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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와 제자 사이(마5:1-12 ) 본문

신약 QT

무리와 제자 사이(마5:1-12 )

주하인 2010. 1. 8. 09:46

 제 5 장 ( Chapter 5, Matthew )

 

주님 앞에

이렇듯

순진하게 좇는

영혼되게 하소서

 

주님

대신

저에게

주님의 달콤한 평강을

아주

조금 만이라도

허락하소서

 

모든 이유가

주님 때문임을

죽도록

이해하게 하소서

끝까지

붙들게 하소서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무리

군중,

육체적 관심과 자기의 문제에만 집중되어

예수님을 좇는 사람 들.

 

 제자

주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고 전파하려는

소명을 가진 자들.

자기 만의 문제보다는

이웃이나 더 큰 가치를 추구하며

그 추구의 이유조차 주님의 뜻에 맡길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

그러나 온전하지 못한

결함이 있는 자들로

보강하고 치유하여 가고 있는 자들.

 

 일단의 무리와 제자들이

하나의 집합체, 즉 공동체로 모여있다.

그들 중 누가 어떠한 자인지는

주님과 자기만이 안다.

무리에 속한 자들은 그런 사실 조차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나

어디에 속해있는가?

 
 
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말씀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 말씀이 자기의 관심이외의 것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 다면 '무리'에 속한 자이고

말씀을 듣고 찔림을 받고 영혼에 흔들림이 있는 자면

'제자' 쪽에 속할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이 제자와 무리 사이에 반드시 확실한 구분이 가능할까?

무리에 속한 자라고 한번씩 찔림은 없을까?

제자라고 백프로 다 찔릴까?

 그 구분과 명확성은 어찌 결정이 되는가?

영혼에 흔들림이 있을 때

주님의 말씀으로 선택하고 받아들이냐

그냥 잊어버리고 마느냐의 선택에 따른다.

 

 입을 열어 가라사대

어느순간 말씀이 꿀처럼 들리고

그 분의 말씀 하나하나가 삶 속에 꽂히어

살아남을 느끼고

그 분의 말씀이 느껴지지 않을 때의 공허함이나 메마름이

견디기 힘들어 질 땐 제자 쪽에 서게 된다.

 

 나

말씀을 사모한다.

오늘 입을 열어 가라사대 라는 구절이 가슴을 두드린다.

그 분이 나에게 조금더 뚜렷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느껴진다면... 이라는

소망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으로 보아

제자 쪽에 가깝다.

아직 제자는 아닐지라도.. ..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하다'

영어로 읽어 보아도 sprit 이 poor하다..라고 나온다.

영이 가난하다는 게 무슨 뜻인가?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져야 한다.

말씀이 갈급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대신 배가 불러 필요성을 잘 못느끼거나

너무 배가 고파 영혼을 신경쓸수 없는 상태는

가난한 상태가 아니다.

 어떤 이유에든 주님의 말씀에 갈급하고 허겁대야 한다.

난 그러하길 원한다.

천국이 내것이다.

지금 삶의 순간순간, 가끔가끔

천국의 평안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내 심령이 가난해서가 맞다.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다.

어떤 이유로서 인가?

주님이 영적으로 애통한 것,

고상한 원리로만 애통한 것을 말씀하시진 않는다.

살다가 겪는 아주..아주 영적이지 않은 이유 - 내가 최근에 받는.... - 로도

주님을 찾아 울 수 만 있다면

내가 고민하지 않고 주님 앞에 내려놓고 울부짖음이 습관화가 되면

그것은 '주님 앞에서 애통'하는 자가 된다.

그런 자

위로를 받을 것이다.

 위로를 받지 못할 것 같은 치졸한 일을 가지고 나가도

주님은 십자가 앞에 나왔다는 사실  만 가지고도 기뻐하신다.

그 분의 위로가 기대된다.

실은 이전보다 훨씬 든든한 고난의 연속이다.

주님이 날 기뻐하심을 느낀다.

주님 앞에서 애통해 하는 날....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내가

가진 위치나 달란트에 비해

솔직히 나에게 주어진 현재의 세상적 복은 좀 덜하다고 생각한다.

내 잘난 체하는 속성에서 나오는 상대적 빈곤감의 이유도 있지만

-실제가 그런 것 맞기는 맞은 것 같다. ㅜ.ㅜ;  -  다양한 이유가 있겠다고는 생각한다.

나에게 재물과 물질이 없음과 부족함은

오히려 영적부요를 가져오시고

그것은 나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훌륭한 중년의 삶을 가져올 기회가 되고있긴 하지만

또하나 '온유하지 못함'이 그러한 부족함의 이유가 될 것이라 생각이 든다.

지금 고난과 조금은 부족함은

내가 온유하게 되길 바라시는 주님의 뜻이실 것이고

그렇다 생각하면

주님 안에서 이 질기디 질긴 급하고 정리되지 못한 성품을

주님의 이름으로 온유하게 바꾸게 되는 순간

난 땅의 축복도 넘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주님은 별개가 없으시다.

영과 육의 축복을 하나로 보신다.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의.

의롭게 살기가 내 목표다.

그 의로움의 방향이 내 주관적이었었음이 문제였지...

주님의 의

이것이 필요하다.

방향을 잘 설정하고 나가야 한다.

이제 2010 년.

그 동안 주님의 '의'의 원리로

내 인격의 흐름을 설정하고 고치어 나가던 시간이었다면

그 의에 목마를 정도로 사모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한다.

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빌미로

내가 칭찬 받고 내가 드러나길 원하는 게 아니고

나는 죽고 하나님의 의만 드러나길 간절히 원하는

무의식적 차원의 의에 주리는 자

무의식적 차원의 의에 목마른 자가 되길 원한다.

그래서 흔들림이 없어지길 원한다.

2010 년.

단순해야 한다.

모든 내 삶의 방향이

주님의 '의' 드러내기 위한 차원이다.

어떤 이유 어떤 자리에서도 말이다.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함.

지난 수십년간 나에게 전혀 없었던 덕목.

예수님을 믿고 이제는 제법 생긴 품성.

이제 새해는 이 긍휼히 여김이

내 온 영혼의 기본 원리가 되길 원한다.

주님이 날 긍휼히 여기시는 그 여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길 원한다.

날 질책하고 날 공격하는 원수조차도

긍휼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 후에 날 위로하고 날 귀하게

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늘 일상에서 체험하고 살기를 원한다.

그 분의 긍휼하게 여기심 만이

내 유일한 관심이 되길 원한다.

 

저..

잘하지요?

주님?

이렇게..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

아직 난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내 속을 들여다 보면

아직도 몇가지 벗어 버리지 못한 죄들이 꿈틀 댄다.

늘 회개할 일이다.

아직도 나를 깊이 사랑하지 못한다.

나 스스로에 대한

타인에 대한 사랑 부족함이 있는 듯하다.

더욱 청결함이 새해에 필요하다.

하나님을 깨끗이 바라본다. ...

주님을 사모하고

천국을 사랑하면서도

기도하면서 뚜렷한 개념화가 이루어지지 못함은

내 마음, 내 영혼이 아직 청결하지 못한 탓일 것 같다.

 내적으로 더욱 순전화가 필요하다.

외적으로 비전과 더욱 뚜렷한 원함이 필요하다.

주님...

절 그리하게 하소서.

주님을 뚜렷이 보도록 더욱 청결히 하소서.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부족한 내 심성.

화평보다는 분란 , 긴장을 가져오는게 

내가 아니던가?

회개할 일이다.

화평을 위하여 더욱 힘쓸일이다.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순교하신 목사님 이야기를 듣고

코끝이 찡하였던 게 얼마 전이다.

그 분이 자청해서 순교하시면서

그 순간에도 흔들림이 없으셨다는 증언을

수개월 만에 '외상 증후군'에서 벗어나신 일행의 증언이었다한다.

가슴이 미어지고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은 아니다.

너무나도 부족한 내가 죄스럽다.

그 분.. 그 순교 목사님은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영적 투쟁을 많이 하셨을까?

그 기간의 성화가 부럽다.

크신 목사님의 순교가 그립다.

나도 그리 되길 바란다.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참으로 부족한 내 심사.

누가 질타하면 순간적으로 튀어나온다.

주님은

주님의 이름으로 받는 핍박에 감사하라 하신다.

나.

큰 것만 주님의 일로 생각해왔고

내 삶에 부딪히는 억울한 것은 여지없이 튀어 나왔다.

아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참는 모든 것이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

모든게 예수님을 위해 참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난 강해지고 주님을 위한 것이 된다.

어떤 핍박과 욕과 거짓과 거슬리는 악한 일도

주님을 생각함으로 참으면 이는 아름답고

그것은 우리에게 '복'을 의미한다.

주님의 복 받는 한해가 되자.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어떠한 일이 와도 기뻐하고 즐거워 하자.

 하늘의 상을 생각함으로 그리하자.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주시는 첫사랑이 놀랍도록 기쁘고 즐겁고 황홀했다.

떠 다니는 것 같았다.

이전의 내 속에 갇혀 있던 때의 그 혼란이

순식간에 정리되고 앞이 환해지는 듯했다.

그래서 그 때 부터 난 주님을 지금껏 사모한다.

그 과정을 돌아보면

철저히 난 내 영적인 평안함

심리적인 안정감

또 차지하는 비율은 적지만

세상적 축복도 염두에 두면서

주님을 잘 믿는 척..했던 것같다.

주님의 평강.

샬롬.

이 샬롬을 위해 난 주님을 좇았다.

주님을 위한다지만

그 안에서는 나를 위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만일 주님이 나에게 평안을 안주셨다해도

난 주님을 따랐을까?

 실족하거나 배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지옥에 간다니 두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그것도 '내 ' 이기주의가 맞다.

난 남들과 다른체 했고

영적인 것 만을 추구하니 조금은 더 선한체 하고 고상한 체 했지만

결국은 그 기본은 '나'였기에

난 무리에 속한 자가 맞았었고 맞다.

지금도 아니라 못한다. 

 

 그렇다면 주님은 이런 나를 알면서도 지금껏 왜 그냥 두셨을까?

무리들은 주님을 배반하기 쉬운

자신들을 위한 거짓 신앙인들이 될 가능성이 많음에도

그 전지전능하신 예수께서 왜 그들을 그냥 두셨을까?

제자들만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들만 가르치시고

그들만 선택하여 천국에 데려가시면 될 것을

왜 그냥 두셨을까?

 

 제자들은 처음부터 제자였는가?

그들의 배움과 그들의 천성이

무리의 대다수들보다 월등히 좋았던가?

아니다.

처음에도 계속 썼지만 이들에게도 무리의 속성이 많다.

유다 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아직은 제자에 속해있지만

결국은 무리의 속성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럼 결국 무엇을 보이시려는 것이던가

 

이렇듯 부족한 게 인간이고

인간은 속성상 제자가 될 자격이 없는 자 이지만

그런 중에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따르려는 '선택'의 기회가 늘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선택하여 영혼에 받아 들이고

삶속에 표출해나가려다 보면

어느새 가치관이 바뀌고

인생이 자신의 것에서

주님을 위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고

그러한 온전한 '중생'

즉, 바뀜을 경험하는 제자들 만이

천국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결점들.

이러한 부족한 점들.

나 밖에 모르는 이러한 어리석음들은

처음 부터 없애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지 않는가?

주님은 이 약점과 결정과 부족한 점들과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겪는

그 회복의 기쁨을 에너지 삼아

주님에게 다가오는 '도구'로 삼으시는 것이시다.

 

그렇다면

난 어떤가?

난 내 영적 심리적 편안감을 주시는 주님에게

더욱 가까이 가려는 노력으로

서서히 내 영혼의 관심이

내 중심에서

하나님의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상태이다.

즉,

무리에 속해있지만

제자를 사모하는 자이다.

아직은...

 그렇다면 이 어리석고 질긴 무리 속의

주하인!

어찌해야 하는가?

이제 새해가 밝아진지 얼마 되지 않았다.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주님이 입을 열어 가라사대 하시니

마음이 흔들린다.

새해에는 더욱 더 주님의 말씀을

영혼에서 깊이 갈구하고 사모하고 흔들리는 지축의 변동이 일어나길 바란다.

그래서 '팔단진복'의 여덟까지 덕목가운데

나에게 많이 부족한 부분들...

더욱 '온유하고 '

더욱 '청결하고'

더욱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과 곤란을 기뻐할 수 있기를 ' 결단한다.

선택한다.

'화평하기 '위하여 주님의 도우심을 깊이 간구할 것이다.

사람들의 질타와 핍박을 기뻐하여야 한다.

 

  주하인.

이제 새로운 한해.

조금은 더 '주님의 제자'로 한걸음 다가가야 한다.

이제 내 속에서 나와

세상을 위해

주님을 위해 더욱 내 가치를 바꾸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으로 그리해야 한다.

 

 

 

 

적용

1.  난 무리에 속해 있다 .

    내 문제 만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들..

   이제 제자의 삶을 사모하자.

   그를 막는 생각들.... "내가 .. 과연?.. " 을 주님께 내려 놓는다.  

   주님이 원하시면 난 된다.    

2.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 

  착해지고 한박자 느려지고 ... 

   주님의 축복을 원하면 착해지자 ^^*

3. 청결한 자.  

   내적인 충일을 위해 더욱 힘쓰자

4.  핍박을 인내하자.

  주님의 원하시는 바다.   

5. 예수님의 말씀하려 일어나심을 체험하길 기도하자.

   주여..기대합니다.  

  입을 열어 말씀하시는 것을 실제적으로 체험하길 원합니다. 

  성령으로 도우소서.  

6.  성경 여덟장 읽겠다.  

7. 모든 문제 주님께 가져간다.  

8. 주님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리라.     

   주님이 주님이시니 따르는 한해가 되자

9. 제가 원하고 주님이 원하시기에.. 가 모든 논리가 되길 원한다.

기도

주님

귀하신 주님.

저 .

아직도 제 문제에 매달립니다.

제문제 때문에 주님을 이용했습니다.

용서하소서.

그렇지만 그것을 들어서

주님은 주님께 다가오도록 하는 도구가 됨도 압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무리에서 제자가 되도록 다구치지 않으시고

철저히 절 맡기고 제 선택에 기대를 거시고 쳐다보시는

주님을 느낍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

주님.

제 아들들도 조금 더 그리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시오소서.

저 초조함...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제 생각이 많이 절 끌려 합니다.

주님의 뜻이시면

어떠한 이유도 없어지길 원합니다 .

그게 제자의 삶의 이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리하게 하소서.

이유가 주님 만이 이유가 되게 하소서.

주님.

온유한자 되길 원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이 제가 온유해져서

남들이 저를 통해 주님 보게 하소서.

저 .. 조금더 인내할 힘을 주시고

핍박과 질타가 올 때 기뻐할 버퍼를 주소서.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주님 때문에 그리하게 하소서.

매 사의 모든 일

기쁜 일 뿐 아니라

어이없는 일 조차

주님의 이유 때문임을 믿게 하시고

그것이 '선'으로 이어질 지 믿게 하소서.

이해가지 않는 것 조차

주님 때문이심을 알게 하시고

그 과정에

주님의 이름을 드러낼

제자로서의 내 정체성을 잊지 않게 하소서.

주님 때문에 참게 하시고

주님 때문에 기도하게 하시고

주님 때문에 기뻐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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