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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과 손가락(삼하12:1-12) 본문

구약 QT

손가락과 손가락(삼하12:1-12)

주하인 2005. 10. 20. 11:20

    1. 말씀

 

5 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 손가락을 남에게로 향한다.

 

 ( 애들은 그래도 귀엽기나 하지.. ㅎㅎ)

 

 

 ( 이게 문제다. 

   마구 손가락질 하고 싸우는 것...)

 

 

 

; 자기는 그와 유사한 일을 천배나 더 크게 벌이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한다. 

사람 심리의 기묘한 점이다.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부인하고 합리화해서 눌러 버리면 잊어먹는다.  

그리고 무의식 속에 꾹꾹 담아서 못나오게 억압해버리면 마치 아무일도 없는 듯이 스스로도

못느낀다.  


 근데 문제는 이러한 억압은 유치하고 절 성숙된 어린아이일 수록 훨씬 큰데 어른이라도 양심이 너무 찔려 혼란스러울때는 자기도 모르게 어린 아이처럼 된다는 사실이다.
 
 그 엄청나고 대단한 인격자 다윗이 애가 되어 있다.

그것도 나쁜 아이....

 

 사람이 두 인격으로 존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아주 나쁜 사람과 아주 좋은 사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눌러논 죄가 양심의 자극을 받는 아픔이 견딜수가 없어 사람은 이것을 언제든지 풀어야 한다.

 만성적으로 양심을 자극하는 무의식적 죄나 상처에 의한 고통은 중독적으로 술, 여자, 도박...

에 빠지게도 한다.

 

 다윗은 '급성 폭팔성 양심 마취 죄'를 지은 직후이다.

자기는 잊었지만 양심의 아픔은 느끼고 있는 상태 !

 

 상대만을 찾고 있던 그에게 마침 '나단'이 빌미가 될 거를 들고 왔다.

 

순간 !

마귀가 양심을 자극한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수같은 말이 튀어 나온다.

" 이 일을 행한 자는 마땅히 죽을 자라.."

 

남에게 자신의 죄를 쏘아 붙이는 것.
던질 (投)
쏠   (射)

 투사의 전격적인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투사는 유치하거나 신경정신병적인 사람들의 특별한 정신기제이다.

 

그것도 모자라 견딜 수없는 죄책감이 '여호와의 이름'까지 들먹여야 시원한 느낌이 들도록 한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이 그렇게도 심한 죄였단 말인가?
세상에 얄밉게 행동하는 부자들이 한두명인가?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이름으로 천벌을 받으면 몇사람의 부자나 살아남을 것인가?

공산주의자들인가?ㅎㅎㅎ

 

  " 지는 더 나쁜 짓 했으면서... ' 

주위에서 많이 보는 형태가 아닌가?

혹시 내가 했던 익숙했던 것일 수도 있고...

 

 이런 논리적 우를 다윗은 버젓이 범하고 있다.


이것이 죄지은 자의 속성이다.

( 타의에 의하여 성격적으로 화 잘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분은 제외합니다. )

 

유치해지는것.
남들을 향하여 저주를 퍼붓는 것.
화가 잘나는 것.
위엄이 큰 단체의 이름을 잘 들먹이는 현상.
어디선가 본듯한 죄를 견디지 못하는 것.


 하나님은 나단을 통하여 기회를 주셨다가 실망하셨다.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 손가락이 자기에게로 향한다.


; 옛날 이야기해주는 친구같은 분위기의 선지자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돌아선다
그 눈에서는 빛이 나며 다윗을 쏘아본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다윗의 심장 부위를 가리킨다.
그러면서 큰 목소리로 선언하듯이 이야기한다.
 
 " 그게 바로 당신이다. "

 


10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 하나님의 죄를 보시는 시각이 잘 나와 있다. 

 

 기독교인들은 죄와 벌에대한 양극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기독교인은  예수님이 십자가로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맞다.

어떤 분은 주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죄는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고 하신다.   

맞다.

 

 오늘 다윗의 얘기를 보면 구약적 시선에서 공의는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증거를 보는 것 같아 이전의 죄에 대하여 두렵기도 하다.
 예수님 오신 이후의 우리는 죄가 하나도 없으니 뻔뻔한 죄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다윗이 업신 여겼기에 공의를 발하시는 것이시다.

 

 즉,
다윗이 주님을 업신 여기지만 안했다면 벌을 주지 않으셨거나 경감시켰을 것을

확실히 알수 있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어찌 업신 여겼는가?

 그는 죄를 묻어 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속였다.
뻔뻔히 주님의 이름으로 남을 정죄하였다.
회개의 기회를 묻어 버렸다.

 

 바로 이것이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연약함과 불가피한 죄성을 불쌍히 여겨서 보낸 것이다.
 다윗은 회개를 안하고 주님의 자리에 스스로 올라가서 혼난 것이다.


우리 주님은 회개만 하면 언제나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공의는 완전 회개하지 않을 때 발휘되시는 것이시다.

 

 

   

     2. 묵상

 

1) 어떤 일에 화가 날때 먼저 나를 돌아 보자.

 

2) 하나님의 이름을 너무 함부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

 

3) 남을 판단할 때 그것이 나의 똑같은 죄는 아닌지 묵상하자.

  손가락이 똑바로 향하고 있는지 묵상하자

 

4) 죄임을 알때 즉시 회개하자.

 

5) 하나님은 공의로우시지만 회개하는 심령에게는 너무도 다정하신 분이심을 명심하자.

 

   

 

    3. 기도

 

 주님...

 오늘 하루 주님을 특별히 더 인식하고 살아가는 하루가 되도록 도와주세요.
 
남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눈을 주세요.
부드러운 혀를 주세요.
더 깊게 숙여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허리를 주십시요.
남들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세요.
그들의 말에 공감할 수 있는 가슴을 주십시요.
내 죄를 회개할 수있는 양심과 지혜를 허락하세요.
같이 웃을 수 있는 통쾌하고 다정한 목소리도 주세요.

손가락이 휘지 않게 해주세요.

휜 손가락 인지할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그 손가락 올바른 방향으로 향할 양심을 주세요.

용기를 주세요.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당신이 더 오래 지체하면 할수록 당신의 죄의 뿌리는 더 굵어지고 깊어진다.

- 리처드 백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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