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꿀 같은 멜리데(행28:1-28:16) 본문
1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1. 생각
유라굴라로 인한 지독한 고통이 14일간이었다.
그리고 닫은 곳이 '멜리데'다.
멜리데는 주님이 허락하신 유라굴라
후의 '쉼'이다.
2절에서 토인이 특별히 대접했다고 한다.
연단 후의 특별한 쉼.
얼마나 꿈같을까?
얼마나 꿀같을까?
3일간 금식 해본적이 있다.
근무하면서..
죽을 지경이었다.
14일간의 처절한 금식과 고통, 격무...
미래가 보이지 않는 어둠..
바람..
물결.
재산의 손실...
내 금식 보다 열배는 더 어려웠었을것
같다.
그런 후의 쉼이다. 멜리데 !
그런데 고통이 끝난 줄 알았는데 또하나의 굴곡이 있었다.
독사 !
비록 죽지 않을 것 바울 처럼 알고 있었더라도 보통사람 같으면 이랬을 것이다.
" 에이 .. 재수없어... !"
하면서 손을 털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님은 차분했다.
아마도 사람들이 '신'으로 봤던 여러 가지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러한 불합리하고
놀라운 상황에서도 차분한 그의 모습에서 뒤에 함께하신 '성령'의 카리스마를 느
꼈을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다 끝난 것 같았던 고통이 아직도 안끝났던 데는 바울의 위신을 높이시
려는 주님의 뜻이었다.
그 높임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았다.
바울님의 예로 보건데 이 고침은 반드시 '전도'로 연결 되었음이 틀림이
없다.
바울이 고통이 토인 들에게는 엄청난 행운이 되었던 것이다.
이후에는 일사천리다.
형제들이란 표현에서 보듯이 주님 안에서 깊이 사랑하고 공감해주는 '형제'들이
마중나와 일주일이나 보살핀다. 로마에서도 형제들이 마중 나오고..
바울님의 육신 뿐 아니라 심적 영적으로도 얼마나 힘이 되고 편안했을까?
2. 묵상
1) 주님의 사랑에 비례하여 고통은 더 크다
2) 고통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3) 주님을 의지하면 반드시 멜리데가 있다.
4) 주님의 허락한 고통은 고통스럽지만 우리에게 실제로는 '아무 이상이 없음을 (6)' 알 수있다.
오히려 엄청난 유익이 된다.
5) 고통을 인간의 눈으로 보면 지독하게 아픈 기억으로 남을 뿐이지만, 주님의 뜻으로 보면
엄청난 이득이다.
; 사도 바울에게는 전세계 복음화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연단 이었을 것이며 , 이러한 연단이 있음으로 토인들에게는 '복음'과 '치료'의 기회가 되었다.
6) 주님의 쉼은 고통과 함께 있어서 더욱 빛난다.
; 멜리데의 꿀 같은 휴식
; 토인들의 위로
; 형제들의 마중
3. 적용
아침에 '목적이 이끄는 삶'을 잠시 묵상하고 나왔다.
'이 세상의 삶은 Rent'한 것이다...라는 것이 소주제다.
마지막 예화 중에 대통령과 같은 배에 승선한 훌륭한 선교사가 배에서 내릴 때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빵빠레와 비교되는 자신의 초라함을 불평했다고 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너는 아직 다끝나지 않은 삶'이지 않는가? " 라는 응답을 주셨다 한다.
우리는 이 땅위의 삶은 잠시 빌린 Green Card지만 영원한 저 천국의 시민권자라는 얘기다.
관점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온다.
바울이 고통을 힘들고 심난하고 짜증나는 것으로 받았더라면 '로마 이후'의 열정적인 복음화는 불가능 하였을 것이고 '토인'들의 구원 역시 불가 했을 것이다.
토인들로서는 바울의 고난을 감내함이 자신들의 인생에 필수 불가결한 구성요소였다.
혹시 오늘 나에게 주어지는 고통이 있다면 기쁨으로 참아야 할 것이다.
주님께 오히려 영광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나의 영적인 깊은 성장과 축복의 전제 조건이자 이 고통을 감내함으로 또 영광으로 그려질 몇 사람의 인생이 함께 존재할 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시야를 들어 하늘을 보자.
화이팅 !! Hiss !
우리가 고통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겨내지 못할 고통은
없다. - 로렌스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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