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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부활 ( 행 4:1-12 )

주하인 2011. 8. 23. 11:28

제 4 장 ( Chapter 4, Acts )

 

들어가고 나가는 것

죽고 사는 것

 

모두 내 결심에 따라 달렸다

 

믿음을 굳게 선택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면

부활로 살아 나겠지만

 

내 자아의 움직임에

충실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그것은

비전없는 죽음의 길이 되고야 만다

 


 

2.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죽은 자'

' 부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그 도를 싫어함.

 

 나의 죽은 부분.

무엇이 있을 것인가?

잠시 돌아본다.

어느새인가 '비평' 이 내 마음에 많이 들어와 있다.

어느새인가 '서운함'이 자리 잡고

열심히던 주님 말씀의 사모가 그냥 그냥 흘러간다.

절절히 말씀 가운데 적용하고 느끼던 열심이 죽었다.

타인에 대한 긍휼한 마음을 사모함이 줄었다.

그냥 그럭 저럭 하루 하루 보내고 있는 듯 하다.

어쩌면 그게 모든 일 하나님의 선한 과정에 있음을 인정하며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 흘러 가는 것일 수도 있다 .

문제는 ... 죽어가는 것과 구분이 안가는 것이다.

혹여.........그렇지는 않은가?

 

 '부활'

이 단어를 보면서 심장이 두근거리려 한다.

주님의 생명력.

온우주의 운행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그 생명력.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성령께서 내 영혼을 인치신 후

늘 하나님의  그 생명으로 '주유' 받고 있는 상황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영혼의 상태가 아니던가?

그러나, 영혼에 어두운 부분이 커지면 그것은 죽어가는 것이다.

이제 다시 '죽은 자의 부활' 을 내 영혼에 이루어야 한다.

 부활을 전하는 도가 복음이다.

그 복음을 다시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어야 한다.

미움은 사라지고 사랑으로 남아야 한다.

사람의 행동은 구분하되 사람은 사랑해야 한다.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주님의 성령으로 그래야 한다.

그게 다시 부활하는 일이다.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충만해야 함은 사모함이 전제가 된다.

순서가 올바라야 한다.

세상일을 먼저하고 그 분의 말씀을 생각하고 들으려 함은 옳지 않다.

 

 나.

아침에 출근해서 할 일 다하고 ........이제야 말씀을 잡는다.

어느새 그게 버릇이 되었다.

처음 묵상을 할 때는 열렬한 아침을 보냈다.

여성병원에서 묵상 모임하고는 돌아와 아침 일찍 블로그 글을 올렸다.

물론, 덜 바빠서 임도 있다.

 어제 아버지 학교 스텝 중 한분이 '큐티 강사'로 역할을 하시며

말씀에서 얻어지는 그 기쁨을 절절히 설파하신다.

'이러한 말씀이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지만

아침에 묵상하고 기도하고 나오면

하루종일 호주머니에 돈이 그득들어 뿌듯한 느낌입니다.... '

당연하지..

 

내 영혼이 생명력으로 거듭 넘치는

성령 충만함으로 그득차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순서'를 되찾아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이전 만큼 일찍 하기 힘들 때가 있긴 하겠지만

오늘 처럼 가능한데도 - 수술이 없는 날.. - 말씀 묵상이 의도적으로 뒤로 늦추어짐이

옳지는 않게 생각된다.

 

잠시 소수술이 있어 수술방에 올라가던 중

FM레지던트 선생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정형외과.. 제일 인기있는 과중의 하나인 그 과 레지던트를 때려치우고

다시 본원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조용하지만 어딘지 아픔이 느껴지는 선생.

' 우리 과 파견왔을 때 p선생이 칭찬이 많더만.. ' 하니

' 잘 돌봐주셔서 그렇지요.' 한다.

'그나저나 선생님은 그 좋은 과를 왜.. ?' 하니

' 너무 힘들어서요.

 하지만 그만두고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렸어요.. ' 한다.

'참 교회는 다녀요? 하니 안 다닌단다.

' 아니 그렇담 FM은 무슨 비젼으로 밟아요?' 하니

'그 냥요.' 한다.

그래서, '난 내가 만약 교회를 다니지 않는 다면

목숨 걸고라도 '정형외과 밟았을 거예요.

어쩌면 돈 많이 벌어서 세상을 즐겨야 할 거아냐?

FM은 비교적 .. ' 하니 머쓱한 웃음을 웃고 만다.

 어느새 수술방 가까이 왔다.

서둘러 말을 마무리 했다.

'샘...

인생에 비젼이 있으려면 교회나가요.

FM과는 선교라든가 남을 위한 삶에 아주 적합한 과예요.' 하고는 헤어졌다.

그 선생의 늘 겁먹은 듯한 얼굴이 가슴에 박힌다.

 

 나.

오랫만에 사람들 많은데서 전도의 말을 건넸다.

용기가 나도 모르게 난 것은

아침 묵상에서 깨달은 바 있어서다.

어느새 죽은 믿음생활의 리듬에 들어서는 듯 해서다.

어쩌면 나름대로 잘 갖추어진 신앙생활과 행동 범주 안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들어가는 것.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차원에서

조금 굴곡은 덜하고 기다림을 훈련하고 있음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나도 모르게 차가운 습관의 틀에 갇혀 버릴 위험이 있는 것이다.

나이도 많이 들어가니 이제 누구도 지적하지도 않는다.

오직 나 혼자 만이 헤쳐나가야 할 시기다.

이때,

말씀에 내 영혼이 민감히 반응함이 필요함을 나.. 느끼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늘 다시 한번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헤어지는 뒤에 화살기도로 주님 영접하시길 기도했다.

 

 

 

적용

1.   나의 죽은 행실과 죽은 믿음 행태는 어느 것인가?

  생각해 보자.

 

2. 부활.

 부활은 예수님 통해서만 가능하다.

 십자가의 원리를 내 영혼에 받아 들여

 내 죽은 행실, 내 자아를 십자가에 박을 결심을 할 때

 난 다시 산다.

  난 내 가정의 장이다.

 난 내 직장의 장이다.

 난 사회의 중진이다.

 난 하나님의 종이다.

 ...........

 다시한번 내 관계 속에서의 새로운 나를 정립한다.

 그리고 그 모든 새로움은 주님의 안에 있기에 가능하다.

 다시 새로운 믿음으로 부활하길 기대한다.

 

 

3. 전도하자.

'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전하는 도'가 기독교다.

 예수님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자.

 

4. 성경 세장 읽자.

 

5. 말씀과 하나님을 인식함으로 그 말씀의 레마를 적용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자.

 성령이 충만하면 갈등이 없어진다.

 

6. 모두를 용서하자.

 행동 만을 보자.

 다시 서서히 죽어가려던 내 영혼의 부활을 기억하자.

 말씀과 성령 충만함으로 가능하다.

 

 

기도

 주 예수시여.

주님 안에 있으면 매일 매일 죽어도

매시매시 다시 살아납니다.

주님은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입니다.

주님을 영접함은 매일 생명으로 가득참입니다.

주여.

주님은 선이십니다.

무조건 옳습니다.

내 삶의 어떤 것도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허락받았음을

다시한번 기억합니다.

주님.

그래서 죽음으로 부터 다시 부활을 기대합니다.

주여.

주님은 아시지요?

나의 어떤 것... 나의 모든 것...........

주님이 계시기에 그러한 나의 죽음 영역에 속한 부분들도

부활의 기대로 기다립니다.

주님.

이제 아침에 전도했던 그 선생님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수술방에서 기도해주던 그 불신의 환우 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들을 부활로 새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구원을 허락하소서.

제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나이다.

아버지 구원해 주세요.

어머니 더욱 믿음 지켜 주세요.

제 아내 지키시고

제 자식들 뻗어나가는 생명력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 안에서 그리하게 하소서.

예수 님은 무조건 선이시고

나에 주어진 모든 상황은 주님이 다 아시고

그러기에 어느 것도 감사하지 않을 바 없으며

내 이후의 삶은 무조건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겠습니다.

간절히 바라올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우주 만물의 생명의 원동력이신

하나님과 나와 내 자식과 내 아내와 기도하는 모두는

성령으로 인하여 연결되어 있고

그로 인하여 부활의 삶을 매일 살게 됨을 잊지 않고

기대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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