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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결심[마 7:13 - 7:20]

주하인 2014. 2. 1. 09:28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시험공부와 주일 예배.

여행지에서의 재미와 예배

명절 차례와 묵도

........

 

넓은 문과 좁은 문.

 

때로 아주 쉽게 구분할 수 있어도

사람에 따라서 지키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

특별히 설 명절.

믿지 않는 형제 친척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차례'를 지낼 때

우상임을 알고 절을 하지 않는 것도 '좁은 문'의 통과의례일 수도 있다.

얼마나 많은 핍박을 물리쳐야만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던가?

하지만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시 될 때도 그게 '좁은 문'일까?

 '멋~지게 ' 손해를 각오하면서도 '예배'를 우선시 함은

정말 좁은 문의 선택이긴 하지만

그것이 과연 늘 '좁은 문'이 맞을까?

율법적 성향이 강해서 자신의 의로 칼같이 자르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목숨 걸고 가치를 지켜나가다가 목숨을 잃는 '순교'자에게

반드시 좁은 길이었을까?

혹, 자포자기나 멋진 자기 비젼의 이룸은 아닐까?

''''''

 

좁은 문과 넓은 문에 대하여 나온다.

당연히도 위의 예는 세상 凡人인 우리 같은 자와 비교할 때는

'좁은 문'인 게 당연하다.

그러나, 잠깐 비틀어본 생각처럼

때로는 '좁은 문'이 아니고 강한 성품이나 율법적 성향 탓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닐 때 조차

'좁은 문'이라 할 수 있으까?

정말 열심히 하나님의 구령의 열정으로 불타서 나가지만

시간이 지나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수준에 맞추지 못하여 나타난 결과도

좁은 문이라 할 수 있을까?

즉, 좁은 문이 되기 위하여서는

'성장'에 따른 다른 기준이 있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이들어도 똑같은 행동을 요구하는게 아니지 않던가?

그러기에 좁은 문이란 개념은 그리 단순하고 일차원적이지 않다.

물론 세상의 가치에 반하는

눈에 보이는 '커트라인'에 넘어서는 행위는

그들에게 모범이 되는 어느 정도의 자극으로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 기준을 '열매'라는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으시다.

 문제는..

열매가 세상이 아는 열매와 '하나님과 나 만이 아는 ' 열매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일 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좁은 문'을 갈 수있다는 말인가?

'생명'과 관계되는 지 안되는 지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기쁨'이 전제되어야 한다.

순교를 하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구원'의 열정으로 목숨을 바치어야

좁은 길을 가는 자다.

모든 시간적, 금전적 이들을 포기하고 주일 성수를 한다해도

주님의 기쁨으로 가슴이 설레이면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한 사람들에게는 .. .

어릴 때는 그 행동 자체만으로도 박수치고 갈채를 받지만..

 성장한 자들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자들..

은혜의 깊이를 아는 자들.

그러함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나를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임을 깨달은 자들이다.

그들에게 ' 생명'이 전제되기에 '좁은 문'을 갈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의무가 아니고

기쁨을 위하여 선택하는 좁은 길이란 이야기다.

그때는 세상의 유혹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이 좋아서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곁으로 갈 결단을 하는 것이다 .

 

특별히

최근 몇년 동안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다.

아무리 곤란한 지역이라도 반드시 ' 예배'의 시간을 교회에서 드리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부부에게는 확고부동한 무언의 약속이었다.

쉽게 '스마트 폰'으로 방에 앉아서 눈꼽떼고 경건한 시간을 보낼 수는 있을 듯도 하지만

그것, 아직은 우리에게는 버거운 일이다.

왜?

하나님 앞에 처음에는 죄송해서 그랬지만

나중엔 그게 가장 기쁜 행동임을 알아서 였다.

 솔직히, 수년간 어디를 여행을 가도 우선 교회를 먼저 찾아

그곳을 중심으로 여행의 루트를 다시 짜곤 했다.

그러기에 일반 '자유 여행' , "꽃보다 할배.. ' 등의 프로그램보다 

조금은 여행경로 짜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몇날 며칠을 더 고민하고 경비계산, 시간 계산, 아까운 풍광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 .이 더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늘 다녀오면 예배의 장소에서 얻는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한번도 은혜되지 않은 '설교'가 없었다. 

정말이다. 

그리고 그 교회를 다녀오는 것 자체가 세상의 투어 프로그램에서 주지 못하는

세밀한 깨알 재미를 주는 것도 사실이었다는 이야기다. 

'꽃보다 부부' ㅎㅎ  여행 을 하나님은 그렇게 그렇게 우리에게 주셨다.

 

그렇다.

꼭 좁은 문이라고 해서

순교자나 연상하고 다 떨어진 옷과 석청 메뚜기만 먹고 사는

'수도자'의 그것을 연상하는 것은 괜한 오해일 수 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옛날 , 수련의 시절 '마취과장님'께서 청빈한 학자의 모습 그대로며

자전거 타고 다니신다해서

그분을 존경하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딱딱함이 그리 다가가기 쉽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원튼 원치 않든 ,

난 점점 소유의 집착을 내려 놓는 훈련을 시키시며

'13년된 중고차'를 팔아 그 가격 그대로 지금의 괜찮은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자전거가 얼마나 잘나가는 지

언덕을 올라갈 때도 걸어가는 것 보다 힘이 덜들고

구름위를 나는 것 같은 재미도 느껴진다.   때로..ㅎ

그런데 자전거 타고 다닌다니

아침마다 마주치는 직원들이 날 보는 눈이

옛날 내가 마취과장님 보는 그 '존경할 만한 거북함' 정도의

청빈과 고난의 절제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보인다. ^^;;

다 .. 대단하다고 하는 것을 미루어 보아서...ㅎ

 

좁은 문.

그 길을 간다고 할 때

많은 분들은 이해조차 못할 것이고

개념조차 없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마 , 세속에 어울려 '노후 대비' , 이재 , 성공.. 등의 대열에 참가하지 못한 나를

어쩌면, '미쳤다'고 하거나 ' 시대 착오적'이란 공격을 할 분도

없지 않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늘 이 블로그의 타켓으로 삼는 "선택받은 소수" 분들께서는 끄덕일  수도 있을 것이나

대부분 그들도 '결단'과 의지를 선택해야할 고난의 길 쯤 만으로 생각하실 수 있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자전거 이야기와 '여행의 예배 준수'를 예로 들었지만

결코 '좁은 길'은 험난하고 어려움 뿐은 아니다.

괴로움과 인내를 통해 '세상의 거'는 손해보는 것은 아니란 이야기다.

손해, 이익?

실은 그 부분 마져 하나님이 결정하시지 않던가?

솔직히 물질은 하나님의 영과는 양립할 수는 없고

물질이 늘면 영적으로 게스므레 ^^;; 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어느정도 연습할 때는 하나님께서도 물질의 풍요는 충분히 주시지 않으실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자유로 하나님과 동행이 가능한 자에게는

타인을 위해서, 예를 들면 그 직장의 취직하는 자들을 위해서라도 주시진 않으실까?

늘 . 성경과 책을 통하여

'수도적' 길을 가는 '사도적' 사람들에게만 포커싱되어서이지

만일 그들에게만 하나님의 뜻을 국한 시킨다면

세상은 '수도자'나 '순교자',

소위 검은 양복에 어두운 넥타이를 메고 거룩거룩.. .하는 외적 목회자 스타일의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넓은 길' 가는 거의 대다수의 평범한 두 부류가 세상에 존재하다가

그 '거~룩한' 분들만 천국 높은 자리에 간다는 이야기 여서

우리 같이 평범한 삶의 '믿는 자'들은 관심 밖의 이야기고

영적인 ' 귀족'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던가?

 

 아니기에 우리는 일상에서 '삶 속의 영성'을 추구해야할 당위성이 생겨난다.

매일 좁은 문을 가야 한다.

그길은 '생명'의 길이기에 그렇다 .

녹색의 자연, 그 생명력을 간접적으로 보아도

생명의 위대함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말씀으로 온 우주를 만드시고

그 우주, 수천 조개의 행성을 운행하시며 조절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좁은 문'을 선택하고 결심함으로

당신 하나님을 늘 개념을 두고 생활하겠다는

코람데오의 결심이 얼마나 대단한 '생명'의 결심이 얼마나 당연하고 귀한 일인지 알 수있다.

 

누구나 갈수 있지만

누구나 가기는 어려운길.

 

그 길은 '어려운 결단'이고 외로운 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만으로 기뻐지고

그 분이 세상의 것을 다 주장하심을 믿기로 결심하고 결단하고 의뢰하기만 한다면

그 분은 내 일생을 가장 힘있고 의미있는 삶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늘 도전이 따른다 .

매일 그렇다 .

아니다 .

매 시 매초 그렇다.

원죄적 성품은 '사단의 할큄'에 너무나 취약하다.

내 생각처럼 나를 파고 들어

내 좌절을 위한 딴지를 계속 걸어댄다.

 

그래서 '말씀이 필요하다 .'

주님은 '열매'를 통하여 내 좁은 길을 가는 걸음 걸음을 '게이지'처럼 보라신다 .

그렇다.

내가 어제와 무엇이 달라졌던가?

아니면 어제와 비교해서 '혹' 改惡을 하지는 않았던가?

그 열매를 보면서 짐작하고 알 수 있는 것이다.

 

나.

아버지.

세상에서 , 아니 과거의 가치 기준으로

내가 누려야 할 '아버지로서의 위상'이 있고

그러지 못하게 만드는 현대의 당연한 '여권신장'과 '신세대의 권위'에 대한 도전에 ..

현실적으로 그들이 나에게 독립하지도 못하면서 그러는 ..ㅎ... 삼중적 갈등을 바라보며

내 속에는 열불이 날 때가 많았다 .

특별히 그렇듯 '차분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내 안에 모범적 아버지 상이 별로 없었다.

아내 덕에 하나님 믿고 많은 투쟁을 열렬히 거치면서

내 안의 가치를

하나님의 가치로 바꾸어 가긴 했지만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옛 구습들과 ,그로 인한 과거의 아픔들은

가족 간에 '내 바램'보다는 부족한 '현상'들이 아직은 존재한다.

힘들지만, 걸어가야 할 길을 선택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버릇대로 살아가고픈 충동과의 매일 싸움을 요구한다.

그러니..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힘든데

이것 저것.... 아이구.. .

나이들어간다는 것은 버거운 일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좁은 길'을 말씀하시고 '열매'를 말씀하신다.

그래서 나를 열매에 맞추어 돌아본다.

이전보다는 많이...

그래서 말씀대로 잘...

그러나 아직도 남아 있는... 을 ... 덜 힘들어 한다.

 

그렇다.

난.. 부정의 눈으로 보면 아직도 그러할 수는 있지만

내 나름대로 난 '좁은 문'을 붙들고 있다.

싸우고 있다.

그 문을 통과하여 걸어가고 있는 중이라서 힘이 들긴하다.

하나,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매일 이렇듯 말씀을 정리해도 남아 있는 글材가 있게 하심을 보아도

난 힘을 내야 한다.

 

감사하다.

 

주님.

오늘 당직입니다.

내일까지 그렇습니다 .

다행이도 한 분은 가벼히 분만을 하고 다시 왔습니다.

명절이라서인지 없을 줄 알았던 환우분들이 많습니다 .

오래 참아서 생기는 비뇨기 병 ^^;; 으로 많이들 옵니다.

산모님들이 힘들어서인지 출혈로도 그렇습니다 .

그래서 얼른 얼른 정리를 못하고 이제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내주여.

좁은 길.. .좁은 문 생각하면서

모든 어려운 외적일들을 가벼히 생각하고 있으려 합니다.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어려움'들이 지금의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주여.

무슨 말이지 잘 아시리라 압니다.

그러나, 과정을 주님을 생각함으로 '은혜'를 힘입어 나갑니다.

주여.

부디 과정 중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도움을 주시사

좋은 열매를 맺는

 

 

 주님.

너무 바쁜 하루 입니다.

블로그 완성하지도 못하고 분만 때문에 불려갔다가

본원에 수술있어서 왔다가

환우분 진찰대에 올려 놓고는 또 여성병원에 응급 분만으로 달려갔다오고.......

그래서 위 기도문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주여.

덕분에 하루를 되돌아 봅니다.

내 삶속에서 오늘 좁은 길 갈 기회가 있었나?

예.

환우분 진찰 대에 놓고 뒤돌아 정신없이 택시타고 왔더니

초응급은 아니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려 했었지만

그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으로 전 저를 낮추었씁니다.

말씀 묵상의 결과가 조금씩 저에게 나옵니다.

의사들.

특히 남이 영역을 침범하기 어려운 specialist로서 나이들어간다는 것든

자만감과 함부로 하고픈 마음의 커지는 기회가 많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근거로

조금 좁은 문을 선택했습니다

금방 마음이 좋아지고

그들 간호사들에게 '수고했음'을 토닥거려주는 부드러움으로

제 마음이 변해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주여.

이 시간 이후도

그리 지키시옵소서.

우리 주님을 생각함으로 '좁은 문'을 매사에 선택하여

생명의 열매를

내 안에서 자꾸 키울 수 있길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내주님이시여.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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