 하며 시간을 정하여 많은 사

람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들어보게 되었다.

 그는 구약을 인용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역시 믿지 않는 자들도 있고 믿는 자들도 생겨서 이 모임은

뿔뿔이 헤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이사야선지자의 말을 들어 경고를 한다.

 " 눈으로 보고 , 귀로 들어서 , 마음으로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고침을 받

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27-28)"

 

 그후로도 2년 동안 그는 담대히 자기의 세낸 집에서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에 대

하여 가르쳤다.
 
 

  2. 생각

 

1) 쇠사슬

 

가. 많은 사람들이 쇠사슬에 묶인 듯 고통 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 쇠사슬은 과거의 기억일 수도 현재의 환란일 수도 있다.

. 쇠사슬의 정체는 무엇인가?  


나. 쇠사슬을 벗어버리고자 많은 노력을 한다.
. 술로써, 쾌락으로써 마취를 하여 잊으려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 기도로써 잊으려고도 한다.

 

다. 쇠사슬이 과연 벗어 버려야만 하는 고통일까?
. 사도 바울님은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쇠사슬을 일부러 감내하고 있다고 했

다.
 
라. 바울님과 나의 차이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 바울은 사슬의 의미를 알았다.
. 나는 사슬을 고통으로만 인지했다.
  벗어버려야 할 ..

 

마. 과연 내 사슬은 의미가 있는 사슬인가?

  모든 문제가 주님의 허락 하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주님은 선하다는

사실, 나의 잘못은 주님 편에서 보면 쉽게 해결해 버릴 수있는  가벼운 죄악

- 수십년을 족쇄처럼 차고 다니면서 , 스스로 자해를 하고 남에게 해를 주고 긍

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시기를 버릴 만큼 무겁지는 않은 죄악- 일 수도 있임을 이해한다면

사슬은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리 고민해야할 무거운 사슬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 문제라면 단지 십자가 앞에 내려 놓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
 또한 , 주님이 허락하신 사슬이면 이를 통하여 반드시 어떠한 뜻이 있다.


바. 내 사슬의 뜻은 무엇인가?
: 기도로써 묵상으로써 ..알자


 2) 고침

 

가. 눈으로 보아야 한다.
 신비적인 것도 보아야 한다.  
 성경도 읽어야 한다.
 감동적인 것을 많이 보아야 한다.

 

나. 들어야 한다.
 설교를 들어야 한다.
 간증을 들어야 한다.
 기도를 통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남의 조언을 많이 들어야 한다.

 

다.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
 머리에서 마음으로 내려오는 과정은 쉽지 않다. 
 십자가 묵상
 공부
 체험
 선교.....


 3) 냉랭함의 어려움

 

 사도바울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유대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로마제국 수도에 사는 유대인들은 비교적 마음이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치우치지 않은 반응을 보였으며 바울의 설교를 듣고나서 판단하겠다는 열

린 태도를 보인다.

 고무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점차로 사람들은 편이 나뉘어져 갔고 시들시들해지며 모

임은 뿔뿔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지칠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또다른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다.

 

 '이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후 마음으로 깨달아 고침을 받기 원함' 이었었

으나, 이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구나... 그렇다면 이제 이 구원이 이방인이 것이

구나..'
 
 그는 이태동안 열정적으로 다시 복음 전파를 시작하였다.

 

 수의 많고 적음, 눈에 보이는 전도 대상자의 시들시들함 등은 바울에게는 아무

런 장애가 되지를 않았다.

그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뜻이 모두 였고, 냉랭한 반응 조차 또다른 하나님의 뜻

으로 향하는 반응일 뿐이라 해석 될 뿐이었다.

그는 체험이 있었고,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하나님의 속성 즉, 그 분은 완

전히 선하시고, 나는 그 분의 선 안에서 있고, 그 분은 날 떠나질 않으실 것이시

고, 난 주님의 뜻 가운데 전도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강력한 인식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냉랭함을 하나님의 또다른 신호로 보았을 뿐이다.


 3.묵상


1) 누구나에게 무거운 쇠사슬은 있다.

 

2) 쇠사슬은 주님의 뜻 가운데서 받으면 열정이 된다.

 

3) 주님의 말씀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후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

 

4) 마음으로 깊이 깊이 인식되고 느껴지는 주님의 말씀은 '치료'와 완전한 기쁨

의 원인이 된다.

 

5) 지칠 일 조차 주님의 뜻이다.

 

6) 철저히 주님의 뜻으로 인식하면 모두 선이다.

 

7) 전도는 우리의 숙명이다.

 

 

  4. 적용

 

1) 전도하자

 

2) 눈을 들어 하늘 세번 본다.

  하나님을 마음속으로 기뻐하자.

 

3) 지쳐도 감사한다.

 

 

 

 

 


 

 


 
 
 
  예수님은 지상 명령으로 우리에게 '행군 명령'을 내리셨다. - 빌리 그레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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