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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느낄 수 있을 감사하며[삿20:29-4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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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느낄 수 있을 감사하며[삿20:29-48]

주하인 2021. 12. 12. 08:58


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백 명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베냐민은
'야곱'의 막내로 '요셉'의 동복동생이고
물어뜯는 이리라는 뜻을 가진 용맹한 족속이고
유다지파와 더불어 '유대인'을 형성 했다고 알려진
나름 뛰어난 자질을 가진 족속이었고

사도 바울의 출신일 만큼
하나님의 관심에 속하여 배려되고 중요한 지파인 것이 분명히 맞으나
아직도
마음에 부담이 드는 것은
그들을 향해
하나님 당신의 손으로 그리 선택하신 선민 중의 성골(죄송.. 표현일 뿐 ^^;;) 을 상대로
그들을 사정없이 치는데
'여호와께서'

즉, 
'베냐민을 치시'는데
가장
앞서서 행하셧다는 사실이다.

어제의 묵상의 포인트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이유가 아니실까 싶기도 하다.


36 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기브아에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깐 베냐민 사람 앞을 피하매

상처가 덧나고 썩어가며
더 이상 어찌 손쓸 수 없어
몸을 상하게 할 만큼 악화되어 몸 자체를 상하게 될 때에
눈물을 머금고 수술로 상처를 도려 내야하는 상태.

그리고
그 수술 도구로
그들이 옳아서가 아닌 ,

사람의 막대기와 인생의 지팡이 역할로
같은 이스라엘 족속의 타 지파들의 분노를 들어
그들의 기도를 통하여
때가 되어 (주님 만이 그 때를 아시지.. 우리가 어찌 권선징악적 눈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베냐민을 '패'하게 하심이시다.


여기서
'베냐민'의 눈
그들의 그 영적 상태로 보아 도저히 하나님의뜻을 알 수없으니
오직 그들의 그 상태에서 그들의 판단으로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신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도없고 그 상황을 받아 들이기 어려운 충격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마져 충격으로 다가오면
저러한 상황에 다다르겠는가?
살이 썩어서 문드러지면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암이 무서운 것은 처음엔 전혀 아픔을 못느끼게 한다
그게 암세포의 교묘한 점이다.
미친 자들과 노이로제 환자의 구분은
자신의 이상함을 아는가 모르는 가의 차이로 한다.
영이 악하다 함은
자신의 잘못을 느끼고 양심이 꺼리기는 증상이 없어진 자들을 이야기한다.

 죄가 그렇고 

죄를 빌미로 들어오는 사단의 유혹이 그렇다. 

못느끼게 한다. 

달콤한 것에 빠져 죽는 파리마냥... 


 하나님께서는
저들 베냐민이 너무도 악하여
자신이 썩어있는 줄도 모르고 행하기에
저리 '자신 동족',
아직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여호와 앞에 와서 부르짖는 자들의 손을 통하여
썩은 부위를 도려내시는 것이 맞다.

아..
베냐민들은 지금은 못느끼는 아픔이지만
저리 도려냄을 받는 것..
결국을 위해서는 정말 다행이다

그렇다 .
우리네 인생에서
우리의 잘못, 잘함을 넘어서
이해가 가지 않는 그 어떠한 것이
우리 앞에 놓여있어도
그것 모두
하나님의 뜻 아래서 보면
모두 '선'이다.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면
어서어서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돌이켜야 한다

어제 묵상처럼
다시 '반 베냐민' 이스라엘 들의 행위를 지켜본
객관적 시점에서
오늘을 바라본다.

내 형제 , 내 혈육을 도려내는 데
하나님께서 불 같이 , 과감히 앞서시는 것...............
속시원히 볼 수 만 있는가?
베냐민은 비록 우리의 제 3자적 판단에
그래도 형제를 치는데
하나님께서 저렇게 무섭게 하나의 거침도 없으신 것 같이 행하시는데
비록 승리는 하게 하시니 안심이 되지만
어찌 그들의 마음에 혼란이 없었겠는가?
- 거짓 제사장 레위인의 시체 도발에 어이없이 흥분하여 정의를 앞세운 전쟁은 맞지만 동족 상쟁인 무언가 잘못된 결과.. 말이다.... 그것이 이상함을 그 미련하고 타락한 시절의 그들이지만 죄스러워 주님 앞에 나간 것 아니겠는가? -


오늘 내게 무엇을 보이시려는가?

베냐민의 입장에 서서 바라본 객관적 시점과
반 베냐민의 입장에서 본 그러한 시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바라봄이다.

우선...
죄를 멀리해야 함이 맞다.
어쩌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잘 살고 있는 듯하지만
어이없는 명분 , 시체토막같은 거짓 ,추악 명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욕먹이는 것 아닌가
스스로 들여다보고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보아야 한다 .
이 종말적 시대 같은 시간에
코로나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던가?
그전에도 교회세습...... *&^%$#......등등 수도 없이 많았지만
더 뚜렷이 ~!
나는 어떤가?
나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욕먹이는 경우가 없지 않지 않았던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름 그럴듯한 하나님과 삶속에서의 위치를 견고히 잡았다고 생각하며
매일 매일을 그렇게 그렇게 살며
어느새 저들, 반베냐민 들의 '어이없는 버거움'을 주는
유사 신앙인 닮아가고 있지는 않던가?
아니면 어느새 썩고 썩어
마침내는 우리를 향해
추수할 때 휘두르실 낫의 방향이 향하고 있으심은 아니시던가?
냄새나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아프지 않으니 괜찮은 줄로 생각하여
매일을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다
어느새 '도적처럼 임하신' 예수님의 지엄하신 판단하에
놀라서 당황하는 베냐민들의 지금처럼
그리 살고 있지는 않던지
오늘 하루 만이라도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겠다.

우리는 알지만
저 베냐민에 대한
하나님의 '앞장서시는 분노'는
결국
너무 아프지만
새살차오르는 수술 환자의 그것처럼 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안다

그렇다 .
또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네 삶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바 같은 일 조차도
무조건
하나님의 사랑의 이유이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
그게 다시 사는
부활의 원리다 .
하나님 안에서 ,
가능하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니
깨닫고 돌이키고 받아 들이면
쉬이 가능하다.

그게
감사하다.


주여.
소망없는 일들이
제 안과
주변과
세상에
온통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베냐민과 반 베냐민의 일들이
도처에서
제 안에서
수도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과연 계시는가.. 하는 거 같은 절망도 들지만
때로는 그러함을 절대의 공의로 징벌하실 하나님이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여.
그 모든 것이 우리의 돌이킴을 권고하심이며
회개하고 돌이키면
또 하나님이 반베냐민들 앞에서 행하신 하나님 처럼
또 임하실 것이시며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선'을 위해 허락되어진 것임을 깨닫습니다.

주여.
힘들고 무서운 묵상이지만
이제 무섭고 힘들다고 피하기만 할 수 없으며
마주 해야할 실제 임을 고백합니다.

제 잘못이 있으면 돌이키고 회개하고
안되는 것 주님께서 손대시어도
주님이 옳으심을 받아들여 아픔마져 감사하길 원합니다.
주여.

주님 아시오매
제 어떠함을 다 아시는 하나님.
제 안의 저도 못하는 부분.....
그 부분으로 인한 아픔이면
주여. ..
어찌 해야하는 지
아직도 번연히 남은 제 그러함을
마주하고 받아 들이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돌이키길 원합니다.

주여.
제 모든 것 다 아시는 주님.
말씀과 어우러지는 깨달음과 돌이킴과 완전한 회복을 원합니다.
주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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