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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의 과정(마 2:13-23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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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의 과정(마 2:13-23 )

주하인 2010. 1. 4. 12:37

제 2 장 ( Chapter 2, Matthew )

 

 

 아침에 출근하는데

눈 폭탄으로 표현될 정도의

많은 눈이 왔다.

버스 창 밖으로

험한 눈이 보인다.

 

불편으로 치자면

사고의 위험도 많고

질퍽거리는 더러움도 그렇고

눈은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것으로 치자면

분위기 있고

포근한 느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매개체요

더러운 것을

잠시나마 숨겨주는

순결의 흰 색깔이고

새해에 올 풍년의 예고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의 한 장이고

어른에게는 스키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나쁜 것이

나쁜 것 만은 아니다.

 

주님의 뜻안에서 보면

경악스러울 정도로 나쁜 것도

다 의미가 있는 것이다

 

 


13.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동방박사가 와서 축제 분위기고

곧 무슨 큰 멋진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바로 그날에 꿈에 요셉에게 나타나

천사가 헤롯이 죽이려 하는 사실을 알려 주시며

애굽으로 피하라 하신다.

 요셉님은 그 날 저녁으로 아기와 마리아님과 함께

애굽으로 떠나갔다.

 

 어이가 없지 않은가?

축복 , 그것도 대단한 예언 가운데

바로 그날에 가장 나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나쁜 일이란 것은 이런 것이다.

좋은 것 주신 후 금방 나쁜 것으로 바뀌는 것.

사람 마음은 나쁜 것으로 계속 되다가 좋은 것을 주면

감동의 폭이 넓어지나

반대가 되면 견디기 힘들어진다.

 더구나 마리아님은 '산모'다

산욕기 1일째의 산모다.

 보통, 산모는 산욕기 3개월까지는

골반의 인대는 온통 늘어나 있고

몸은 붓고

하혈은 있을 것이며

저항력은 떨어진 상태로

산후조리를 철저히 해야 노후에 고생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리아님은

먹지 못하고 더러운 장소에서 분만하여

지금 시대 사람들 같으면 죽기 딱 쉽상이다.

 아이 예수님은 어떤가?

이제 태가 떨어지지도 않은 출생 하루만에

그 먼길을 간다는 것은

지독한 행운이 아니고는 살기 힘든 상황이 맞다.

그러한 그녀에게 피하라 하신다.

그러면서 피할 멋진 세단 자동차나 비행기를 준 것도 아니다.

 더더구나 피할 애굽에는 어디하나 의지할 곳이 있는 곳이 아니다.

   

 참 상황이 힘이 들다 못해

절박한 상황이다.

절박하다 못해 미칠 것 만 같은 상황일 듯 싶다.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때가 되어서

다시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자의 말씀에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때가 더 지나서야

다시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갈릴리 지방으로 가서 자리를 잡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준행하는 자들에게도

그 삶의 방향은

꼭 일사천리가 아니다.

아니 , 오히려 고난의 과정이다.

아니다.

고난 보다는 오히려 경악의 과정이 될 수도 있다.

도저히 상식에 맞지 않는 일 투성이다.

축복이 넘칠거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혼돈 투성이다.

혼돈을 넘어서는 '목숨을 담보'로 한 탈주극이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애굽에서 생활하게 하신 후에

다시한번 나타나서

뜬금없이 이스라엘로 돌아가라 하신다.

방랑자의 삶이다.

가라하면 가고

오라시면 와야한다.

요셉과 마리아님과 예수님의 배울점은

그러한 경악의 과정에서도

지체한 흔적이 그리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철저히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두려워하고 있다.

힘이 들고 있다.

그러나 순종한다.

이게 다르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다.

 

주님은 무조건 선이다.

 

주님의 뜻은 시간이 지나가봐야 안다.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흔들림은 있다.

 

주님은 끝까지 말씀해주시는 적이 없다.

조금 조금이시다.

그 과정을 순종하고 따르는 자는

모든게 '선'이다.

 

 

새해다.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동시다발적으로

흔들린다.

무슨뜻이신가?

왜 이리 답답한가?

이해는 가기는 간다.

아내의 말이다.

'원하시는 게 더 커지시나 보다'

맞는 말 같다.

이전과 같으면 안될 것 같기는 하다.

 

 새해를 맞아

묵상하는 이들 예수님 가족의 운명이 참 기구함을 본다.

그러나,

이들의 대처를 보면서

생각하는 바가 많다.

 

 나.

당혹스러운 한해를 맞고 있다.

큰 일이 아니면서도

과거의 답답함을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들 예수님 가정이 맞이하는

이 경악의 과정과 대입시켜

혼란스러운 것은 별 다름 없지만

이들은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고

모든 과정이 선임을 믿고 따르면서

그 과정과정에 자신들이 겪는 두려움 조차

주님께 맡기는 듯한

그 모습을 보며

나의 혼란도 어쩌면...이란 생각이 없지 않다.

두렵고 혼란 스럽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사로잡힐 이유가 없는...

그러면서 '늘 주님의 말씀'에 눈 열어두고

귀를 열어두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

머리 둔하고

마음이 굳은 나에게

주님이 주시는 위로이신 듯하다.

 

아침에 눈이 산더미 처럼 쏟아진다.

그 눈에 눌리는 하루보다는

눈의 또다른 속성

포근함..

내년의 풍년을 쳐다보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연단에 치이기 보다는

그 연단 후 나올 정금을 기대하자.

그 과정을 아는 자다.

그 결론을 아는 자다.

주님이 특별히

매시매시 지도하고 깨닫게 하시고 이끌어 주신다.

 

적용

 

1.  주님은 무조건 선이시다.

 어떤 일이 나에게 벌어져도 주님은 선이싣.

 

2. 두려움도 인정하자.

 나의 두려움.

 그 실체에 대하여 묵상하자.

 그리고 요셉님 가정에도 두려움은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자.

 그리고 그 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3. 기도하자.

 늘 기도하는 내가 되어야 한다

 새해에는 더욱 기도해야 한다.

 새해에는 더욱 발전해야 한다.

 

4. 성경 일곱장 읽겠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당신 예수께서

성육신 하는 그 날 부터

가족적으로 겪는 그 어려움을 보고 있습니다.

주님.

당신의 사랑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요?

주님의 겪으신 고통이

경악스럽기 그지 없으십니다.

그러함에도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뉘앙스는

전혀 주님에 대한 원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뇌리에는

원망이나 부정은 없는 듯합니다.

그저 주님의 뜻이 있으시겠지.. 하는 듯한 모습.

주님은 어쩌시더라도 선이시야..하는 모습 만 보입니다.

그들이 산욕기의 산모의 상태로

갓태어나신 아이 예수님을 엎고 짊어지고

그 더운 먼길을 떠나는

정처없는 유랑의 모습을 보면서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난 내 삶을 돌아봅니다.

아주 적은 두려움도

그 두려움에 파묻히려는

이 어이없는 낮은 신앙의 모습을 봅니다.

주여.

그리하지 않게 하소서.

도우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또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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