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 때가 되었다면 그리 하지요(에 4:1-17 ) 본문
제 4 장 ( Chapter 4, Esther )
주님의 평안 가운데
에스더 ..그녀는
저런 미소를 지었으리라. ^^;;
3.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금식.
영적 회복을 위해서
상황의 타개를 위해서
꼭 필요한...
더이상 갈 수 없는 자의
하나님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
곡읍.
금식.
굵은 베옷
재.
얼마나 처절하고 절실하였을지
그 감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미리 미리 회개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저러한 위기는 덜하지 않았을까?
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고하니 왕후가 심히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를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유대인으로서의 함께하려함.
강직함.
모르드개로 부터 배울 점.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뵈어 알게 하고
또 저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고하기를
11.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일이라 하라
에스더의 적절한 변명.
논리적 변명.
모두 맞는 상황.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단,
자신 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하나님의 원리.
. 내가 아녀도 다른 이를 통하여 역사하실 수 있다.
. 쓰임을 받기 위한 자리일 때 최선을 다하길 원하신다.
. 쓰임을 위한 달란트를 자신을 위해서 만 쓸데는 그 달란트는 화가 될 수 있다.
.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 지금의 자리는 모두 이 때를 위함이다.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너무도 유명한 구절.
" 죽으면 죽으리라"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되고
상황이 전혀 틀림이 없고
영혼의 흔들림이 없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때'다.
이때는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마음으로
상황에 임하여야 한다.
그때는 틀림없이 주님이 힘을 주실 것이다.
앞서 나감은
주님의 원하심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아의 가로막음'이 될 수도 있다.
에스더는
그것이 주님의 때임을 알고도
자아가 흔들림을 초래할 까,
생각이 뒤죽 박죽임을 주님께 내려 놓고자
3일간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주님이 원리가 되면
하나도 흔들릴 일이 없다.
가끔은
나에게 주어진 이 환경
의사
큰 키
아들 둘의 아버지
좋은 아내
제법 큰 달란트로 주어주신 찬양의 달란트.
무엇보다
주님의 말씀을 기뻐할 수 있는 영감...
다양한 조건을 주셨음에도
남을 위해 무엇을 한다..
주님의 일을 크게 한다.. 라는 의욕에 걸리는
현실 및 부대낌이
가끔은 날 허탈하고 죄송하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위의 에스더가 보이는 변명의 논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내 속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하나 생각하는 게 있다.
'때'가 있다.
그 때를 미리 앞서 나감은
또다른 내 자아의 강화를 초래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막을 우려에 있다는 것이다.
내려 놓음이다.
무엇을 하려다가 늙어가고
하지 못하고 죽음도
주님의 뜻임을 생각하고 있다.
오늘 묵상 구절에
네가 피하면 다른 사람이 할 것이다... 라는
모르드개의 질타성 말이
어쩌면
내가 아녀도 다른 사람을 통하여 할 수 있는
책임 반감성 위안의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냥 기다리고
주님의 뜻이고
주님의 때면
순종할 의지를 길러야 한다.
미리미리
재에 눕고
굵은 베옷을 입으면서
금식을 하고
곡절을 하기 전에
늘 깨어
주님 앞에 임재해서 서 있는
그런 깨어 있는 삶을 살다가
주님이 원하시면
주님이시여 .. 제가 죽으라시면 죽겠나이다 하는
주님의 뜻과 내 행동이 한푼 오차가 없는
그런 순종의 믿음을
기쁨 가운데 가질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오늘 부터 시작인 이 휴가의 나른함을
어찌 보낼까 하며
몸을 뒤틀다가
들여다 본 묵상 구절에
'금식'의 부담이 왔으나
미리 먹어버린 아침 탓에
오늘은 틀렸구나 생각하다
앉은 묵상의 글 진행 중에
그 보다 더 중요한 원리를 깨달으며
마음이 편해진다.
적용
1. 나 아녀도 남이 할 수 있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순종의 결심을 한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반드시라는 강박감은
또다른 자아의 껍질이다.
내려놓고 자유하자.
2. 주님의 때가 되기 전에
미리 미리 깨어 있자.
늘 말씀으로 익어간다.
오늘 하루 큰 자유를 어찌 쓸까?
친구를 만나러 갈까.. (수유리.. 멀다....^^;;)
목욕을 갈까...
기도원에서 영혼의 목욕을 할까...
기도원 길목에서 찬양을 할까...
어찌하는게 깨어 있는 것일까?
ㅎ
일단 하나하나 진행하자.
3. 순종.
순교의 마음은 되어 있는가?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에스더의 고백이
나에겐 너무 먼
환상이나 공상처럼 들리면 안된다.
그것이 어이없는 아이들의 동화책 같은 유치함으로 보이면 안된다.
늘 깨어 있자.
지금은 영적으로 너무나 힘든 세상이다.
깨어 있자.
주님이 주시는 영감대로 살자.
4. 성경여섯 장 읽겠다.
5.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와 사회적, 영적 책임감을 잊지 말자.
언젠가 .. 때가 되면.. 반드시 준행할 때가 올 것임을 명심하자.
기도
주님 감사합니다.
많은 깨달음
자유로움
거기에 부담으로 부터의 벗어남
내려놓음이 느껴집니다.
주님
하지만 이것이 나에게
나 만의 그것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주여
묶여 있는 자들에게 고리 를 끊도록 하는
도구가 되길 원합니다.
내 경험과
내 자유를
나누어 줄 수 있길 원합니다.
주여.
그것을 막으려 드는
내 안의 연약함과
내 속의 에스더의 변명같은 논리에
지지 않도록 하시고
모르드개의 권면의 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즉각
모든 소유를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라 갈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용기를 주소서.
순수한 열정을 주소서.
무엇보다
감동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임재 감동이 있으시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런 저를 허락하소서.
죽음도 불사하게 하소서.
그런 마음을 갖게 하소서.
내려 놓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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