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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뿌리(막4:1~12) 본문

신약 QT

소리와 뿌리(막4:1~12)

주하인 2007. 1. 11. 08:40

2007-01-11 마가복음 (Mark) 4:1~4:12

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 바다에 떠 앉으

   시고  온 무리는 바다 곁 육지에 있더라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

10.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 두 제자로 더불어 그 비유들을 묻자오니  
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 예수님 계시던  해변이 좀더 아름다왔겠지만 이런 유형이었을 거 같습니다. )

 

  특별한 situation 이 펼쳐진다.

 아마도 정황상 큰 무리가 몰려 들어 배 위에 올라 '바다 위에  떠 앉으신' 예수님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그 해안은 둥그렇게 되어 있었을 것이고 배 위에 올라 앉으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둘러 앉는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중의 일부는 해안가 바위 위에 걸터 앉아서 약간은 내려다 볼것이고 대 부분은 백사장의 모래 위에 올라 앉았을 것이며 해안은 007 영화에 나오는 태국이나 동남아 해변 처럼 경사져 있을 가능성이 많았을 것이다.

 일부 어린이는 해변가 낙락 장송 - 그 지역에 소나무가 없겠지만..ㅎㅎ - 위에 올라가 마치 원숭이가 꼬리와 손으로 나무 잡고 내려다 보는 비슷한 자세로 장난 스러이 배 위를 내려다 보는 현상도 없지 않지 않을까?

 어찌되었던 오늘 묵상은 나무 위에서 내려다 보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좀 떨어진 곳에, 중앙에 떠 앉아 계신 예수님.

 

문제는 이 많은 무리를 뚫고 그 분께서 말씀하시는 소리가 어찌 들리냐는 것이다.

분명히  들으라 라고 하시는 말씀을 보아서 어느 한분에게도 예외없이 들려야 하는 말씀인데도 불구하고 정황과 상황 상 도저히 목소리가 들릴 것 같지 않다.

 

 아마도 거기에는 몇가지 방해하는 소리가 있었을 것이다.

일단은 파도소리.

 철썩거리며 해변을 부딪치는 소리에 사람의 소리가 그것을 뚫고 들어 갔을까? 

그리고 해변 주위의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

 조용한 교회 안에서도 아이들의 소리는 마이크 잡은 목사님의 설교를 심란하게 한다.

 그 시대의 아이들 만 유독 조용하였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지 않을까?

또한 , 앉아있는 모래 사장의 나무부러지는 소리, 옆 사람의 소근 거리는 소리.

마음 속의 소리는 또 어떨까?

 집에 두고온 누룽지 비유가 설교로 많이 나오지만 그러한 심란한 소리들.

( 예수님 소리가 너무나 좋아도 감기는 눈 속에 아물 거리는 풍경으로만 보여서야...ㅎ)

 

 환경을 의미하는 파도소리

세상의 유혹과 돌보아야 할 아이 소리.

어쩔 수 없는 성품적 이유로 , 우연히 발생하는 방해의 나무 부러지는 소리

친근한 유혹의 소근 거리는 소리

마음에서 들려오는 갖은 잡소리들.

.............

이러한 수많은 소리를 뚫고 과연 예수님의 소리가 귀에 들려올까?

 

아마도 들려올 것이다.

 

그 분은 그러한 능력이 있으신 신이시다.

마이크는 없지만

무협지의 전음(傳音) 비법 처럼 분명히 정확히 들려왔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 추정을 하는 이유가 있다.

그렇지 않고는 주님께서 불가능한 상황에서 "들으라 "라고 하실 이유가 또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나중에 12제자에게 '외인'과 '너희'라는 말로 구분할 당위성이 있기 위해서라도 거기에 있는 모든 자에게 정확히 똑같은 말씀을 들을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라는 것은 선이신 그분의 특질상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이 소리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그 유명한 씨뿌리는 비유와 연관지어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분의 말씀을 주실 때 난 과연 어떻게 받고 있는가?

세상의 소리와 유혹에 의하여 집중하고 있던가?

분명코 그 분은 명확히 말씀을 주시는 데 어찌하여 귀에 들리지 않았었을까?

거기에는 모든 상황을 뚫고 틀림없이 들려오는 예수님 소리 대신 세상의 소리를 선택하는 본인의 선택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집중하면 아픈 것도 잊듯이...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예전에 10분 넘게 운전대를 잡던 것이 매일큐티 책을 볼 기회가 생겨서 참으로 마음이 좋다.

실제로 아침이 기다려진다.

 오늘 아침은 큐티 인도가 있어 조금 일찍 집을 나섰다.

입김이 마스크를 뚫고 나온다.

차가 온다.

아직은 조명이 켜져 있는..

들어 앉아 책을 펴드니 눈에 들어오는 구절.

 홀로 계실 때에 제자들이 가서 묻자 '외인'들에게는 알지 못하도록 하시고 너희에게만 알게 하셨다고 그 12제자를 지칭하신다.

그게 좋은 땅을 가진 자들에게 대한 주님의 특별한 말씀이다.

 마침 눈을 들어 바깥을 보니 아직 여명의 기운이 남아 있다.

사람들이 '삑 삑'소리를 내며 환승카드를 찍는 소리가 들린다.

난 홀로 주님을 만나고 있었다.

굉장히 행복했다.

 주님을 홀로 만나는 시간.

그 귀중한 시간을 통하여 '좋은 땅'을 가진 '예수님의 소리'를 간구하는 자로서 나는 하나하나 변해가고 있다.

그걸 그 분은 아침의 시간으로 확인시켜 주시는 것이시다.

그 분은  듣는 모든 자가 아니고 선택 받은 소수에게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하신다고...

 

 

( 천국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일 것이다. )

 

 정말이다.

그동안 천국을 소망한다는 것은 머리 속의 상념일 뿐이지 그게 실제로 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왔던가?

아니 서서히 심령천국의 형상이 내 안에 있음을 느껴 오긴 했지만 그게 지금 오늘의 기쁨에 비교하여 더 컸던가?

아니 더 오래 유지되었던가?

아니 조금 더 자신있게 형상화 되었던가?

 

 오늘은 조금 더 남다르다.

천국은 나에게 풀어지는 비밀로서 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위로하는 말씀이신 듯 해서 흐믓하다.

 

그래

지금까지 주님의 강권에 어쩔 수 없는 내 환경 , 그리고 내 특질을 더 해서 여기까지 몰고 오셨다.

그래서 평범 보다는 조금 더한 정도로 주님 '예수님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여 주셨다.

 육지로 예표되는 세상의 번잡함에서 조금 벗어나신

바닷물 위에 배를 띄운 초연한 말씀을

마치 개미소리 같지만 너무도 뚜렷한 소리로

그 분은 날마다 날마다 내 귀에 속삭이고 계셨다.

그걸 듣고 난 이제 가끔,

오늘 같은 정말 특별히 희소하게나마 천국의 비밀을 알 가능성을 느끼게 해 주셨다.

 

 이제

점점 뚜렷하게 뇌리를 파고드는 그 분의 말씀이 늘 살아서 내 영혼 속을 역동하다가

내 전인격을 변하게 하시고 내 육신의 일부가 내 의지 보다는 주님의 뜻에 의하여 움직이게 될 때를 기다린다.

 마치 피노키오가 줄에 의하여 움직이고

모빌이 줄에 의하여 천장에 붙들려서 바람에 움직이듯

내 의지와 삶과 모든 관심이 주님의 말씀에 의하여 고정되고 움직이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 늘 삶의 일정 시간을 주님과 홀로 있을 기회를 만들어야 겠다.

주님의 소리를 듣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집중하리라.

 

 

 

적용

 

1. 하나님 말씀을 다섯장 읽겠다.

   뜻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도한다.

 

2. 말씀을 한사람과 나눈다.

 

3. 우리 직장의 특별한 세우심이 좋은 땅에서 성장하길 기도한다.

 

4. 리더 분들을 위해 기도한다.

 

5. 감사하는 하루 산다.

 

6. 어제 아들 질타에 대한 부분 회개하는 금식 한끼 한다.

 

7. 육지의 소리와는 다른 소리이지만 주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

 

주님

주님은 말씀으로 위안해 주십니다.

이게 주님 믿는 천국의 비밀의 한 부분임을 압니다.

십자가 보혈의 원리임도 느낍니다.

참 많은 부분에서 자유를 누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늘 인도하시는 우리 주님 살아계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하루도 이 귀한 말씀을 잘 간직하고

가능하면 남에게도 나누는 기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부족한 부분 채우소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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