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내 마음 두어야 할 곳[마6:19-34] 본문

신약 QT

내 마음 두어야 할 곳[마6:19-34]

주하인 2014. 1. 30. 08:37

내 마음 갈대같아

바람 조금만 불어도

어지럽기 그지없으나

 

나 바라보는 곳 하늘이고

붙들려 애쓰는 것 말씀이니

 

어느새 내 움직임은

주를 향한 춤사위요

볼품없는 내 자태는

순결하기 그지없는

흰 갈대의 그것 닮아 있다

 

이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뚜렷히

난 느낀다

 

난 흐름 안에 있다

우주의 흐름 안에 서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안에

내가 서 있다

 

 참으로 감사하다

그러함이 알아짐이

더욱 그렇다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재물을 풀어서 하늘 살 땅이나 집을 마련하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돈 풀어 세상을 구제하면 천국의 높은 자리 차지할 거라는 계산도 아니다.

 

'가치'다.

어디에 삶의 목적을 두어야 하는 문제다.

하늘을 바라보고 세상을 열심히 살다보면

어느새 욕심은 사라지고

하늘의 기쁨이 날 사로잡게 된다는 이야기시다.

하늘의 기쁨이란 무엇인가?

 

 하루에도 수억개씩 생긴다는 '별'

은하수에만 수조개의 행성이 있다는데

그 은하수가 또 수조개..

하나님 나라의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능력,

그 에너지의 응축의 표현.

"하늘"

하나님의 그 어마어마하신 능력,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그 에너지가

성령을 타고 (양자역학적 이해 ~!. 내가 코끼리 다리 만지듯 이해하는 ... ^^;)

십자가 구원의 흔적이 있는 사람의 '영'

그 중의 하나인 나, 주하인의 영에 들어오게 되면

난 과연 어찌 될것인가?

당연히도 감전된 자 각종 몸의 변화가 순식간에 일어나듯,

영혼의 달란트 들이 깨어나고

심령의 폭은 한없이 넓어지지 않겠는가?

 난.. 이 땅에 있지만 하늘에 사는 자가 되게 된다

'하늘의 가치'를 따르기 위한 노력.

 

 하늘에 가치를 두고 사는 자는

땅의 것은 허락 받아 사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있고 없고는 주님이 허락하신다.

그러기에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땅으로 표현되는 '내 소유'의 모든 것을 아까워하기보다는

흐름 가운데 - 반드시 다 털어주고 무소유를 내가 실천한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허락 가운데.. 다. - 자연스레이 마응을 내려 놓다 보면

우리는 점차 하늘에 살게 된다.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문제

이 땅에 살면서 하늘을 사는 것.

그것은 '하나님과의 매일 교통'을 통해

상황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영이 허락하시는 대로

쾌척하기도 안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

때로는 내 자아의 만족으로 다 던져 버릴 수도

막아서기도 한다.

그러기에 깨어 있음이 중요하다.

매일 깨어 있음.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흐름'.

 

그러기에 '말씀 묵상'이 중요하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그러다 보면 하나님의 영이 깊이 충만하게 되며

점차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된다.

 

그렇다면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때로 더 가까워지기 위하여 결단을 필요하게 하실 때가 있다.

그런 결단이다.

오늘 나에게 원하시는 하늘을 위한 결단은 무엇인가?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두 주인이라 함은

땅과 하늘의 가치..다.

그 가치는 내 마음의 싸움이다.

어느 것을 중요시 할 것인가는 당연하다.

하늘이다.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다.

 

그런데, 당연히도 인간은 원죄적 죄성으로

육신을 가지고 이땅을 사는 자들이 '땅의 것'을 벗어나기 쉬울까?

불가능하다.

수없이 많은 옛 '도인'들과 '중'들과 '학자'들과....들..들..들이

그를 위하여 갖은 방법을 취했으나

죄로부터 자유로운,

이 땅의 소욕으로 부터 완전히 벗어난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 겸손은 이루었다 생각되는 순간이 가장 큰 교만의 순간'이라한다.

사람은 율법과 방임의 양 지옥을 사이에 둔 절벽의 줄타기라 한다.

절대로 인간은 혼자 그럴 수 없다.

아..

그러함을 깨달음 만도 기적이다.

극히 소수다.

그 중에서도 '좁은 길'을 결단함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수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천국은 누구에나 열려 있되 누구나 다 들어가고

누구나 다 하나님 보좌 곁으로 가기 힘든 것이다.

 

그 이유가...

두 주인이 평생, 이 땅에 살 동안 순종을 자극할 것이기에 그렇다.

그것을 통하여

진정한 주인이 결단하여 온전히 돌아서길 권유하시는 것이시다.

진정한 주인이신 내 하나님.

그 분께서 인생을 허락하신 이유시다.

그것을 통해 비록 결점덩어리 원죄의 인간들이

하나님 당신을 선택하고 그 분께 온전히 순종하는, 성화된 영혼을 보시고자 하시는...

그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인생의 유일한 이유 아니던가?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염려?
염려는 갈등에서 나온다.

갈등은 두 마음의 싸움에서 나온다.

'땅의 것, 재물과 자식들의 성공과 경제와....그를 통한 자기 살아 있음을 확인키 위한.. 육신적 욕망'과

' 하늘의 것,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사는 , 그래서 주시는 기쁨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과의 충돌.

아..

그것은 '믿는 자'들 만의 '행운'일 수 있다.

오직 육신적 갈등 만은 왜 없으랴?

불신의 가련한 지옥백성들에게선...

 

사는 누구에게나 '염려'는 필연이다.

 

이제 하나님은 오늘 세 마디의 말씀을 엵으신다.

살며서 '염려'가 없는 삶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염려가 없는 삶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

인간들..누구나 원하는 바램의 근본이 아닌가?

특별히 '복'.. 복..복 하는 한국인들..

하지만 그 행복은 절대로 두 가치가 마주해서는 이루어질 수없다.

오직 '한 주인' ,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 만을

내 구주로 모실 때만이 시작될 수 있다.

그 분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은 '하늘의 가치'를 이 땅에서 추구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다 버리라는 이야기는 어느 '도'에서도 다 한다.

그게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교통'하는 과정에서

말씀을 통하여 상황을 통하여..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그 분의 명령이라 생각되는 때가 있을 때

과감히 준행하는 것을 이야기 한다.

때로는 '이삭을 포기하는 아브라함의 아픔'까지 있을 수 있겠으나

이 땅의 정말 적은 벌레 같은 -성경적 표현 ㅎ- 우리에게 까지 그럴까?

그러셔도 그러시다면 믿음의 분량이 되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면 오히려 행복 아닐까?

 

그렇다.

진정한 행복은

하늘에 마음을 두는 것이다.

 

이제 명절이라서 사람들이 많이 움직인다.

과정에서 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시댁과 친정 사이에서 울분을 터뜨리게 될 것이고

부모와 자식은 수백년에 걸쳐서 그랬듯

또 해답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 하고

그 사이에 효라는 가치를 통해 옳고 그르고 못하고 잘하고 웃고 울고 .. .많은

심리적 밀고 당김이 되풀이 될 것이고

개중에 성공하지 못하고 성공한 형제들 사이에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와 더불어

피곤, 술과 옳지 않은 육적 부대낌으로 뒤범벅이 되며

그 사이를 '잡귀'들이 날아다니며

명절 음식 같은 명절 '영'들의 썩음을 빨아 당길 것이다.

 

우리 믿는 자 들이 해야할 것.

하늘의 가치를 바라보아야 한다.

 

나.

당직이고 몇가지 사정이있어서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한편 편하기도 하지만,

외로우려도 한다.

내일 자식들과 떡국 한그릇 나누고 세배할 것임에도

다른 행로를 겪는 나의 내부는 자주 겪는 갈등 들이 있따.

그것.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자의 마음 가짐에 대하여

아침 일찍이 눈 뜨게 하셔서 묵상하게 하시고

정리되게 하신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나 .. 지금 행복하다.

 

 

주님.

놀라우신 내 하나님.

마음이 좋습니다.

어느새 , 내 행실은 그리해오지 못했으나

주님의 사랑 만으로

하늘을 지향하는 자의 영혼 상태가 되게 하십니다.

주여.

그래서 감사합니다.

마치 사진의 갈대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지나치는 누구에게도 그리 귀히 여김을 받을 존재가 아닐 것임에도

하늘을 배경으로

내리 쬐시는 햇빛 아래에서

다리 위의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새 그 흰색의 모습이 청순과 성결로 보이고

그들의 촛점 잡히지 못하도록 움직이는 몸사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몸찬양으로 보이며

움직임의 역동성이 '우주의 에너지'로 느끼게 합니다.

참 놀랍습니다.

제 눈을 통해서 들어온 '순간 스틸'의 아름다움이

이런 깨달음을 순간 응축 시켜서 그러신 거군요.

사진 마져 주님이 찍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심이군요.

감사합니다

내 주님이시여.

고백합니다.

지금껏 살아온게 다 주님의 은혜 뿐이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것도 다 주님의 은혜로 가능할 것임을 믿어갑니다.

믿어집니다.

주여.

걱정과 염려를 그래서 내려 놓습니다.

기도와 묵상 중에

이전에 해왔던 갈등과 염려들이 아주 아주 많이 사라져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는 감사하고 있었씁니다.

주여.

그렇습니다.

동일한 상황...아니 나이가 훨씬 더 들어 동일한 상황이라면

전 지금쯤 심장박동이 터지는 듯 뛰고

머리가 아프고 숨이 답답하였을 수도 있을 상황입니다.

하지만.. 아님을 주님이 말씀으로 확인시켜주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시한번 느끼고 감사합니다.

 

온 우주를 만드시고 운행하시고 계획해 가시는 주님께

이 지구의 , 한국의 , 안양의 횡행하는 '사단'의 졸개들의 명절은

도전이 되지 않을 일임을 알지만

깨닫지 못하고 흔들릴,

특별히 주님을 믿는 자들의 안타까움은 없길 기도합니다.

부디 모든 자들이 염려할 것에서 자유로와 지길 기도합니다.

그들이 염려함은 하나님의 이유로 갈등함을 깨닫길 원합니다

그래서 더 주님을 사모하는 계기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특별히 이 블로그 통해

단 한분이라도 더.. 주님을 깊이 알아가

주님께 영광이 올려지는 계기가 되길 원하나이다.

내 주여.

우리 가족 , 특별히 붙드소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집, 지붕 밑에 가족의 이름을 걸고 있는

내 아들들, 내 아내 .. 특별히 더 화목하게 하소서.

염려 없고

주님의 복으로 더욱 크게 하소서.

제 부족함은 주님의 성령으로 다 마무리 하시고 붙드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 QT'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필요한 믿음[마8:1-13]   (0) 2014.02.03
생명의 결심[마 7:13 - 7:20]   (0) 2014.02.01
이렇게 그렇게[마6:1-18]   (0) 2014.01.29
대적 함의 진실[마5:33-48]   (0) 2014.01.28
그리 하라시니[마 5:21-32]   (0) 2014.01.27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