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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 예수~님 하나~니~임 !! (행19:1-19:12)

주하인 2005. 7. 29. 20:02
성령~님 예수~님 하나~니~임 !!

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1. 성령에 대하여

 

성령님...
영어로는 Holy Spirit 님...

어제 부터 이분의 위력에 대하여 잘나온다.

 아볼로라는 뛰어난 인간재원이 한차례 version up (아마도 본인은 이정도로

upgrade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 되는 모습이 나왔다.

은혜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었다.

 12명의 세례자들이 즉각 은사가 나타나는 현실...


오늘은 에베소 지역 위쪽을 (영어로는 interior , 안쪽의, 오지의 ) 다니며

- 바울의 전도에 대한 깊숙한 열정을 볼 수 있다.   마치 사냥꾼이 밀림 숲

속을 샅샅이 흝으며 다니는 것 같은 느낌- 예비된 영혼을 찾아 다녔다.

 

그러다가 딱.. 마주친 사람들이 동시에 12명이다.
이 12이란 단어는 아주 중요한 수이다.
에베소에 서광이 비치는 신호탄이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말을 성령에 대하여 '듣고(5)' 즉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반드시 예수의 이름으로 받아야 '성령'님이 임재하신다.   당연하지만..

 

 그런데... 한가지 걸리는 점이 여기에 있다.

 분명히 이들은 성령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글로는 '성신'으로 번역이 된 '성령'에 대한 언급은 

영어로 Holy spirit이란 표현을 찾아보면  3군데 이상에서 나온다.

 

아래와 같다.

 "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Holy Spirit)을 내

게서 거두지 마소서"

"사 63:10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Holy Spirit)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

"사 63:11  백성이 옛적 모세의 날을 추억하여 가로되 백성과 양 무리의 목

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그들 중에 성신(Holy

Spirit)을 두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

 

 그렇다면 성령에 대하여 분명히 나와 있고, 그렇게 열심히 전 국민이 열정

적으로 성경을 읽는 유대인으로서 "들어보지도 못했다(2)"라는 표현은 어찌

가능할까?
 
 2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우선 첫째는 그들이 무식하거나 공부를 게을리한 편에 속한다는 추정이다.
둘째로는 '하나님의 뜻'이다.

 

 개인적으로 두번째가 너무나도 합당하다.

 

 첫번째는 12명이란 영적 갈급자-세례 요한 세례까지 알 정도-가 구약 공부

를 게을리 할 일이 없을 것이며 , 구약 어디에도 성령에 대하여 제대로 인지

하고 도움을 받은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성령'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잠시 세상에 관여를 안하셨을 뿐 ~

거대한 하나님의 예정된 프로그램하에 작동(^^;;) 하셨다고 추정할 수 있다.

즉, 앞서 인용한 3구절을 통하여 성령님은 계속 존재하셨던 존재였으며 다윗

이나 대선지자인 이사야 같은 분들에게만 당신의 존재를 아주 약간 보여 주

신 것이시다.
그 사람들도 스치고 지나갔을 뿐 아직 때가 아님으로 인하여 더 이상의 관심

은 둘 여지가 없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 사건, 그리고 부활 하시고 승천 하신 후

~~~~
 일정기간의 자기 성찰 기간을 사도들에게 허락하신 후 본격적으로 세상에

관여 하시기 시작하신 것이시다.

 

 너무나 뚜렷한 행로이다.

 

 아동의 보호자 같이,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를 통해 일일이 지도하고 경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의 사사로운 이용으로 끝없이 악해져가는 인간들을 주님은 보시다 못해 대 결단을 내리셔서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리고 그분으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상처', 원죄로 인한 거부할 수 없

는 죄의 유혹으로 인한 실족 등을 골고다 언덕으로 짊어 지고 가셨다.

그런 후 그 모진 고통- 육적, 심적-을 감내하신 후 그 분은 십자가에 못 박

혀 돌아가셨다.

 

 3일 후 ..

 부활하심을 통하여 믿는 모든 자들에게 '십자가'를 통하여 천국에 들어갈

기회를 만들어 놓으셨다.


 믿기만 하면 이전에 지은 모든 죄를 다 없이 하시는 것.
그리고 새로운 정결해진 마음과 영혼과 몸으로 주님에게 다가갈 기회를 허락

하신 것 !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면 또다시 구약과 다른게 무엇이란 말인가?

완악한 인간의 심성은 또다시 구렁텅이에 들어갈 것은 너무나 뻔한 사실이다.

        

 그래서 세심한 주님은 또다른 안전 장치(^^;;) 인 '성령'님을 보내신 것이

다.

 예수님 이름을 믿기만 하면 속죄시켜 주시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온갖 달

란트를 촉발 시키시는 것이시다.
 은혜를 허락하시고 지혜도 주시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그 분을 의지하여 순간 순간 지은 죄를 매일 번제로 드리기를 도와주시는

것이시며, 혹시 우리가 나태하고 더러워서 주님의 은공을 잊을 까봐 신기로

운 현상을 주시며 도와주시는 것이시다.
보혜사란 이름이 별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편하고 완벽히 갖추어진 '구원의 씨스템'에도 불구하고 들을 귀가 없

는 자들은 3개월(8절)의 회당 강론에 의한 기회를 과감히 발로 찼다.

 귀를 주시고 듣게 해주시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은혜인가?
이것을 보며 난 소름이 콱 끼쳤다.

 주님이 날 막으셔서 이리 쉬운 구원의 길을 못오게 하셨으면 어찌할까?
저기 보이는 저 유대인들의 강폭함이 바로 내 모습이 아닐까?
아직도 세상에 머물며 온갖 자신의 지략과 용모와 늘어가는 주름을 무시한

정력을 위해 세상의 보화를 찾아다니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잊으려고 안절 부절

못하면서 혈압을 올리고 있었을 줄 모른다.
아님 마취되려고 술을 진탕먹고 육적인 쾌락을 따라 방종하며 어느 골방에

뒹굴 거리고 있을 줄도........

오늘 에베소 전도 장면을 보면서 ... 주님의 대단하신 사랑과 완벽한 준비에

또다시 머리가 숙여진다.


 2. 적용

 

1) 성령 충만을 사모하자.

 

2) 주님께 감사하자.

 

3) 전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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