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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새벽은 다가온다( 에1:1-22 ) 본문

구약 QT

곧 새벽은 다가온다( 에1:1-22 )

주하인 2008. 8. 5. 16:07

제 1 장 ( Chapter 1, Esther )

 

 창밖은 비다.

창문에 흐리는 비가

아름답다.

세상은 어둡고 축축하지만

주 안에서 바라보는

그 비는

그래도 아름다움이다.

주님은

희망이고

따스함이고 

보장이시다.

 

 


1.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된 것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 구스까지 일백 이십 칠도를 치리

     하는 왕이라 

 어찌 할 수 없을 것 만 같은

거대한 제국의 왕.

 

 그 안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존재는

흔적도 없는 것 만 같다.

 

 

 

20.  왕의 조서가 이 광대한 전국에 반포되면 귀천을 무론하고 모든 부녀가 그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21.  왕과 방백들이 그 말을 선히 여긴지라 왕이 므무간의 말대로 행하여 
 

 그 강대한 나라의 왕도

이런 어리석음을 범한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하여

에스더라는

이스라엘 여인이 왕비로 등극을 하게 되고

그 일로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위급한 지경에서 벗어나게 되는

귀한 기회가 된다.

 

 ' 존재감이 없다. ' 

요새 방송을 들어보면

심심치 않게 보이고 들리는 소리다.

 세상은

무지막지 하게 빠르고 현란하게 돌아가고

모든 사람들이

그 흐름을 놓치면

마치 죽을 것만 같은 듯

'호통'치고 '구라'하고

' 안티팬'이고...

어찌되었든 남에게 아픈소리까지 마다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드러내려하고

갖은 돈을 들여 

얼굴을 깍고 몸매를 가다듬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하여

놀라운 일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

 그리고는 서로서로

칭찬과 격려를 아껴가지 아니하면서

앞서 나가기를 경쟁해 마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모인다.

큰 집단을 형성하고

집단에서 어울리지 못한 자들은

왕따

이지메 등의 폭력도 불사하고

인터넷에서는 '리플'의 횟수로서

모든 가치를 결정해 버린다.

 그러다가

비교적 그럴 듯한 주제가 나오면

무서운 결집력으로

인터넷 바깥의 세상에서도

힘을 모은다.

 

 촛불도 그 예외가 아니다.

특별한

놀라운 이슈도 아니다.

먹고 사는 일차원적인 문제다.

육신의 관심이 전부다.

그리고는

거기에 거부하는 모든 가치를

부정해 버린다.

거기에

좌익과

기회주의자 들이 더 크게 일을 벌인다.

 

 눈을 들어

잠시 생각을 해 보아도

대통령이 잘 하든 못하든

대통령을 하야 시키려는 듯한

이러한 모습은

나라가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를 상황이

약속이 되어 있는 어리석은 일이고,

결국은 자승자박일 뿐인데도

잠시의 경고를 넘어서는 목숨걸기 식으로 일을 벌인다.

그 안에서

가만히 있음은 '존재감' 없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러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자신을 내세워 간다.

세상이 들끓는다.

사회는 자꾸만 힘을 잃어간다.

이 사회를 바라보면 한숨이 나온다.

 이게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 앞의 감각 만이 전부의 가치다.

 암흑 같은 세상이다.

 

 

 오늘

묵상 구절에 나오는

이 강력한 왕과

그 강대한 제국의 번영을 지켜보는

이스라엘 백성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만일

그 들중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민으로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그들이

그 세상을 어찌 감당했을까?

 저들

저 강력하게

세상을 통치하는 인물들의

자신 들끼리 행하는

가치관의 흔들림을 보면서

오늘날

누구라도

부부관계에서

저러한 두렵고 무서운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은

다 알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러한 어이없는 일들이

가장 강한 나라,

가장 강력한 군주와 신하의 벌리는 일임을 보아서

그 안

하나님이 전제되지 않았음을

깨닫지 않고는

그 가치가 절대가치이라고

자신들도 매달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의 이스라엘 백성 중 깨어 있는 자나

오늘 날의 우리 기독교인들은

그게

미친 세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그러한 미친 현상이

작금의 이 세상의 위에 언급한 현상이

어디까지나 차이가 없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냥 답답하고 한숨이 나온다.

어찌

이리 어두움이

이렇게도 강력한 힘으로

이 세상을 휘감아 돈단 말인가?

어떻게 해야

눈을 들고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언제까지 눈을 들고

이 세상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 .

이러한 한숨이 나오지 않는가?

 

그럼에도

이제

우리는 안다.

이러한 어두움의 힘이 극으로 달한 듯하고

세상에

가치가 뒤흔들리고 있고

끝깐데 까지 가는 것만 같을

바로 이 때에

주님은

주님의 역사를 시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에스더가 왕비가 된다.

 

 종말로 치달을 듯 한

이 세상의 희망 없을 이 때가

다시 주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기다.

주님의 말씀이 살아나고

주님의 뜻이 이 세상에 널리 펼쳐질 때이다.

그 시기는 누구도 모른다.

어떻게 올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어두움 가운데 빛이 있을 것임을 확실히 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순간,

부활의 역사가 새롭게 씌어지고

그로 인하여

성령의  충만함이

이 온 땅을 뒤엎고

우리 미련한 영혼 속에 임하시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주님을 인식하고 사느냐 아니냐다.

모르드개가

에스더가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음은

주님의 선민 의식과

주님을 놓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포로생활.

이 어이없는 세기말적 세상의 포로된 우리.

 

끝이 곧 시작이다.

오늘의 묵상은

'희망'이다.

우리는 주님을 잃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그 분의 임재의 느낌을 인식하며

말씀 앞에 늘 초연해야 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과는 별도의

놀라운 기쁨으로

주님이 주시는 천국의 감성으로

이 땅을 살다가

언젠가

주님이 허락하시는

저 천국에 갈 소망을 가지고 사는게

이 땅을 사는

우리 주님의 자손이 마땅히 취해야할

이 어려운 세대의 태도일 듯 싶다.

오늘

묵상은

희망이다.

 

 

 적용

 

1. 가만히 기다린다.

무엇이든 기다린다.

단, 주님을 인식하면서 기다린다.

 

2. 기도한다.

 

3. 성경 여섯 장 읽겠다.

 

4. 내일 아침 찬양인도 준비에 최선을 다한다.

 이제 꾀만 는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힘을 내어 하련다.

내 달란트대로..

 

 

기도

 

주님

세상을 바라보면

하나도 살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를 않습니다.

썩어져갈 가치에

저리도

자신의 온 존재를 걸고

존재감 살리기에 악을 써가고 들 있습니다.

그 길이 결국은 어디인지

생각을 하지 않고

신자 불신자를 불문하고

이 세상이 끝인양

다수의 힘이 절대인 것 처럼

그리 들끓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그 끓음 뒤에는

놀라운 허탈함과 외로움과 두려움이 숨어 있음을요.

갖은

육신의 치장에

도를 지나치는 육신의 왜곡을 불문하고라도

자신을 꾸며가는 그 종국이 어디인지

누구도 생각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오늘

묵상의 강대한 왕국을 통치하는

하나님이 없는

황제의 행동이

너무도 어이없는 행위임을 볼 때

인간의 하나님 없음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이 세상에 대입시키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주여

저는 감사합니다.

그래도 주님을 의식하고

주인없는 삶을 살지는 않고 있음을 알기에 감사합니다.

주여.

가끔은 답답합니다.

아무 갈 바를 모르는 어두움 속에

강력한 저항에 사로잡혀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것 만 같이

세월이 마구 마구 흐르는 초조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포로들의 모습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그리 생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의 그 강력한 행동이

결국은 에스더를 등극시키는 빌미가 되고

단초가 됨을 볼 때

주님의 역사가 어디서 시작될지 기대하는 바가

큼도 사실이여이다.

주님

도우소서.

기왕에 도우실 것

빨리 도우소서.

흔들리지 않는 가치를 주소서.

눈이 뜨이게 하소서.

저 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분들이

세상의 모든 분들이

주님으로 인하여

새롭게 되고

하나가 되고

변하게 되었으면 합니다.

썩을 가치가 아니고

주님의 나라에 대한 가치

그 나라의 평강에 대한 환희로

모두가 하나로 연합되어

아픔도 없고

두려움도 없으며

불안도 없고

속상함도 외로움도 없는

그러한 천국의 삶이

어서 이땅에 도래하길 원합니다.

이 세상에

아이들의 맑은 웃음만

이쁜 이빨을 가진 할머니의 사랑으로

가득채워지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찬양하고 살았으면 합니다.

도우소서.

특별히

저와 제 가정 아시지요?

주님

가만히 기다립니다.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다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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