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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 낼라면 이렇게 ~ !(삼하3:28-3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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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 낼라면 이렇게 ~ !(삼하3:28-39)

주하인 2005. 10. 7. 11:02

28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30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을 죽인 것은 저가 기브온 전쟁에서 자기 동

생 아사헬을 죽인 까닭이었더라

39 내가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

실지로다 하니라

 


    1. 두 사람

(1) 다윗

 


 1) 행동

 

 아브넬을 위해 운다.
아브넬이 누구인가?
그의 대적이었다가 사울 편에서 자기의 욕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자 순간적

으로 변심하여 다윗편에 귀환하여 아부성 발언을 하였던 자 아닌가?

그런 그를 위하여 지나칠 정도의 슬픔을 표시한다.
헤브론 까지 따라가서 무덤 앞에서 백성들과 함께 애통해 하고 애가를 짓고 굵

은 베 입고 금식까지 하며 운다.

 

       왜?  왜? 왜?

 


 2) 그의 감정 상태

 

. 분노

. 슬픔

 

 

 

 3) 이유 분석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먼저 두려워하는 발언을 했다. (28)


 이것으로 보아 아브넬의 귀환은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그는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예상치 않은 요압의 인간적 분노로 인해 깨졌음을 통탄하고 경악한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 시원해 해야 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중적인 사람처럼 보

이게 그는 분노하였다.

 여기에 답이 있었던 것이다 .

 

"여호와"

 

하나님의 뜻은 그의 이성과 감정을 건너서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인간의 어리석은 분노에 대하여 있을 그 분의 진노가

두려웠던 것이다.

 다윗은 전혀 하나님의 계획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신하는 것은 아브넬을 자기에게 보내신 것은 '선하신 주의 뜻"이 반드

시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철저히 주님께 모든 촛점이 가 있는 사람이었다.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주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었다.
주님의 뜻에 반하는 일에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주님의 일을 어긋나는 일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
인간의 눈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였다.
확실한 자기의 정체를 아는 자였다.


 그의 인간의 눈으로 이해못할 경지의 분노에 대하여 39절에 확실히 나와 있다.

 "39 내가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

 

 자기 자신은 기름 부음 받은 자이고,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결정은 하나님의 뜻이고,
 그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명을 어긴 자는 하나님의 뜻을 어긴 자이고
 결국, 요압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이고
 이 행위는 따라서 몸서리 쳐지는 충격이었던 것이다.

 

 

     (2) 요압

 요압은 철저히 동생 아사헬의 복수심에 불타 있던 자이다.
그는 용사이었다.
대단한 능력을 가졌던 자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감정에 못이겨 분노를 발산 시켜 버렸던 것이다.
결국 다윗의 저주를 받기 까지 된다.

 

  

    2. 묵상

 

1) 분노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분노 자체는 죄가 아니다.

 

2) 거룩한 분노도 있다.
 하나님에 합치된 분노는 거룩하다.

 

3) 분노는 발산할 때 조심해야 한다.
 만일 요압이 다윗에게 자신의 견딜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을 고백하고 다윗의

깊은 뜻을 알았더라면 살인과 저주받을 일이 없지 않았을까?

 

4) 일상에서 주님을 늘 인식하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3. 기도

 

 

 주님, 전 사사로운 것에 많이 넘어집니다.

자주 분이 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런 것이 의로움을 가장한 성질을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보여주신 이 다윗의 거룩한 분노.

 

인간의 사사로움을 떠난 주님을 향한 눈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에 대한 분노.

 

자신의 감정을 넘어서는 차원 높은 분노에 대하여 보고 있습니다.

 

당장 일상에서 이리 되기는 쉽지 않게지만.. 주님.

 

당신께 고정된 눈이 커지길 원합니다.

날마다

매 시간

매순간.

당신의 뜻을 바라보는 다윗같은 자 되길 원합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인간 관계의 존엄성을 가르치려고 기도라는 것을 제정 하셨다.

-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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