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한 QT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우선이다[삼하6:1-11] 본문
주님으로 인한 기쁨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안심이나 성공예감..등
다른 인간적 환상은 없는 지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나를 돌아봅니다
혹여
허락되어진 마음이
오직 감사
오직 은혜에 대한 기쁨으로만 차 있어
하나님 앞에 먼저 아뢰는
진정 주님이 기뻐하시는
우선 기도하고 아룀을
잊은 일은 없는지 말입니다
순서.
모든 일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우선임을
잊지 않는 하루가 되어야 겠습니다
(MS포구 가는 길 , 황홀한 가을 들녘, 주님으로만 기쁠 때가 이런 기분의 수십 수천 확대한 기쁨이리라 ^^*)
늘 이렇듯 기뻤으면 좋겠습니다
날아갈 듯 황홀한 삶만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님 안에서의 이러한 제 기쁨이
절대로 흔들리지 않았으면
진정 좋겠습니다.
바라옵기는 주여
제게 지혜와
지속할 수 있는 자제의 힘과
주님을 경외함이
이 큰 기쁨과 행복이 잃어지는게 두려워져서
더 조심하고 높여드리는
그런 올바르고 온전한 지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주여.
영원토록 주만 바라볼
온전한 이유와
확실한 방법을 알게 하여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 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궤'를 메어오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하나님'을 메어오려 하는 것 아닌가?
혹 ..
내 일상에서 바라보고 내가하려는 어떤 선한의도라 생각하여
둥둥 떠 다니며 하는 모든 것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지만
'내 뜻'이 앞서는 것은 아니던가?
아.. 그보다 먼저
난..정말
하나님을 저처럼 기뻐는 하던가?
또 습관적으로 주님 이름을 들추고는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은 아니던가?
그래도 다윗의 저 열정 만큼은 배울만 하다.
단..
절대로 주님 앞을 앞서는 일은 하지 말자.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이 부분에 올 때마다 이상하긴 했다.
'다윗이 분하여'
누구에게 분할까?
왜 분할까?
아마 맥락으로 보면 '웃사'의,
일을 망침을 보고
자신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는
하나님을 모시는 일을 망친 '웃사에 대한 분노'라 생각할 개연성이 많지만
그게 '분노할 일'이 맞던가?
단지, 궤가 떨어지는 것 막기 위한 본능적 실수인데...
정말 하나님을 모시는 일이 가장 중요해서 하지만
그 결심과 행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맞던가?
'베레스 웃사'가 '웃사를 치심'이란 뜻이라며
그 웃사를 분노하여 그리 이름을 짓기 전
'자신'을 돌아보며 '베레스 다윗''이나
다윗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궤'를 옮기는 성경 대로의 올바른 '예'를 가지고 하게 하지 못한
'장로나 제사장'들을 들어 '베레스 제사장'이라 하지 않았다시는
묵상 나누미의 말처럼
하나님을 앞선 자신을 '분노'하는 게 맞는 것 아니던가?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그리고는 '여호와를 두려워 '하여 뒤로 물러나 숨어 버리는
다윗의 모습을 본다.
그렇다 .
하나님은 가벼운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은 우리와 동행하고 매사 대화를 나누길 원하시지만
그 분은 경외 받아야 할 대상이시다 .
비록
좋은 의도와 어찌할 수 없는 반응으로 자신도 모르게 '궤'에 손을 댔지만
그 모든 선한 인간의 의도로
하나님의 말씀이신 '궤'를 대하는 '가르치신 예법'을 어긋남은
용서 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하는
그 부분이 '경외'다.
다윗의 행위의 기본은
하나님을 기뻐함
하나님을 너무도 사랑함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그 가슴떨림을
정말로 깊이 앎이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앞섬'은 용인 될 수 없다 .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서는 '편의', '편리'...........는 주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11.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길이
이 땅을 사는
이 인생을 제대로 사는
오직 유일하고 올바른 '복의 길'이 맞다.
아..
그보다 더 정확히는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앞서지 않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오늘 하루..
이 작은 삶의 반경에서
어찌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인식하며
세상을 '투영'하며 살아낼까....
두렵지만 기대도 된다.
이 지루한 매일에
또다시 도전의 의지를 북돋우신다.
감사하다.
주님.
말씀을 알겠습니다.
그 말씀의 교훈적 지도를 넘어서
단순한 원리를 넘어서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먼저 여쭙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린 후 '다윗은 움직여야 '햇습니다.
그랬더라면
그 기쁨과 더불어
축복의 지속이 유지되었으리라 압니다.
그 기쁨의 본질이
오직 하나님의 같이 계신 놀라운 '은혜'...
절절한 온 우주의 에너지에 참예함...이기도 하지만
그 기쁨으로
주님의 기뻐하심을 세상에 접목하게 되어
좌로나 우로나 흔들림이 없었을 것을 요.
주님.
제게도 그리하게 하소서.
늙어가는 지루한 매일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도
주님의 기쁨,
주님의 함께 하실 때 허락하시는 그 놀라운 절절함을 잊지 않으려 하지만
때로
주님을 앞서려하는 이 조급함을 내려 놓게 하소서.
주여.
두려워 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바라보고 나가게 하소서.
오늘 또 하루를 지키소서.
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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