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성령으로 내딛는 새 발걸음 ( 마 3:13-4:11 ) 본문

신약 QT

성령으로 내딛는 새 발걸음 ( 마 3:13-4:11 )

주하인 2010. 1. 6. 13:29

사방이 컴컴하다.

 

짙은 어두움이외

보이는 것은

멀리 보이는

냇가의 가로등과

공터의 등불 뿐.

 

쏟아지는 눈발이

허무와 두려움 대신

푸근함이길 원한다.

 

고생보다

성령의 축복으로

보이길 원한다.

 

 

 

제 3 장 ( Chapter 3, Matthew )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

뻔히 아시는 주님.

 그 예수님께서 '의'를 이루기 위하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다.

 성령이 그 위에 내리신다.

 

 힘들어도 할 것은 해야 한다.

주님의 뜻이면 해야 한다.

 

주님 예수님도

성령이 임하셔서야

본격적으로 공생애에 임하셨다.

 

 

 


제 4 장 ( Chapter 4, Matthew )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단의 송사는 너무도 절묘하다.

그것이 아님에도 그렇게 보인다.

正과 邪가 구분이 뚜렷지 않다.

  눈이 밤에 깊이 많이 왔다.

눈 폭탄 이라더라.

그 눈이 새벽같이 일어나서 내려다 보니

소담스럽다.

하지만 그 눈은 오늘 신문에 나온 것처럼

기후 변화의 전초증상이라 한다.

스키를 시내에서 타고

포근한 하루를 느낌으로 주기도 하지만

지독한 교통대란과 더불어 사고의 위험성을 말하기도 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가?

눈이 좋은가?

눈이 싫은가?

 어느게 바른 것인가?

과연 구분이 가능한가?

40일의 금식 중이라면

사단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지금 성경을 보며

저것은 나쁜 것이란 것을 확실히 알고 있기에

그 구분을 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만

막상 혼돈 속에 정과 사를

구분하는 게 쉬운가?

 일이 벌어지면

모두 남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모두 내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그 안에서 교훈을 발견하고 대처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매사에 '선택'이다.

사단의 말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삶이란

흔들리는 그네와 같다.

저울 추와 같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주님 예수님은 전혀 흔들림이 없으시다.

당연히도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경배하는 삶을 사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흔들림 없는 공생애는

'성령'의 강력한 임재가 먼저 되시면서 시작이 되셨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성령은 힘이시고 능력이시다. 

 

 정신이 없다.

정신이 없다.

새해가 정신이 없다.

분주하고 헷갈린다.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혼돈으로 날 몰고 간다.

내 잘못인가?

남탓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이 없어지려 한다.

회개하고 놓으려 하는 데

현실이 다가온다.

 거기에  군대간 아이가 아프다.

병원에 입원했다 한다.

큰 병은 아닌 듯 하지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속상하다.

가슴이 아픈 것도 그렇지만

속이 흔들리는 게 더 문제다.

 내가 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매사에 다 잘못인 듯 싶다.

무엇이 문제이던가?

집중하려 하지만 안된다.

 

 예수님

요한에게 걸어오시면서

그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명경지수

말그대로 한점 흔들림 없는 마음이셨을까?

공생애.

잠 못자고 사람들에 시달리고 식사가 시원 찮을 것이 분명하고

3년을 내내 그 일을 하실 것이 분명한데

그 첫걸음을 내디시기 전에

예수님은 얼마나 혼란 스러우셨을까?

 하지만 그 분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확고 부동한 정체감이 있으시기에 흔들리지 않으셨을 것이다.

오늘의 난 어떠한가?

내가 겪는 일이 과연 그런가?

'사단'의 공격과

' 하나님의 허락하신 일' 사이에서

계속 혼돈이다.

사단의 공격이라면 어찌 대처해야 할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하지만

하나님의 허락하신 일이라면

여러 사람들이 걸려 있는 일이라서

'그럴 수 있는가?'한다.

앞으로 대처는 어찌할까 ..한다.

내 혼자 해결할 수 없다.

그럼에도

주님 예수님이 발걸음 내디디시는

그 첫발자국을 성령께서 강하게 인도하신다.

나.

비록 무엇인지 잘모르겠지만

성령이 강하게 잡으시기만 한다면

실타래 감겨있듯이 묶여 있는

이 혼란의 끈이 다 풀어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예수님의 흔들리지 않으심.

사단의 송사에 흔들리지 않으시는 그 모습이 부럽다.

  새해에는

더욱 더 성령을 사모하여야 할 것이다.

더욱 말씀 안에 침잠해야 할 것이다.

적용

1.  성령을 사모한다.

 

2. 예수님 내 딛으시는 첫 발자국을 묵상한다.

 

3. 말씀 여덟장 읽겠다.

 

4.  기도한다.

 중보하고

 간구하자

 회개하고

 감사하자.

 

 

 

 

기도

주님

많이 힘이 듭니다.

흔들리고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주님.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원하시는 지

저에게 뚜렷이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님

내 영혼에 '쾅'하고 나타나셔서

너 지금 부터 열흘 금식해라... 라고 하세요.

그러면 그리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요셉님처럼

꿈에라도 나와서 절 가르치세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사

말씀하지 않으셔도 알게 하소서.

저로 말씀 앞에 굳게 서게 하소서.

주님의 뜻이면 강하게 따라할 소명감을 주소서.

이리 미적한 삶이 싫습니다.

주여.

도우소서.

주여.

힘을 주소서.

주여.

인도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시여

저에게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강력한 임재의 현상을 맛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리와 제자 사이(마5:1-12 )   (0) 2010.01.08
나 그리하리라(마4:12-25)  (0) 2010.01.07
새해를 회개로 시작하자(마 3:1-12 )   (0) 2010.01.05
경악의 과정(마 2:13-23 )   (0) 2010.01.04
진실과 허상 ( 마 2:1-12 )   (0) 2010.01.03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