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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있어야만 했던 바로 그 일(에 2:19-3:6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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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있어야만 했던 바로 그 일(에 2:19-3:6 )

주하인 2008. 8. 7. 11:28

 비오는 창밖.

이 때의 평정을 주는

주님의 위안과

내다보는 내 눈길을 통하여 깨달은

그 때의 그 기억이

언젠가

주님의 일에

혹여 쓰일지 모르겠습니다.

주여.

언제나 감사하나이다.

 

 

 

제 2 장 ( Chapter 2, Esther )


19.  처녀들을 다시 모을 때에는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더라
 
  왕은 또 한번의 처녀들을 모은다.

 

그와 비해 ( 비해서다... )

모르드개는 초라히도 대궐 문에 앉았다.

비교한다면, 천직(賤職)이다.

 

 

 
20.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명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고하지 아니 하니 저가 모르드개의 명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좇음이더라
 

 하지만

모르드개는 당당하다.

에스더는 당당한 삼촌의 명을 받아

가만히 있는다.

 

 둘 모두 흔들림이 보이지 않는다.


 
21.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 지킨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아하수에로

    왕을 원한하여 모살하려 하거늘 
 
  賤職이든

天職이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러다가

큰 일을 경험하고

 


22.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고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고한지라
 
  그 일을

최선을 다하여 왕에게 고한다.

모르드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왕에 대한 충성?

단지, 직분자로서의 최선의 행동이 무엇일까

생각한 후 의무를 다했을까?

어떠한 기회로 인식하며 흥분했을까?

에스더에게 알리면서

왕에게 고했을 때 무슨 그림을 그렸을까?

 


23.  사실하여 실정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의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
 
 궁중일기에 기록되고

일은 마무리 지어지고

그리 잊혀져 간다.

 

 열심히 일을 하면서

나는 혹시 무슨 댓가를 바라거나

큰 그림을 그리지는 않던가?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모르드개는 어찌했을까?

 

연 사흘 넘어 기록되는 묵상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짐작되는

모르드개의 심성은

과묵함과 기다릴 줄 아는 자로 보인다.

아마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지점에 있어야 했던 그 일'이 있다.

그 때 그 일로

난 어떠한 행동을 취했던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을 겪을 때

조금씩 조금씩 성숙하게 반응을 하고 있던가?

덜 흥분하고

덜 좌절하고

덜 기뻐하고

덜 실망하고...

 

 그것은

주님이 모든 일에 운행하시고 계획하심을 느끼게 되면서 부터

조금씩 조금씩 가능한 일임을

알게 된다.

모르드개는

주님과의 많은 체험을 통해 

차분하고 기다릴 줄 아는 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남에게 

인생에 취해야 할 태도를 전해 줄 줄 아는 자다.

 

 

 


제 3 장 ( Chapter 3, Esther )


1.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
 
  너무 높아 지고 있지는 않는가?
너무 높이 올라 가려 하지 않는가?

너무 남의 위에 서려 하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이 전제 되지 않는 성공은 위험하다.

교만은 패망의 지름길이다.

 

 높아지려는 마음을 낮추자.

올라가려는 욕망을 내려놓자.

위에 있고자 하는 의식을 회개하자.

 

 

 
2.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3.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복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모르드개는 지조가 있다.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있다.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는 힘이 있다.


 
4.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더라 
  

그 원칙이 기뻐 보이는 것은

그 기준이 '자아'가 아니고
유다인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하나님과 연계된 의식이 그것이다.

 

 

 

5.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하나님을 믿음과

자아의 높임이 충돌이 발생하게 되었다.

 

 세상은 기독교인을 핍박하게 되어 있다.

세상의 원리는 하나님의 원리와 부딪치게 되어 있다.

그게 정상이다.

세상의 그것은

힘이 있어 보이고 힘이 있어 보이고

현명해 보이고 높아보인다.

즉시 승리하는 것 같다.

 믿는 자는

손해보는 것 만 같다.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어리석어 보인다.

하만 장관과 '문지기' 모르드개가 어찌 비교가 되는가?

 


 
6.  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 고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심지어

믿음은 '순교'를 요구받게 되기도 한다.

 

 

 오늘 묵상은

차분하고 기다릴 줄 아는 '하나님의 편'과

높임을 받고 성공을 위하여 치달리는 '세상의 편'에 대하여

비교가 된다.

 그러면서,

정말 생각지도 아니 하였던

'반역의 죄' 일을 통해

결국 나중에

주님이 역사하시는 단초가 되는

놀라운 일을 보게 된다.

 

무엇을 원하시는가 너무 뚜렷하다.

그러기에 오히려 묵상이 더 쉽지 않다.

무엇인가

영적인 원리를 숨어 있는 진주를 캐내 듯이

하나씩 느껴가는 재미보다는

오늘은 다 열려 있는 곳에서

마음껏 골라가도록 하는

보물 창고에 와 있는 기분이다.

그러니, 더 고르기 힘들다.

 

 주하인에게

주님은

차분히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신다.

그 과정에서

주님을 놓치지 말고

세상의 광포함에

어지러움증 걸리지 않도록

조금은 침잠하고 있으라 하신다.

 주님의 원리에 맞지 않는 일은

과감히 맞서야 한다.

지혜롭게 에스더 같은 양육자를 교훈할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하신다.

 

주님.

그러지요.

주님이 원하시면

가만히 있겠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개 중에

주님이 역사하실 일을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말씀하시면 준행하겠습니다.

주님의 기쁨을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임재를 사라지게 하려는

어떠한 유혹도

주님 막아주소서.

주님 .

마음이 높아지지 않게 하소서.

늘 그러하셨듯이

이러한 기도의 글을

오늘 하루의 삶에 적용시키려 하고 있사오니

주님 잡아 붙드소서.

위에 올라가려는 욕구를 없이 하소서.

그 얼마나 어리석은 욕구인지 알게 하소서.

남을 누르려는 자아를 버리게 하소서.

주님

남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자 되게 하시고

자식과 가정을

주님의 지혜로서 치리하게 도우소서.

참 어려운 인생여정을

주님 말씀 붙잡고 사오니

주여

절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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