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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가 그자다(눅 8:26-39 )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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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가 그자다(눅 8:26-39 )

주하인 2008. 1. 27. 09:35

제 8 장 ( Chapter 8, Luke ) 

 이런 곳이

그런 곳이다.

우리 영혼에도

이런

무덤 가나

귀신 즐길 사당은 없는가?

 

 

 

 
27.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무덤

죽음

죽은 자들의 묻혀 있는 곳

어두움

희망없음

 거기에 거하는 자 .

희망없는 자

암담한 자

어두운 자

....
 
28.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모든 게 괴로운 자.

도움 마져 가망없이 괴로운 자.

끝.

한톨 힘이 없음

지옥에서 사는 삶
 

 

32.  마침 거기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하신대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

       하거늘 
 요기에 올 때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궁금하였다.

이 군대 마귀 들이

분명코 원해서 돼지에게 들어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 모른단 말인가?

 

 아마도

이것은 몇가지를 보여주는 것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나는

주님 예수님의 엄청난 신위(神威)다.

그 카리스마에 견디지 못하는 귀신들이

자신도 모르게 헛소리 하는 것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이성을 상실하고

쥐로 따지면 고양이 앞에 선 것이다.

나름대로 앞일을 '귀신처럼'아는 '귀신'들이

바보와 같이 할 일을 몰라 허둥지둥하는 이유다.

긴장을 하고

안절 부절 못하는 불안의 지경이 폭팔할 즈음에 오면

자신도 모르게 헛소릴 내뱉는 것이다.

 

 그리고는

또 하나의 보이고 싶으신 것이

돼지 떼 들이

일순간에 벼락 맞은 듯 놀라서

강물에 뛰어들 정도로

거짓의 영들

사단의 영들은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단 몇초도 견디지 못하고

폭팔적인 행동을 집단으로 보이는

이 돼지떼의 고통을

한 인간이 버티기에는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가 무덤에 살고

실성하여 안절 부절 못하는 심사가

이해가 가지 않는가?

 눈 앞에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이성의 근거로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이런

거짓과 사단의 영들에게

자신을 내어 맡기는 가능성이 생긴는 것이다.

돼지들은 하나 만 들어가도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귀신을

이 사람은 군대 귀신 들어가도 아직은 죽지 않았을 만큼

인간은 돼지 보다는

버퍼링이 비록 크다 할지라도

그 삶이 살이 되겠는가?

이제 앞으로

그 인생이 얼마나 점차로

무덤 근처의 삶이 될 것인가 짐작이 가지 않는가?

비록 경중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주님을 멀리하는 삶은

무덤의 삶이 예상되는 삶이 될 가능성과 개연성이 너무나 다양하다는 이야기다.

 늘

주님을 잊지 않고 살아야할 이유다.
  

 

35.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 아래 앉은 것을

 고통이 큰 만큼

은혜도 크다.

죄가 큰 만큼

죄사함의 개운함이 크다.

무덤에서 벗어나

천국에 온 자가 이 자다.

그 자는

너무나도 개운하다.

사우나에서 금방 나온 사람과 같이 개운하다.

그 개운함으로

다시 표현하면

그 평강으로

그는

예수님의 발 아래

조신하게 앉아 있다.

 발 아래 앉아 있다.

엉터리가

사리에 밝은 자로 변한다.

주님의 은혜 만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

 

 엊저녁

병원 리더 그룹들과

인천의 신도의 한 펜션에서 '워크샵'을 가지고 왔다.

기독병원의 살아가야할 방향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중 모두를 장식한

의료 원장님의

기독병원이 선택하는 길이란 내용에서

'교회적 성향이 우선하는 병원'

' 경제적 이윤추구 하는 병원'

'통합적 추구하는 병원'의

세 모델이 앞으로 선택하여 나갈 수 밖에 없는

방향이라신다.

 교회적 성향,

즉 믿음으로 모든 것 해나가는 것은 이상적이고 주님이 바라시긴 하지만

현실에서 괴리가 있을 수 있다.

세상적 추구는 기독병원의 정체성 상실의 위험이 있다.

 통합적 모델이 당연히 나가야 할 방향이다.

하지만

세상과 성령이 양립할 수 있단 말인가?
경영과 주님 기뻐하심이 어찌 양립할 수 있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보아온

샘병원의 발전은

최소한 내 보기엔 '통합적 모델'이다.

 문제는 이후다.

통합의 모델이 유지가 되기 위해서는

오늘 보이는

귀신 들렸던 자의 해방의

그 통쾌함과 샬롬이

끝까지 유지가 되어야 한다.

그 통쾌함이 모든 자들에게 골고루 펼쳐져야 한다.

 

 주님을 기뻐하는 이 영감(Inspiration) 이 절절히 온 병원에 넘쳐야 하고

리더들은 이 영감을 바탕으로 직원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영감과 감동의 흐름 만이

지금 너무나 힘든 과정에서

샘 안양 병원이 군소병원의 약점을 딛고

마구 성장할 원동력이 되었고

그것은

인간의 주님에 대한 열정과

주님의 때가

절묘히 들어 맞아 이루어진 결과이었고

앞으로 더욱 주님께서 그 때를 느슨히 하지 않으실 것임을 이야기 햇다.

 

39.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귀신에서 해방된 자는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가야한다.

일상에 들어가서

주님이 우리 들에게 어떻게 행하셨는가를 알려야 한다 .

내 변한 모습이

주님의 살아계신 증거임을 설파해야 한다.

그게 그냥이 아니고

낱낱이 고해야 한다 .

난 찬양으로 조금더 뜨겁게 남들에게 전하고

말씀의 은사가 있으신 분은 말씀으로

사랑의 은사가 있으신 분은 그렇게..

주님의 은혜를 전하기 위해서는

전함 받는 자들에게

더욱 친절해야 한다.

그 친절함이

주님이 주시는 그 통렬한 해방감으로

그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환자들 말이다.

내 이웃 말이다.

그게 주님이 원하시는 '감동'이고

내가 그들에게 전할 인간적 감동이다.

 

 그래서

그 중 몇은

주님의 감동을 전해 받아

그 무덤의 삶에서 빠져 나와

다시 우리가 예전에 했던

주님 발 앞에 머무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게

그들로 하여

또 다른 무덤의 삶에서 깨우는

주님의 전령이 되게 할지 어떻게 아는가?

 

 

 

적용

 

예배 열심히 드리겠다.

 

해방감과 샬롬을 전한다.

 

 

기도

 

감사합니다.

주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

감사

감사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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