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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QT

내 앞의 십자가를 보다(갈 3:1-9 )

주하인 2010. 6. 16. 12:01

제 3 장 ( Chapter 3, Galatians )

 

어딜가나 눈에 뜨이는 것이

십자가 임에도

내 영혼에는

어찌 이리

흐릿하게만 보이던가

 

성령이여 도우소서

부족한 믿음마져 도우소서

 

주님 십자가

내 생명의 근원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내 앞에 안 계심이 아니었음을

저로 잊지 않게 하소서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정말로

눈 앞에 밝히 보이느냐?

주하인?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전적으로 '사랑'탓이셨다.

내 혼자 어쩔수 없는 

그 눅눅하고 끈적이고 찔리는 듯 더러운 죄를 걷어가시고

'성령'을 주시기 위한 

그 탓이 아니셨던가?

 그럼에도 어리석은 주하인은 때가 되면 cycle거치듯이

또 먹먹해진다.

'성령'이란 단어와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믿음'이란 단어가 계속 되풀이 되신다.

주님의 안타까우심이 느껴진다.

 

 오늘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나에겐 보이는가?'와

'성령'과 '믿음'이란 단어가 계속 눈에 걸린다.

 어제 저녁도 월드컵과 허리 아픔을 빌미로

시원한 TV앞 로비에 허리 바치고 누워서 게으른 나태의 시간을

새벽까지 보냈다.

그제도 그랬다.

새벽 3시정도에 잠을 깨서 TV영화를 보다가 느즈막히 잠들었었다.

출근해도 그리 큰 변화가 없다.

무엇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초조함만 가득 담아 왔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는 '지난 토요일' 수영장 사건 이후 갑자기

내 속에 들어온 듯 메마른 정서가 날 사로잡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도'하기가 싫다.

그래서 새벽에 그냥 눈 잠깐 감았다 뜨는 정도의 문안인사 기도를 하고

그냥 잠이 들었다

아침 늦게 눈이 떠진다.

속이 탄다.

주님의 은혜가 떨어지면 늘 그렇다.

칼로 찔리는 것 같은 불안이 날 사로 잡으려 한다.

이제 인식이 되니 감사하긴 하다.

난 이게 은혜가 떨어진 현상임을 이제는 일찍 깨닫는다.

문제는 은혜가 떨어진 상태에서 짜증을 내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것을

이겨낼 힘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전에는 알면서도 많이 졌지만 말씀 훈련이 되있던 터라

의지적으로 말씀을 기억내려는 노력과 성공까지의 시간이 짧아지고

따라서 그 짜증은 내 속에서 만 돌고 외부적으로 표출되는 빈도가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으로 금방 회복되는 시간이 짧아지고

다시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빈도가 점차로 높아지긴 한다.

그러나, 그럴 때 내 마음은 많이 흔들리는 것은 똑같다.

죄책감을 필두로

부정적 생각들이 물꼬를 트고 밀고 내려올 것 같은 ......

 

 아침 묵상이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는데.. '다.

죄책감이 자극되려하는 것을 끊었다.

그 깊은 사랑을 알고 체험했으면서도

또 되풀이되는 십자가 타령(^^;;;)으로 생각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고는 멍따한다.

제대로 회개하지 못한 뒤의 생활은 부정적인 생각들의 힘이 강해짐을 느낀다.

'성령, 믿음.. 뭐 쓸데없는 소리야

 옛날 전설 같은 이야기 아닌가'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님을 난 알기에 '멍'해져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말씀 묵상의 체험이 너무 많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있기에

이러한 과정은 지나가야 하는 영적 훈련임을 알기에

집중을 했다.

출근하는 버스 속은 좌석 옆의 뚱뚱한 아저씨가 밀치는

좌석의 번잡함과 머리 위 스피커에서 들리는 4대강 개발에 대한 멘트와

젊은 여인들의 실루엣과 냄새와 밖에 보이는 풍경과

.....................

내 머리 속의 복잡함이 집중하기 어렵게는 했지만

그래도 내 의(義)나 내 깨끗한 정도와 상관없는

'말씀' 붙들려는 노력자체의 중요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내 적은 노력 자체를 기뻐하시는 주님의 넓으신 사랑을 알고 있기에...

난 억지로 억지로 말씀을 붙들려 노력했다.

 

 그런데.....

잘모르겠다.

눈 앞에 십자가가 보임.

확실하게  나에게 알려주신 '속죄론'의 원리를 알고 있기에

십자가의 그 원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 알고 있지만

가슴에 어찌 내려 오는가?

이 부족한 주하인의 죄 속에 있는 상태에서......

오늘 말씀하시고자 하는 '눈 앞에 있는 십자가의 사랑'은

그 아는 정도를 넘어서는 '깨달음', '감동'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 멍따의 영혼에 어찌 '감동' 이 있을까?

더구나 엉터리 같은 환우 분들의

이 부족한 심성 자극이 되풀이 되는 가운데서........

 

 Hiswork이란 아이디가 방문자의 흔적에 보인다.

들어가 보니 '고난 주간 영상'이라는 게 제일 먼저 눈에 보인다.

즉각적으로 깨달음이 있다.

'하나님은 또 이렇게 나에게만 알 수 있는 '세밀한 배려'를 하시는 구나.'

그래서 너무나 많이 본 영상이지만 스크랩해와서 내 방에 걸어놓고

틈나는 대로 들여다 보았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다.

채찍질이 가해질 때마다 깜짝깜짝 나도 모르게 놀라게 된다.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있다.

갈라진 피부도 아프실 텐데

십자가 메고 골고다 올라가시면서 넘어지시는 그 위로

그 무거운 십자가가 내리 눌리는 장면이다.

몇차례나 그러셨다.

이전에 왜 눈에 안띠었는 지 모르지만

십자가 달려 올려지시다가 줄이 미끄러지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면서 눌리는 장면도 처음 보는 듯 생소하다.

그러면서 난 장면 하나하나 마다

다 익숙한 듯이 느껴진다.

손가락질하는 어이없는 자들의 모습이

내 영혼에서 느껴지는 나도 모르는 비난과 비방의 스치는 영상과 닮아 있는 듯하고

찢어지는 피부의 아픔이 그대로

내 아픈 상처의 고난을 수천배 확대한 듯 익숙해 보였고

넘어지면서 뜨끔거리는 것은

내 '죄책감'으로 무거울 때 느끼는 그 아픔

그 둔하고 부러질 듯한 고통을 느끼시는 것 같았고

달려서 절벽위 공중에 매달리실 때의

그 혼자의 절박함은

내 외로움을 극도로 확대하신 것이 아니신가 싶게

느껴져 왔다.

'실체감 있게'

그렇다.

주님은 또 나에게 알려주시려는 것이었다.

'내가 아픈 아픔을 그 분은 모두 다 아신다. '

' 어떤 종류의 고난도 그 분은 다 십자가에서 체험하셨다'

그렁에도 절대로 비난하지 않으시고 반항하지 않으심은

나의 닮아감을 위한 것이시다.

배려시다.

나.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절해의 고통에

그 분이 실체로 내 앞에 나타나

십자가로 모든 고통을 다 체휼하시고

모범을 보이시고

나에게 보이심은

오직 사랑 탓이셨었던 것이다.

그 사랑으로 '성령'을 보내주시려는

상상할 수 없는 결단의 사랑이시다.

 

 마음이 감동으로 차온다.

훨씬 따사로운 마음이 되어간다.

냉정, 냉랭함, 짜증, 긴장 보다는

여유, 눈물, 감동...의 감정에 가까워져 간다.

 나 

 내 앞에 십자가 예수님을 뵙고 있다.

그 분께서 '성령'을 보내셨음을 다시한번 '믿음'으로 받길 원한다.

그래서 감동을 회복하길 원한다.

이 부족한 자의 '믿음' 마져 주님이 회복시키시길 원한다.

메마른 심령에 주님의 십자가의 그 사랑을 다시 한번 눈앞에 보고 있는 듯

상기하고 주님의 주시고자 그리도 원하시는 '성령'님을

믿음으로 내 영혼에 깊이 받아들이길 원한다.

믿음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성령으로 믿음의 강함이

내 영혼에 실체적으로 인식되길 원한다.

 

 

적용

1. 십자가를 묵상한다.

 

2. 십자가는 인내를 의미한다.

  십자가는 사랑을 의미한다.

  십자가는 실제다.

 인내하자.

 긍휼한 마음을 구하자.

 눈 앞에 보듯이 생활하자.

- 계속 인내하자.

 

3. 믿음

 여러가지 조건으로 인하여 의심이 먼저 앞서는 나다.

 믿는다는 것은 '손해'볼 수 있음,

 멍청하다는 소리를 감수하고

 쑥스러움을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믿자.

 

4. 성령.

 성령 사모한다.

 

5. 성경 세장 읽겠다. 

 

6. 되뇌이자  

 갈 3장 1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기도

 주님.

이상하게 멍합니다.

메마르고 은혜가 떨어진 듯합니다.

죄 짓기 좋은 조건에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날 사로잡으려 합니다.

주님.

이럴 때 '십자가'를 눈앞에 보고 있는 나..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성령으로 도우소서.

주님.

믿음 키우소서.

주님 말씀을 붙들고 있을 때

성령의 감동으로 절 붙드시고

성령의 지혜로 절 깨우시고

성령의 긍휼함으로 절 사랑으로 넘치게 하시고

성령의 오래참음으로 절 오래참게 하시고

성령의 기뻐함으로 기뻐하게 하소서.

성령의 힘으로 절 믿음 크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 땅을 살되 주님의 나라에 살듯 그런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예수 안에 있는 우리 한량 없이 즐겁고 주 성령의 위로함이 마음 속에 차도다

천국 음악 소리 같은 은혜로운 그 말씀 끊임 없이 듣는 우리 어찌 찬양 안할까

 

이 세상의 모진 풍파 쉬지 않고 불어도 주님 안에 보호 받는 우리 마음 편하다

늘 깨어서 기도하고 저 천국을 바라며 주님 만을 기다 리니 어찌 찬양 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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