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아이 주하인( 엡 5:1-7 ) 본문

신약 QT

아이 주하인( 엡 5:1-7 )

주하인 2009. 5. 11. 12:53

제 5 장 ( Chapter 5, Ephesians )

 

 

아내 생일이라서

오랫만에 가족이 다 모였습니다.

늘 이렇게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들들이

나를 닮아 의사하나 나오길

아음 속으로나마 바랬지만

뜻대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

실은 난 그 보단

내가 체험하는

이 하나님의 감동을

이 아이들이 닮았으면 합니다.

내 현실의 모습은 닮지는 않아도

주님을 아는 기쁨과 그 실체만은

꼭 저처럼 닮아가길 바랍니다.

저를 뛰어넘는

훨씬 자유롭고 큰 

인격적 만남 , 믿음.....말입니다.

 

 


1.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Be imitators of God, therefore, as dearly loved children  

     하나님의 모방자가 되어라 ,   그 분의 깊은 사랑받는 자로서...)


 하나님의 모방자.

즉, '하나님을 흉내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받는 자라는 표현보다는 NIV의 Imitator, 즉 모방자가 훨씬 깊은 느낌이다.

 모방.

흉내.

 마치 'dearly' loved children, 즉 진정한 사랑을 받는 자 처럼 모방하라신다.

사랑받는 아기가 어른을 흉내내는 그 이쁜 모습.

그 모습을 닮으라 시는 것이시다.

 

 ' dear'에 대하여 영어 사전을 보았다.

친애하는, 친밀한, 진심으로 사랑 받는... 이라는 뜻으로

미국에서는 'dear ~'라 하면 아주 친밀한 의미고

'my dear~'라 하면 '격식이 있는 ' 인사에 지나지 않는다 한다.

 영국은 반대의 의미라니 재미가 있다.   

 이 'Dearly' 사랑받는 자녀 라면 

'진정으로 살갑게' 사랑하는 자녀들이라는 의미다.

그 진정으로 사랑 받는 자녀들이라면 어떤 느낌인가?

   내 이뻐하는 새끼..라는 표현이 더 적나라 하지 않을까?

똥까지 이쁘고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정말 정말 사랑스러운 그런 아이들.

그 아이들을 그렇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본 받으라는 것이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는 사랑이다.

 

그래

그렇다.

바로 며칠 전 우리도 '어버이 날'로서 자식들의 '카네이션'을 받았다.

우리도 일부분 그렇게나 내 자식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아이들은 나를 닮으라고 자신있게 이야기 할

온전한 부모는 얼마나 되는가?

있다면 그것은 착각의 산물이리라.

온전한 하나님 만이 온전한 사랑을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부모의 그 온전한 사랑을 받으며

그 분을 닮으려 노력해야 한다.

아니,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를 싫어하는 아들이 아버지를 꼭닮는다.

우리는 '모방'함으로 자란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상처 입은 자들이라서

올바로 자라기 힘들다.

 

 하나님 아버지의 그 사랑을 닮아야 한다.

아버지의 아들이신 성육화하신 예수님을 모방해야 한다.

그 분의 발걸음

그 분의 언행

그 분의 느낌

그 분의 기도

그 분의 고요함

그 분의 모든 것을 닮으려 노력해야 한다.

한걸음

한걸음

그 분이 뒷짐졌으면 나도 그래야 한다.

그 분이 팔을 높이 드셨으면 나도 그래야 한다.

...

 그 분이 날 너무 사랑하셨기에 그래야 한다. 

그 분은 날 그 분의 아이로 보시기에 그렇다.

난 그 분이  내 사랑하는 닮고 싶은 아버지이기에 그렇다.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and live a life of love, just as Christ loved us  and gave himself up for us as a fragrant offering and

   sacrifice to God. 사랑의 삶을 살아라.   마치 그리스도 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에 대한

    향기나는 제물과 희생물로 드리신 것 처럼.)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시는 분은

'그리스도 '밖에 없으시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셨다.

십자가에 당신을 못 박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보이셨다.

주님 하나님은 당신이시자 아들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버리심같이 성육신 시키심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

그런, 사랑을 배워야 한다.

그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

' live a life of love '

그 분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함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삶이 되신 것이다.

향기로운 제물이 되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우리 아들 딸 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지 않으시다.  

 세상의 삶을 '사랑'으로써 삶으로

당신께 향기나는 제물이 되어라 하시는 것이다.

그 방법은 '모방자'가 되는 것이다 .

일상의 모든 일에서

예수 께서 어찌 사셨는가 고민하며

예수님 처럼 살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모방자의 삶'

예수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삶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시고

그것이 우리가 주님께 드려야 할 삶의 태도이시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의 유일한 목적이다.  

 마치 아기 처럼

사랑받는 아기가 그런 것처럼

예수님을 흉내내자.

예수님을 모방하자.

예수님의 단순한 인생목표를 닮자.


 


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하지만,

그게 옳은 지는 알지만

늘 뜻대로 되는가?

쉬운가?

알면서는 좇을수 있는가?

예수님의 모방자가 될 수 는 있는가?

되어야 할 당위성에 대하여 잊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아가서 그 분을 모방하는

모방자의 삶을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은

그게 주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렇다.

주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

 이 나이 -50-까지 살지 않더라도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시는 분들께는

세상의 허상을 좇는 것의 '힘이 부침'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한한 것이기 때문이다.

돈은 무슨 이유로 모으는가?

편해서 얼마나 더 편할 것인가?

..............

수도 없이 많은 삶의 질문들이 펼쳐 졌지만 어느 누구도 

진실에 대하여 말하지 못하고 죽어가지 않았는가?

 하지만, 진실은 있었다.

하나님이시다.

그 분 하나님 만이 이 땅에서 살다가 죽어도 '되는'

유일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굳이 '천국'에서 영생의 삶을 산다는

엄청난 축복을 머리 속에 드집어 넣지 않해도

이 땅위의 삶이 확고 부동한 '의미'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이유가 '하나님의 뜻'에 있기 때문이다.

 생각할 이유도 ,

생각할 자격도

생각할 의미도 없다.

그 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가르쳐 주시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체험의 은혜'가

감히 감정적이나 감상적이나 논리적 만족으로가 아닌

변함없는 놀라운 감동이 흐르는

감사와 기쁨의 체험을 하며

그 감동의 질이

예술품을 보거나 아름 다운 풍경이나

특정한 이벤트나

도박 등의 흥분이나

섹스의 전기같은 자극이나......

세상의 모든 '주님의 감동'을 흉내내는

'유사한 쾌락'이나 생체적 전기 생리 신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과 상관없는 ,

아주 아주 양질의 것임을

은혜로 체험해 갈때

이러한 은혜와 평강의 감동 만 가지고도

우리 주님은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당위성이 넘치고도 남는 분 임을

알 수가 있다.

    난, 안다.

주님은 살아계시고

그 분은 감동이시고

그 분은 전율이시고

그 분은 해방이시고

그 분은 안정감이고

그 분은 변함없는 분이시고

그 분은 사랑이시고.....................

이러한 분을 많은 분들이 같이 체험하고 공감하길 원한다.

그것이 이 블로그를 여는 목적이다.

 그러기에 당연히도 그러한  인격적이신 주님과의 만남의 체험은

당연히도 주님을 '모방'하는 이유로서 충분하다.

 안타까운 것이 이것이다.

많은 분들이 이 진정한 진실에도 불구하고

외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모두는 아니지만 자신의 업적으로서의 선교,

과시로서의 기도,  금욕적 성향으로서의 금식,

세상적 이유로서의 확장..... 

 

 또한 주님을 모방해야 하는

더 더욱 깊은 이유는 '주님의 뜻'을 따름으로

그 분의 향기로운 재물과 향축이 되어야 하는 의무에 있다.

모방이 올바른 길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어쨋든 그러함을 알면서도

난 ,

다른 많은 깨달은 기독교인들 조차도

어찌하여 모방자가 되어서

주님의 그 놀라운 은혜 가운데 안정감있는 인생을 살다가

주님의 곁으로 가기를 망설이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매일 되풀이 되는  

'죄악' 탓이다.

이 죄악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다 사하여 졌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말씀으로 매일같이 '회개하길 '권유하실 만큼

우리 영혼에는 죽을 때까지 죄가 밀려오는 것이다.

오늘 묵상 구절에서

'음행'이라 나온다.

얼마나 진득한가?

죽도록 이 본능은 사라지지 않지 않는가?

난,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초기

무언가 뛰쳐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그 방면'에는 ㅎㅎ 많은 무게를 덜 수 있었지만

지금 늦은 중년을 넘어서는 이 순간에도 몇번씩 흔들릴 때가 있음을 고백한다.

어쨋든 이러한 음행이나

또한 더러운 것, 탐욕은

이 땅의 삶을 살면서

이 마귀의 세상에서 오염되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렇다면 어찌하는가?

매일 같이 우리는 말씀으로 새로워 져야 한다.

말씀을 읽는 동안 성령으로 매일 매일 죄 사함을 다시 받아야 한다.

주님의 우리를 구원하신 뜻을 알아야 하고

모방자가 될 결심을 다시 해야 한다.

결심이면 족하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

그리고는 그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향수를 늘 사모해야 한다.

향기로운 인격으로 나도록

그것이 내 변화의 증상이 되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주님을 만날 시간이 오면

과감히

내려놓고 편안히 갈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을 믿고 많은 시간.

이제는 많은 부분에서 홀가분하다.

지금 부르셔도 욕심 나는 것은 별로 없다.

정말 가볍다.

하지만 해결받지 못한 것은 많다.

자식과 아내에 대한 염려도 그것의 하나다.

어쨋든 그러한 부분이 해결 될 때까지

주님은 아마도

이 세상의 불가마에서

연단시키실 것이 분명하다.

 

하루라도 빨리

주님을 닮을

모방자의 삶을 각오해야한다.

 

 

적용

1. 주님을 모방하자.

  외친다.

  오늘 난 '모방자'가 되겠다.

 

2. 매사에 주님은 어찌 행동하셨을까 고민하는 하루가 되리라.

 

3. 주님의 등을 묵상한다.

 

4. 성경 일곱장 읽는다.

  주님이 여 말씀하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5.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한다.

 사랑의 십자가

 고난을 가져가신 십자가

 순종의 십자가

 수치를 이해하신 십자가

 생명의 십자가

 보혈의 십자가

 회개의 십자가

 향기로운 십자가

 향축의 십자가

 

6. 사랑의 삶을 살자

  live a life of love

 

7. 회개하자.

   주님 십자가에 내려 놓자.

   온전하시고 모든 것 다 아시고 전능하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예수님의 하나님을 묵상하고

   내 혼자 되지 않는 죄악을 주님 앞에 해결받자.

   믿고 내려놓자.

 

8. 내 삶은 주님을 닮는게 이유였음을 명심하고 명심하자.

   인생의 목표라는 헛된허상을 추구하지 말자.

   본질을 추구하자.

 

 

  

 

기도

 

 주님.

오늘은 왜인지 묵상을 들자 마자

뒤뚱거리는 아이를 연상하였습니다.

그 아이가 아빠 예수님을 따라 좇는 모습이 상상되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진료실 문을 열고 식당으로 향하려는 순간

문 앞에

아이가 이리저리 어머니와 뛰어 놀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주님 예수님을 흉내내는

아이와 같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다 큰 ,

늙은 저에게 그러시기를 묵상시키십니다.

 

예.

그러지요.

어이없는 요구이실 것이라

어떤 이들.- 특히 술과 담배나 세상의 방법에 찌든 동갑네 중노인들에게는 ㅎㅎ -가능치 않을

요구이시라 생각이 되지만

전, 어린아이와 같은 영혼의 회복의 당위성을 압니다.

그래서

그리하라 하시고 그런 묵상을 허락하신 주님이 감사합니다.

 

그 놀라운 은혜의 기쁨을 아는 자

얼마 안되는 사람의 일원으로 절 남겨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의 사랑 받는자.

주님의 dearly loved childeren같이

절 받아 주소서.

제가 그리 느끼게 하소서.

주님의 품안에서

주님의 크고 강한 팔 안에서 거하는

당신의 아이임을 기뻐합니다.

주여.

부디

부족한 이 아이 주하인에게

성령으로 이끄셔서

주님이 보이시던 그 사랑의 삶을 흉내낼 수 있도록 이끄소서.

그러다가

그러다가

주님 부르시면

주님 앞에 기쁘게 다가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도우소서.

이제 곧

수술이 있을 예정입니다.

잡으소서.

편치 않은 목도 회복시키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참.

점심시간 같이 식사하던 여선생님의 기도도 들으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