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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견에 좋은대로 ( 에 3:7-19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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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견에 좋은대로 ( 에 3:7-19 )

주하인 2008. 8. 8. 14:09

제 3 장 ( Chapter 3, Esther )

 

 주님.

보이시지 않아도

그 곳에 계시는 줄 압니다.

주여.

주님의 뜻과

제 뜻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소서.

그래서

늘 평강이 넘치게 하소서.

이 하늘 처럼요.

 

 

 

9.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주님이 옳게 여기셔야지..

그걸 내가 옳게 느끼고 받아들이고..  

 


11.  이르되 그 은을 네게 주고 그 백성도 그리하노니 너는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 하더라
 
  너는 소견에 좋은 대로...

과연 좋을 까?

좋은 결과가 있을까?

 

' 주님없이 살아가는 모든 삶 실패와 좌절... ♪'

 ' 나행한 것 모두 죄뿐이니.. ♬'

 
 
15.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성은 어지럽더라
 
 당연히도 어지러울 것이다.

 

 

 내 행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위 안에는

어떠한 가치관이

당연히도 그 바탕에 있다

 

 오늘  아침

이사장님의 조회의 말씀에

행동은 모두 수많은 습관의 결과이다...라고 하신다.

그 말이 맞다.

그 수많은 습관이 수없이 많은 되풀이 가운데

형성된 '자기만의 가치'에 의하여

거의 반사적으로 결정되고

무의식적으로

아니면

의식적으로 선택되어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다.

말씀이 이어지신다.

 나쁜 습관은 바꾸어야 한다.

좋은 습관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신다.

 

 문제는

이러한 가치관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는가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가치는

오직 자기에게 쏠려있다.

자신의 본능의 만족,

자신의 기쁨

자신의 과거의 경험의 반사적 반응....

설령 인격적으로 조금 나아서

남을 위한 이타 주의적 성향이 있는 자들조차도

그 본질을 뚫고 들어가면

어떤 책에서 나온대로

모두 '자기 존중감'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다.

 

맞다.

이게 문제다.

인간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그들은 원죄적 존재다.

반드시 넘어질 수 밖에 없다.

 아하에수로 왕과

하만이

옳은 대로 행하고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니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을 지경에 와 있다.

그게 옳은가?

아무리 선한 이유를 대도

인간은 한계가 있다.

옳은대로 행한것이 가장 악한 것이다.

인간이 그렇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의 뜻대로

성령의 소견대로 행해야 한다.

당연히 그래야

세상이 선하게 돌아가고

평화가 머물게 된다.

이 땅이 어지러운 것은

지금 세상이 너무도

자신의 자아를 키우는

문화에 들어 있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기독교인은 많은 데 왜 그런가?

그것은

주님의 소견이 내 소견이 되어야 하질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서다.

 

즉,

하나님의 뜻이

내 속에 들어와

내 가치관에 의해

또 한번 왜곡되어 버리기에

실로

그 분이

우리와 이 땅에 원하시는

그 높고 엄청난 사랑의 역사를 가로막게 되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어 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율법주의와 방종이 뒤섞여 있는

현 기독교인, 현 주하인의 영적 상태와

차이가 나질 않게 되고

시간이 지나며 자꾸만

종말의 현상에 가까이 갈 수 밖에 없는

결국이 되고 만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된다.

그것은

정원 목사님의 글 '주님의 임재 안에서'라는 글에서

- 그 분의 글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공감이 간다.  -  주님의 임재를

이 땅에서 느끼며 산다는 표현대로

하나님의 임재 체험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영적 에네르기가

내 영혼에 스며들어

그 분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는

살아갈 수 없는

기쁨의 탈진 상태가 두려워지는 상태가

되는 것.

그래서 그 분의 임재 가운데 늘 거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모르드개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하고 있다.

자신의 행동으로

하만에 의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이 죽을 지경에

처해 있음을 모르드개가 알고 있다면

그는 얼마나 자괴감이 클 것인가?

그럼에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지 않음을

확신하고 있다면

그는 놀라운 평정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일생에 살아가며 얼마나 우리는 타협을 많이 하는가?

또,

주님 뜻으로 착각하고

자신의 율법적 성향에 맞추어 고집을 부리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그 아슬아슬한 사다리의 삶에서

우리는 얼마나 중심을 지켜갈 수 있는가?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주님 뜻에 맞추는 것..

정말 쉽지는 않지만

정답은 우리의 영혼에 나타나는 현상,

주님의 임재 가운데

놀라운 평안에

아니

단순한 죄책감의 탈피를 넘어서는

엄청난 평강의 기쁨을

촉촉한 영혼의 감성을 느끼는 정도에 따라

판단할 수 있을 있으리라.

 

 스피노자가 그랬다 하신다.

' 하나님으로 진실하게 믿는 자는

자신을 자랑할 것이 없다. '

 

기도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의 뜻대로

주님 안에

주님의 평강 가운데 행하길 원합니다.

중심 잡힌 믿음을 허락하시고

늘 평강 가운데

있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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