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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근심치 말게 하고 마귀를 틈타이지 말게 하자 ( 엡4:25-32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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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근심치 말게 하고 마귀를 틈타이지 말게 하자 ( 엡4:25-32 )

주하인 2009. 5. 10. 17:22

제 4 장 ( Chapter 4, Ephesians )

 

이런

차가운 냉정을 유지할 수 만 있다면

마나 좋을까?

ㅜ.ㅜ ;;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어차피 '분'은 평생을 싸워야할 문제인지라

분을 내고 나면

남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짐이 크다.

 나 스스로에게 분으로 지워지는 짐은

'그것도 못하는............'이라는 깊은 좌절감으로

낮은 자존감을 확인시키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물론 분을 내지는 말아야 하고

그것을 이겨내려는 그간의 노력은

누구도 날보고 온유하다고는 못하겠지만..ㅎㅎ.. 스스로는

나름대로는 많은 에너지를 써가며 온유하려 노력하여 왔었다.

그럼에도 한번씩 분노의 문제에 걸리면

아주 오랫동안 스스로 힘이 없었다.

 하지만 이 구절에 오면서 깨닫는 바가 없지 않아 있다.

 

 '분을 내어도'

누구도 분을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돌아보면 그들은 분을 내어도 그리 나처럼 심각히 받아 들이지 않고도

나보다  분을 내는 빈도가 적다.

무엇이 차이 였을까?

 분노에 대하는 그들의 자세가 아닌가?

분노는 있을 수는 있되 약하게...

분노는 마음 속에서 돌 수는 있지만 표현을 약하게하거나 적절한 표현 방법으로............

그리고는 잊어 버린다.

 난, 어떠 했었는가?

분은 절대로 내면 안된다.

절대로 .. 가 어디 있는가?

누구라서 절대인가?

그럴 수 있음을 먼저 인식함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지나친 화는 피하며 적절히 발하는 분노는 있을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주님 예수님도 일생에 분을 두번은 화를 내셨다.

물론 '공분'이 맞으시다. 

(그러고 보니 주님도 분을 표현은 하셨다.

 그것도 채찍질로 성전에서 과도하게 표하기는 하셨다. ')

 그렇다.

분은 낼 수는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어찌 받아 들여야 하는가?

빈도는 줄이자.

분노를 표현함은 두려워 하지 말자 .

오히려 분을 내는 것은 극도의 죄라는 잘못된 인식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죄를 짓지 않는 분노'란 어떤 분노인가?

남에게 상처주는 말은 피하라.

난..눌렸던 분노로 특히 가까운 사람 -아내, 아들..-에게 아픔을 많이 주었었다.

그들의 인격을 모독하는 소리까지 했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다가 이제는 주님 안에서 격을 낮추어도 실은 그들은 아파한다.

그렇다.

화를 낼 수는 있다.

하지만 어조에서는 극도로 주의해야 한다.

 

또한 '해가 지도록 분을 풀지 않지 말자.'

이것은 방법론의 문제다.

분을 내고 나면 나 스스로 깊은 자괴감으로 손발의 힘을 풀고

될대로 되라.. 하는 식으로 며칠 씩 지나다가

시간이 지나 미안감 마져 억압될 때 쯤,

다시 잘해주는 ................그런 악순환을 얼마나 되풀이 해 왔었던가?

예수님 영접하고도 이러한 분노의 문제가 날 올무로 많이 걸어 왔었다.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고 시간이 지나서야

이러한 구석구석의 말씀이 방법론적인 차원에서도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혼을 내고나서도 밤이 깊기 전에

아이 방에 들어가

일방적이나마 아이를 끌어안고 미안하다고 하고

기도하고 온다.

 물론, '쑥스럽다.', '아이가 아빠의 권위를 어찌 볼까?'.........등 여러 생각이

그러한 태도를 제지하는 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씀에서 분을 이렇게 다루라 하시니

점점 그리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상처는 덜 쌓이는 듯 싶다.


 

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정말 분노는 마귀가 틈타기 쉬운 길이고

그것을 통해서 사랑하는 가까운 가족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아픔 들이 있는 지 모른다.

가까운 자가 가장 존경받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이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 서로 상처를 입히기 가장 쉽다.

분노를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다시금 돌아보고

얼른 해결해 마귀로 틈타일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

      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당연히도 '분노'가 생길 경우를 만들 기회를 없애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이 '말'이다.

실은 '대화'도 '법'이 있다.

법이 있다는 것은 '기술', 즉 방법론인데

그 방법을 몰라

오늘날 날 위시해 한국의 아버지, 자식, 남편과 아내, 사회 구성원 간에

'분노'를 쌓아가고 내적인 상처를 많이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 대화의 법에 여러가지가 나와 있지만

근본은 '온유한 말'이고 '말을 덜함'이 기본이다.

'경청'으로 대변되고 '배려'로 대변되는

말의 덕목이

은혜로운 기독교인이 마땅이 취해야할 '기본 덕목'이다.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는 무슨 의미신가?

성령은 인격적이신 분이시란 이야기다.

그 분은 우리의 성전에서 대화를 기다리는 인격적인 분이시라는 이야기다.

우리의 도움을 위하여 두근 거리며 기다리시는 분이시고

우리의 성화를 눈물 겹도록 기뻐하시면서

기도를 통하여 하늘의 가장 깊은 곳에 계신 하나님과 교통하도록 도우시는 분이시고

우리가 알지못하는 깊은 부분을 하나님께 대신 중보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의 원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강권적으로 하시지 않으시는

정말 인격적이신 분이시다.

 그러기에

방법론을 모름으로 내 뱉는 '말'의 잘못아닌 실수,

실수인지 모르고 뱉어내는 습관적 말투,

오랜 유교적 습관과 갑자기 밀고 들어온 현대의 문명의 이기 사이에서

알지 못하고 충돌하는 모든 말의 충돌 때문에 생기는

온갖 '상처'와 '갈등'

필요없는 에너지 소모를 보실 때 마다 눈물을 흘리시며 안타까워 하시는 분이시다.

그 상처로 인한

배우지 못한 분노의 해결방법에 대하여 무지한 자들의

과도한 분노와 지속되는 분노와

그로 인한 오래된 낮은 자존감과 아파함을

주님 성령께서는 근심하며 쳐다보고 계시는 것이다.


 주님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말자.

그것은 말을 주의 하면 된다.

온유함이 옳다.

그래도 끓어오르는 분은 적절한 방법으로 해결하면 된다 .

분이 오를 때 슬그머니 자리를 피함도 옳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오르는 분노도 대상을 약간 비틀 면 된다.

하늘을 보고 소리 내어도 된다.

말을 절제한다.

그래도 지면 얼른 기도한다.

기도하고 자신을 향하는 스스로의 비난도 십자가에 내려 놓는다.

그리고 나서는 밤이 지나기 전에 사과하고 해결한다.

그래도 안되는 것은 '기도'에 맡긴다.

그리고는 기다린다.

주님이 해결하셨음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

 

 이게

분노가 많은 나에게 주님께서 하는 말씀이다.

난, 분노로 인한 후유증이 많이 짧아져간다.

 

 주여.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스스로 어려워 하는 부분 들에 대하여

다시금 말씀으로 절 깨우치십니다.

나를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에서

오늘 은 사단이 틈타일 '분'에 대하여 묵상토록 하십니다.

예.

그 분노의 함부로 발산됨의 무서움에 대하여 다시금 돌아봄니다.

그 저항할 수 없는

사단의 개입을 깨닫고 인지할 기회도 주셧습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이제 분을 가능하면 참을 수 있을 인내를 허락하소서.

바라옵기는 참을 수 있기 보다

말을 조심하고 현명한 말을 하고 온유한 단어를 선택할 지혜를 허락하심으로

스스로 그럴 분의 기회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참기 보다는 안생기게 하소서.

주님 혹 제가 무지해서 또 넘어졌다면

어서 벌떡 일어날 기운을 주소서.

성령께 간구합니다.

성령을 근심시킬 미련을 허락하지 마소서.

늘 인격적이시고 합리적이신 주님.

주님 성령께서 이 나약한 상처덩어리 주하인을 지키소서.

머리 부터 깨우치시고 영혼이 전체로 주님께 전율하게 하소서.

하지말라면 안하는 하루 이틀 일년 평생이 되도록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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