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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사랑 믿음 자유 ( 갈 5:1-12 ) 본문

신약 QT

성령 사랑 믿음 자유 ( 갈 5:1-12 )

주하인 2010. 6. 22. 11:56

 

제 5 장 ( Chapter 5, Galatians )  

 

월드컵입니다.

어찌 바라보면

크고 넓고 재밌고

보이는 그물이

환상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물은

그물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지요

 

그물은 갇힘입니다

 하늘을 막아섬입니다

재미고 흥분일 듯 싶지만

또 달리 보면

그것은 제한이기도 합니다

 

세상도 그렇습니다 

 

하늘 먼저 보길 원합니다

그 광활하고 놀라운

하늘을 먼저 보길 원합니다

 

그때에야

그물은 그물이되

그것을 넘어서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세상에 거하되

세상이 제한이 되고

세상이 묶임이 되길 원치 않습니다

 

주님 성령님으로 인한

자유만을

진정으로 바랍니다

 

 

 

 


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자유'

주님을 믿음은 자유다.

자유를 주시려고 우리에게 오셨다.

그 자유는 마음대로 하며 허겁거리는 '방종'과는 다르다.

 '멍에'를 풀어주는 '회복'의 자유다.

'갇힌 자'를 풀어주는 눈물나는 팽창의 자유다.

너무 좋아 그 좋음을 주신 분에 대한 감사가 넘쳐나는 자유다.

그 감사를 놓치는 게 싫어서 더욱 순종을 하게 되는  선한 '자유'다.

선한 이유를 이유로

선하지 못한 자신을 죄책스러워 하면서

허덕이면서도 반항하나 하지 못하고 끌려가면서

쌓이는 것은 죄책감이되는 그런 '율법'으로 부터 벗어나면서도

율법의 원하는 수준보다 훨씬 더 깊은

영적인 의무도 자연스레이 이루어가게 되는 '자유'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이 자유의 기본은 '성령'이시다.

성령이 주는 에너지로 누리게 되는 자유다.

 

그 자유는 믿음으로 주어진다.

믿음으로 인하여 성령이 강하게 임하시는 기틀이 된다.

성령의 임하심은 그 분의 주권적 영역이시기도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믿음으로 성령을 베푸시는 계약적 관계를 보통은 준수하신다.

 

 믿음으로 인하여 오신 성령으로야

'의'가 있을 수 있다.

그 것을 소망하길

주님은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신다.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믿음이 중요하지만

그 믿음이 옳은 믿음인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무엇을 구하고 바라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사로운 정욕에 의한 구함은 주지 않으실 수도 있다.

주실수도 있지만...

따라서 완전한 응답은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만이 '성령'의 역사를 오시게 하실 수 있다.

 

 

 토요일.

휴가를 내고 -아직도 의사들은 토요일에 근무한다 ㅜ.ㅜ;;;- 근 30년 만에

절친한 친구들과 '대전' 에서 옛 추억을 더듬었다.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마침 친구 모친의 생신에 형님의 환갑이란 것을 가서야 알았다.

어쨋든 오랫 만에 뵌 어머니는 연세를 드신 옛날 고등학교 대학교 때의

그 어머니가 틀림없으셨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우리를 반기셨다.

죄송하게도 사느라 바빠서.......

토요일 멋진 추억 여행을 마치고

새벽 4시 가까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온 후

교회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예배에 갔다.

겨우....

찬양대 참여하지못한 것은 물론,

묵상도 정말 죄송하게도 몇 분 만에 읽어보고 끝내는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나태했다.

나름 만남과정에서

주님의 말씀도 많이 전하고

친구들과 사전에 약속된 대로 '좋은 책'에 대하여 나눔도 가졌고

어머니께 '편지'를 써넣은 용돈으로

그 분과 친구 가정을 감동으로 몰아 넣었지만

어쩐 지 '하나님'은 잊은 것이 아니었던 가 하는 것은

주일 느즈막한 시간이 되어서야 '아차'하며 깨달았다.

 

 그 모임은 '참으로 ' 자유스러웠다.

젊었을 적 가졌던 격렬한 우정이란 남자들 만의 끌림도 없었고

비교의 마음도 없었고

설레는 친구들의 내가 갖지 못한 매력에 끌림과

그들과 있으면 모든게 다 재밌는 그런 유혹도 없었고

무엇인가 격렬한 일이 벌어질 듯한 가슴떨리는 기대도 없었지만

이제는 평안 중의 자유가 느껴졌다

흔들리지 않는 잔잔함.

단지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이외는..

그 허전함이 주님의 말씀에 게으름이었던 것 같음을

주일 늦게야 깨달았다.

 

(이 아이가 그 아이다 ^^*)

 

 

 

 예배를 드리고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아내와 난 찬양 예배를 갔다.

좌석이 극장식으로 되어 있다 .

 열심히 찬양을 드리다가 옆을 보니

여집사님을 필두로  몇 칸 건너

6~7세 정도의 아이들이 주욱 ~ 앉아 있는 데

가장 우리에 가까운 쪽에 있는 남자 아이와 3명의 여아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도 집중하고 있는 모습들이 귀여워

난 그 남자 아이와 눈이 맞춰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양손을 맞대어 '하트'모양을 그리며 빙긋 웃으니

아이가 당황한 듯 깜짝 놀라더니

자기도 모르게 '나' ~ 하다가 '쟤요~?' 하는 표정으로

눈이 커지더니 몸을 약간 뒤로 의자쪽으로 파묻으며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다가 슬그머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옆의 여자아이 쪽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

역시 말 한마디 안하고 표정으로만...

그 표정이 얼마나 이쁜 지 아내도 정신없이 그쪽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연신 웃음을 참느라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의 그 표정은 마치

'자신은 남자 아이고 옆의 아이들은 여자 아이인데

여자 아이들은 당연히 귀여움 받을 것을 알고 있으니

자신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짓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ㅎㅎ

 그래서 난 절레 절레 머리를 흔들고는

다시 '너' 하는 입모양으로 만들고는

눈빛을 그윽하게 하고는 손으로 다시 하트를 만들어

가슴께로 들어올리며 끄덕였더니

아이의 얼굴이 '화사~'하게 헤벌죽해지더니

순간적으로 창피한 듯 뒤로 몸을 제키더니

화사한 웃음이 그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내와 난,

아이와 나의 그 소리없이 모노드라마 같은 '사랑의 대화'를 보며

한참 동안을 웃느라 예배를 드리기 어려울 정도였었다.

참 흐뭇했다.

이게 '사람끼리의 사랑'이 아니던가?

 

 저녁에 집에 와서 식사를 하다가

난 아내의 공감 부족에 짜증이 올라왔다.

아내는 'FM녀'다.

 정직하고 순진하고 기준을 정해 놓으면 합당치 않을 때 정직하게 찌른다. ㅜ.ㅜ;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감성에 의거한 소리들은

때로는 못들은 체......

말씀으로 잘 단련해나가며

아내의 그런 점이 좋게 느껴지다가도

때로 한번씩 딱 걸릴 때가 있다.

 주일이 그랬다.

 

토요일,

멋지고 좋은 추억여행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고

자연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도 다시금 맛보았고

좋은 대화도 했고

과거 젊은 시절로 돌아가 '후반기의 20대' - 5를 돌리면 2 아니던가?ㅎ - 를 만끽하고

편안한 잠을 자고 아이와 사랑의 교감을 하고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 상태에서

난 순간 짜증이 올라옴을 견디질 못하겠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옛버릇이 나오려 한다.

말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기도도 안했다.

그냥 슬그머니 들여다 본 구절이

' 계집종의 자녀일거냐

 자유자의 자녀냐' 라는 '선택'에 대하여 나온다.

역시....하는 생각이 스치지만

기도도 하기 싫다.

괜한 깊은 시험에 들어서 출근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시험을 쉽게 통과할 것을 ..

자는 아이 퉁명스럽게 깨워 마중 나올 것을 강요하고 출근했다.

그래도 환우들에게는 착한, 들어주는 의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말씀 훈련 탓이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저녁

퇴근하고 나서도 짜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이유는 짐작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함이다.

좋은 이유, 좋은 내용, 좋은 사람......좋은 누림을 허락하심에 의한

좋은 만남까지 가졌지만

말씀을 멀리함,

게으름.

영적 나태는 '성령'의 멀어짐을 초래한 것이다.

갑작스레이 내 영은 메말라 버리고

이전의 구습으로 그대로 내 동댕이 쳐진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것은 내 잘못도 있지만

그 잘못을 통하여 무엇인가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 것인지 알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어 수영을 갔다.

수영은 육신의 훈련이다.

그것은 머리 안써도 되니 갔다.

내내 물속에서도 말씀에 대한 부담감이 든다.

'자유자냐

 계집종이냐'

계집종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지만 의지랑 상관없는

계집종의 감정인 짜증이 올라온다.

아버지 학교도 가기 싫다.

말씀을 생각하면 이전에는 감정까지 따라 정화됨을 느꼈는데

안그렇다.

그래서 의지를 발휘했다.

그래도 갔다는 이야기다.

정말 가기 싫었고 생각처럼 가니까 '찬양'리더를 부탁한다.

이전에 감정이 엉망이면 '죄'스러움을 핑계로 안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냥 '계집종'이 싫어서 '자유자'로 서기로 의지를 발휘해서 섰다.

나머지는 알아서 주님이 인도하시리라.

한 이십여분 찬양한다.

찬양하니 뜨거워 진다.

찬양의 가사가 날 그대로 이해시킨다.

'십자가 그사랑 멀리 떠~~어~나서~~♬'

그렇다.

마음이 풀어진다.

이제 주님이 기뻐하심을 성령으로 이끄시는 모양이다.

 

 난...

은혜 주시면 폭팔적 가창력을 자랑한다.

자랑이 아닌 감사의 발언이다. ^^*

다들 기뻐함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느껴진다.

은혜 가운데 아버지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들과 대화를 하고

아이에게 내가 가진 이 하나님의 말씀 순종을 가르친 후

마침 운동을 마치고 들어오는 아내를 살포시 껴안아 주었다.

성령이 사랑을 다시 회복시키고

내 영혼의 부드러움을 회복시키고

아니나 다를까 내 말씀 안에서의 믿음을 회복시키시고

자유롭게 하여 주신다.

짜증 난다는 것.

내 속의 내 자아가

또 만족스럽지 못한 사고로 날 몰아가는 현상이다.

이때 말씀을 멀리하게 된다.

영적 전쟁이 맞다.

 

주님께서는 이제 의지를 발휘해서라도

말씀을 선택하길 바라고 계시고

그 선택을 행동으로 옮기는 순종을 원하신다.

이전에 조금은 더 어릴 때는

순종하도록 도우셨지만

지금은 조금 더 내 의지를 바라시는 듯하다.

그런 경우 더욱 큰 은혜로 날 채워가시며

성령은 당신의 존재를 조금 더 뚜렷하게 보이신다.

감사하다.

 

 적용

 

1. 믿음.

 말씀을 매일 묵상함으로 내 믿음의 방향을 설정한다.

말씀 묵상을 떠남은 영혼이 죽음을 의미한다.

믿음.

 말씀을 매개로 한 내 인생의 이끄심을 믿는다.

 내 자식들의 그것도 , 내 주위에 있는 모두도...

그것은 '선'이다.

 

2. 성령

 성령님은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신다.

선택한 후 어느 정도의 순종의 의지를 기다리실 때도 있다.

 성령은 은혜로 당신의 함께 하심을 신호하신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 순종의 의지를 발휘하자.

 

3. 성경 세장 읽겠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4. 사랑

 사랑하자.

 친구가 나눔 중에 그런다.

 '사랑은 그러면이 아니다.

 사랑은 그럼에도..다.'

 맞다.

 그러나 어려웠다.

 짜증이 섞이니 '그러지 않으니.. '였다.

 말씀을 이유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 하니 평화가 다시 왔다.

 회개도 했다.

 찬송도 했다.

 그러니 평화다 .

 감사하다.

 아이의 사랑을 기억하자.

 사랑은 사람을 살린다.

 

5. 자유.

 감사하자.

 자유는 현재의 내 조건이 주는 것이 아니다.

 말씀 앞에 서는 노력과

 주님의 주권적 성령의 은혜 부어주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자유는 내 삶의 이유다.

 자유를 묵상하자.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정말 마음이 메말랐었습니다.

짜증이 날 가득채우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론적으로나 머리로는 도저히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화가 나려고 하는 정서가 날 붙들고 있는 듯 했습니다.

감사도 ,

말씀에 대한 부담도 없었습니다.

괜한 손가락질 하고싶은 마음만 그득한 듯했습니다.

영적으로 사단이 날 잡아다니는 듯 하였습니다.

폭팔시키면 시원할 듯한 유혹 만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평안은 그렇게 되면 무너질 것임을요.

그래서 노력하였습니다.

주님.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주님은 다시금 자유고,

주님은 다시금 사랑이시고

주님은 다시금 기쁨이시고

주님은 다시금 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임을 요.

주님.

그 모든 것이 말씀을 믿음으로 시작이 되고

성령이 내 영혼을 채워서 시작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했습니다.

주여.

귀하신 주님.

당신의 은혜를 놓치지 않도록 하소서.

위의 깨달음이 점점 더 커져서

내 영혼이 각인되게 하소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성령으로 절 가득가득 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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